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도심 주거지의 쇠락은 이미 예견돼 있었다. 도심 외곽에 공원과 도로, 도시가스 등 기반시설을 완벽히 갖춘 주택단지의 개발은 구도심 거주민들을 흡수하면서 성장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구도심의 주거지 쇠락은 다시 그 주변 상업시설의 매출 감소 및 휴폐업 증가로 이어진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은 급감하고, 거주지만이 아니라 기반시설에 대한 투자도 제때 이뤄지지 못하면서 구도심은 범죄의 온상으로 부각되는 등 사회문제도 일으키고 있다. 지금까지 이러한 구도심 주거지 재생 방안은 민간건설업체들의 아파트로 채우는 것이 유일했다. 주민들은 살기 불편한 단독주택지역을 떠나기 위해 부지의 가치를 최대화할 수 있는 고층아파트 건립만을 고집하고, 민간건설업체 등은 이를 거들며, 행정기관은 이 같은 주민들의 요구를 상당부분 수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아파트 거주자는 ‘1류 시민’, 단독주택 거주자는 ‘2류 시민’이라는 인식이 강해지고, 도시 공간 곳곳은 아파트로 뒤덮이고 있다.

구도심 주거지의 쇠락과 아파트 단지 개발로 인해 그러나 도시의 근본적인 특성인 ‘다양성’이 사라지고, 정체성 없는 고층 건물들의 난립, 주변 경관과의 부조화에 의한 도시 이미지 저하, 도시 내 분극화 촉진 등의 문제점이 부각되고 있다.

◇ 걷는 사람조차 없는 구도심 골목길=광주시 북구 풍향동, 서구 양동, 동구 계림동 등 대표적인 단독주택지역 골목길에는 대낮에도 사람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주차 차량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으며, 밤이 되면 아예 인적이 드물게 돼 여성들이 쉽게 걸어갈 수 없는 길이 됐다. 방범카메라 등 안전시설도 거의 없으며, 경찰의 순찰도 인구가 집적돼 있는 택지단지에 더 집중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러한 단독주택지역은 따라서 범죄가 발생할 수 있는 부정적인 요소를 모두 갖추게 되고, 이는 다시 사람들을 떠나게 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되고 있다.

김길태 사건을 비롯한 최근 빈발하고 있는 강력사건의 주무대가 대부분 구도심 단독주택지역인 것은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이모(여·37·광주시 북구 풍향동)씨는 “어둑해지면 아예 밖에 나갈 생각을 하지 못할 정도로 불안하다”며 “돈이 부족해 단독주택 이층 전세를 살고 있지만, 조만간 면적이 좁더라도 아파트로 이사할 생각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광주 도심 내 빈 집도 이 같은 단독주택지역에서 속출하고 있다. 최근 2년 사이 광주지역에 빈 집이 2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광주시가 지난 2008년에 이어 2년 만에 지역 내 공가·폐가를 일제 조사한 결과 도심 공동화 문제가 가장 심각한 동구는 134곳에서 315곳으로 무려 235% 이상 급증했다. 서구는 108동에서 167곳으로, 남구 역시 200여 곳에서 350곳으로 각각 늘었다. 특히 단독주택의 가격이 갈수록 하락하는 데다, 아파트 공급은 계속되면서 주택을 방치한 채 아파트로 이주하는 가구도 늘고 있다.

◇ 도심 기반시설 불균형 배치=같은 광주시내에 살고 있는 있지만 상대적으로 구도심 거주주민들은 공원이나 체육시설 등 공공서비스를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 단독주택지역 거주민은 여가시간에 찾을 수 있는 공원 등은 도보로 갈 수 없는 최소 2km 이상 떨어져 있는 반면, 택지지구 거주자는 300m 안에 어린이공원과 근린공원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광주시의 ‘2008년 공원현황’과 문화관광부의 ‘2008년 공공체육시설 현황’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공원과 체육시설이 모두 서구에 집중돼 있으며, 최근 인구가 늘어나고 있는 동구와 남구는 이들 공원 및 시설의 확보율이 최저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500m∼1km 이내 설치해 지역민들이 도보로 오갈 수 있도록 설치한 근린공원의 경우 서구는 전체 20개소 중 70%인 14개소가 조성이 완료됐으며, 2곳이 조성되고 있는 데 반해 남구의 경우 16곳 중 절반인 8곳이, 동구 4곳 중 2곳, 북구 역시 19곳 중 10곳이 조성됐을 뿐이다.

동네체육시설에 해당되는 간이운동장을 제외한 육상경기장, 축구장, 수영장 등 19개 체육시설 분포 조사 결과 광주시내 50곳의 체육시설 중 절반에 육박하는 23곳이 서구에 설치됐다. 남구와 동구는 단 3곳에 불과했다.

이는 주로 택지개발이 이뤄진 자치구의 기반시설 투자가 계속된 반면 단독주택지역이 주로 분포돼 있는 남구와 동구는 그렇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인구가 집적돼 있는 곳에 기반시설 투자가 집중된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 같은 불균형은 더 심각해질 가능성도 높은 실정이다. 이 같은 기반시설의 불균형은 동구나 남구 단독주택지역의 인구 이탈을 부추기는 ‘악순환’을 낳는 것이다.

◇ 공공 주거정책의 마련 시급=광주시 서구 양동에 거주하는 김선순(83) 할머니는 16살부터 67년 동안 같은 거주지에서 살고 있다. 이혼 등으로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으며, 혼자 산지 20년이 넘었다. 정부지원을 받아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김 할머니의 주거지는 방 하나에 부엌이 딸린 15㎡ 정도의 좁은 단독주택이다. 과거에는 집에 마당이 있을 정도로 넓었지만 도로가 설치되면서 수용됐다. 김 할머니는 재개발이 될 경우 60년이 넘게 살아온 이 지역에서 쫓겨나야 할 지도 모른다며 불안해하고 있다.

김 할머니는 “보상을 받아봐야 집이 좁은 데 얼마나 받겠나”며 “이웃들과 접하고 살 수 있는 지금의 집이 좋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단독주택지역에는 김 할머니와 같은 고령자나 저소득층이 거주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들 대부분이 현재의 방식으로 진행되는 재개발에 따른 수혜자가 될 수 없는 위치에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소득이 적어 본인 부담금을 낼 수 없기 때문에 도심 외곽으로 쫓겨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단독주택지역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거주자에 대해 도시가스시설 설치, 주변 공원 및 주차장 마련 등은 물론 소유 주거지의 개선을 위한 지원 등 실질적인 주거환경 개선 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글·사진=윤현석기자 chadol@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