월드컵 축구 원정 첫 16강 진출이라는 낭보에 전 국민이 떠들썩하다. 이루 말할 수 없게 기쁜 일이다. 하지만, 심신이 지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여러 날 밤을 응원으로 지샌 탓이다. 응원하느라 쉬지 못한 몸과 마음을 잠시 달래보자. 부부젤라의 소음으로 지친 귀, “대∼한민국”에 쉰 목, 맥주와 통닭으로 둔해진 몸이 신선한 공기와 한적한 길을 갈망하고 있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 월출산의 정기 받은 강진다원=강진군 성전면 월남리에는 강진다원이 있다. 설록다원 강진공장이 있는 이곳은 지난 1982년 조성돼 33만㎡(10만평)의 녹차 밭이 펼쳐져 있다. 특히 이곳은 호남의 명산인 월출산이 빙 둘러 떡 하니 버티고 있으며 큰 일교차와 강한 햇볕을 막아주는 안개가 자주 끼는 등 명차 재배지의 지리적 특성을 고루 갖추고 있다.

광주에서 차로 1시간 가량 달려 도착한 강진다원은 월출산의 늠름한 모습 밑에 펼쳐져 있어 장관이었다. 마치 월출산의 정기를 찻잎이 그대로 받아 머금는 형상이다. 눈과 귀가 맑아진다. 찻잎 내음에 도시에 살면서 자동차의 공해와 담배 냄새 등 지친 폐와 콧속을 정화해주는 기분이다.

한적한 이곳을 느긋이 걷다 보면 종알종알 새소리와 졸졸 개울소리도 들린다. 가만히 걷기만 해도 몸과 마음이 치유되는 기분이다. 워낙 넓은 탓에 사진기를 들이대도 한 컷에 담을 수 없다. 내 눈과 코와 귀에 담을 수밖에….

녹차밭 중간에 세워진 팬(pan)도 특이하다. 녹차의 어린 새순을 서리 피해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이 팬들은 지표면의 온도가 내려갈 경우 상층부의 따뜻한 공기를 아래로 불어 넣는 역할을 한다. 어린 새순을 보호해 최상의 맛을 내려는 의지가 돋보인다.

◇ 다산 정약용을 찾아서=한 시간가량 강진다원을 둘러본 후 20여분간 차를 타고 이동하면 도암면 만덕리 다산 기념관이 있다. 다산 정약용의 굴곡진 삶을 한눈에 엿볼 수 있다.

구경 후 다산초당으로 가는 길은 마치 버드나무 같이 죽죽 뻗은 두충나무들이 아름답게 늘어서 있다. 마치 햇볕을 막아주듯 사람들 머리 위로 뻗어 있는 다산 유배 길은 처음부터 탐방객을 매료시켰다. 이 아리따운 오솔길을 10여분간 걸어가면 다산초당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다. 다산초당은 정약용 선생이 18년의 강진 유배생활 중 10여년간 안식처로 지낸 곳으로 ‘목민심서’ 등 여러 저서를 집필했던 곳이다. 이곳으로 올라가는 산길은 유배지였던 곳인 만큼 좁고 꼬불꼬불하다. 중간에는 ‘뿌리의 길’도 보인다. 정호승 시인이 이곳을 오르며 지은 ‘뿌리의 길’ 표지판도 있다. 한번 읊어 보자.

‘다산초당으로 올라가는 산 길/ 지상에 드러낸 소나무의 뿌리를/ 무심코 힘껏 밟고 가다가 알았다/ 지하에 있는 뿌리가/ 더러는 슬픔 가운데 눈물을 달고/ 지상으로 힘껏 뿌리를 뻗는다는 것을…’(중략)

산길을 10여분간 올라가면 92개의 돌계단 마지막에 다산초당이 자리 잡고 있다. 조그마한 기와집과 누각, 연못 등이 있어 초라해 보일 수 있지만 다산의 숨결만은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다산이 해배(解配)를 앞두고 직접 새겼다는 정석바위와 다산이 직접 수맥을 잡아 만든 약천도 남아있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선 다산초당∼백련사 길=다산초당에서 백련사 가는 길은 다산의 체취를 가장 짙게 느낄 수 있다. 1㎞가 채 안 되는 거리에 야생 녹차 군락과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동백숲을 만날 수 있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로 선정된 길이기도 하다. 야생녹차 밭을 지나 대나무숲, 사스래 나무 등이 등산로 옆을 지키고 있었다. 푸르디푸른 녹차와 대나무 등으로 인해 눈이 정화된다. 야생녹차는 이미 관목으로 자리 잡은 숲의 터줏대감이었다.

40여분간 걸어 국가지정문화재 천연기념물 제151호로 지정된 백련사 동백림에 도착했다. 3ha 이상에 달하는 동백림의 수목들은 300∼500년 이상 된 것들로, 일일이 번호를 붙여 관리하고 있었다. 일설에는 꽃이 핀 채로 100일, 꽃이 떨어진 채 100일이라고 해서 동백이라 했다고도 전한다.

하지만, 이곳은 봄에 와야 그 멋을 느낄 수 있다. 지금은 앙상한 가지만 남아있다. 초겨울∼이른 봄까지 동백림을 제대로 구경할 수 있다. 8국사8대사를 배출한 유서깊은 사찰인 백련사는 독특한 건축양식을 자랑한다. 특히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강진만의 모습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다. 내려오는 고즈넉한 숲길은 속세를 잠시 잊고 몰아의 경지에 빠져들 수 있다.

◇ 야구의 고장으로 강진 베이스볼 파크=백련사에서 10여분간 차를 타고 이동하면 도암면 학장리에 강진 베이스볼 파크가 있다. 이곳에서 프로야구가 열리지는 않지만 프로야구와 아마추어 선수들의 동계훈련과 프로야구 2군 경기가 열린다. 넥센 히어로즈 2군 홈 경기장이기도 하다.

프로야구 경기와 달리 선수들을 먼발치에서 보는 게 아닌 선수들이 땀 흘리는 모습을 바로 앞에서 볼 수가 있다. 특히 퓨처스 리그(2군 경기)가 열리게 되면 눈 앞에서 유명 선수들이 뛰어다니는 것을 구경할 수 있다. 1군으로 올라가기 위해 땀 흘리는 그들의 모습을 직접 보며 야구의 재미를 한층 느낄 수 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10여년간 머물었던 유배지인 다산초당으로 가는 길. 오래된 소나무의 뿌리가 지상으로 드러나면서 마치 계단의 역할을 해 ‘뿌리의 길’이라고도 부른다.

/글·사진=강필상기자 kps@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