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물론 부산·인천·대구·대전·광주 등 대도시의 관문을 통과하면 가장 먼저 눈에 보이는 것은 고층 아파트다. 이 아파트는 도심 외곽부터 깊숙한 구도심까지 즐비하게 늘어서 있으며, 그 중간 중간에 녹지공간을 끼워넣어 구색을 맞추고 있지만 결국 도시의 모습은 엇비슷하다. 대도시가 안고 있는 문제 역시 공통된다. 도시 내 불균형 개발과 구도심 주거지의 쇠락, 자연·문화자원의 퇴조와 공동체 문화의 상실, 범죄 예방 취약 등이 바로 그것이다.

문화중심도시로 나아가는 광주 역시 이 같은 도시 문제를 이른 시일 내에 해결하기 위해 각종 대책을 수립·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 한계도 명확하다. 이러한 도시 문제, 공간 문제를 다루는 도시계획 체계가 여전히 하향식에 머물고 있으며, 토지이용에 있어서 고밀도와 고수익만이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각 지방자치단체는 그 지역의 특성이나 개성에 맞는 독자적인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서울이라는 특정지역을 겨냥해 만들어진 중앙정부의 법·제도의 틀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 지역의 현실과 괴리된 계획이 지속되면서, 계획은 실제 거주하는 주민들을 염두에 두지 못하고, 주민들 역시 계획에 무관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지면서 동네의 개념은 희박해지고, 도시는 고립된 개인들로 인해 삭막해질 수밖에 없으며, 이 역시 높은 수익만을 부추기는 현재의 도시계획 체계에 그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다.

◇ 계획권한을 지역 그리고 주민에게=지난 1991년 지방의회가 구성되면서 지방자치제도가 본격화됐지만, 20년째를 맞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의 도시계획은 여전히 중앙정부에 얽매어 있다. 지역의 특성과 주민의 의견을 반영해 만들어져야 할 도시계획은 중앙정부의 관련 법규, 지시 등에 얽매이면서 다른 어느 대도시와 똑같은 ‘판박이’를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도시의 규모나 인구 밀도, 지형적인 특징, 지향하는 미래상 등이 다른 데도 도시계획은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등 관계 법규에 따라야하기 때문이다.

이는 국가별 차이는 존재하지만 궁극적으로 계획권한을 기초자치단체에 넘겨주고, 광역자치단체나 중앙정부는 이에 대한 행·재정적인 뒷받침을 하고 있는 유럽이나 미국, 일본의 도시계획과는 대조적이다. 이들 선진국들은 지역주민들이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을 어떻게 꾸밀 것인지, 미래 어떠한 형태로 나아갈 것인지를 고민하도록 해야만 진정한 의미에서의 도시계획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와 함께 현재의 도시계획에 거주주민들이 좀 더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의 도입도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공청회나 공람, 의회 의견 수렴 등의 절차가 있지만 이는 형식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실질적인 주민 참여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시계획의 범위를 축소하고, 주민들의 상시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며, ‘청사진’이 아닌 ‘실제 생활’이 반영되도록 도시계획 체계의 변경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노경수 광주대 교수(부동산·도시계획 전공)는 “현재 도시계획 체계의 모순은 과거 수십 년 간 계속돼 온 중앙집권주의의 산물이며, 따라서 지방분권 차원에서의 계획권한 이양과 이양된 계획권한에 주민들이 어떻게 참여해야 하는 지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 장기적인 도시 비전 제시돼야=고층 아파트의 수명은 30년에서 최고 50년 이상이다. 1980년대 초반 건립된 아파트들에 대한 재건축이 추진되고 있으며 향후 2050년에는 1990년대부터 2000년대에 지어진 아파트들의 재건축 논의가 이뤄질 전망이다. 문제는 이미 토지이용의 극대화를 전제로 하고 있는 이들 아파트들의 재건축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현재 안전등급에서 D등급 이하를 받은 광주지역 노후 아파트들이 건설경기 침체 등의 영향으로 재건축에 차질을 빚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고층아파트’는 미래 광주 발전의 발목을 잡는 도시문제로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

또 외곽 택지개발, 구도심 재개발 등 ‘개발’이라는 측면에 중점을 두고 있는 도시정책의 변화도 불가피하다. 고령화, 저출산 등으로 인해 인구의 정체 또는 감소가 예상되는 가운데 과거와 같은 개발지상주의는 미래세대의 부담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갈수록 쇠락하고 있는 단독주택지역에 대한 새로운 대안 모색도 절실하다. 이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은 택지개발을 맡은 공공기관이 그를 통해 얻은 수익을 구도심에 재투자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이고 있다. 도시개발채권 등으로 마련된 지역개발기금이 2010년 1천27억원에 이르고 있으나, 이 기금은 운천저수지 정비, 광주시립관현악단 리모델링 등 각종 사업에 사용되고 있다. 이 기금을 바탕으로 단독주택지역 주민들이 실질적인 주거환경 개선 효과를 볼 수 있도록 ‘혜택’을 주는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광주시는 올해에만

‘2020 광주권 광역도시계획 변경’, ‘2025 광주도시기본계획’, ‘2020 광주도시관리계획 재정비’, ‘2020 주택종합계획’, ‘2020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 기본계획’, ‘2020 광주경관기본계획’, ‘광주시 야간경관기본계획’ 등 각종 계획을 수립하는 데 100억원에 이르는 예산을 배정하고 있다. 이들 계획들이 광주의 미래비전을 제시하고, 주민들의 실생활과 의견을 반영하며, 독창적인 광주 공간구조를 제시할 수 있을 지는 여전히 미지수로 남아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여전히 중앙정부의 법·제도의 규제, 주민 의견수렴 체계 미흡 등이 해결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용준 조선대 교수(건축공학과 전공)는 “현실이 모두 계획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정당한 절차를 거쳐 수립된 계획으로 인해 오류를 줄일 수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향후 도시계획에서의 마찰이나 갈등 등을 최소화할 수 있는 광주만의 해법을 마련하는 것이 과제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윤현석기자 chadol@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