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경주가 난리다. 드라마 ‘선덕여왕’ 때문이다.

시청률 40%대의 인기몰이를 하면서 전국 곳곳에서 선덕여왕의 흔적을 찾아 경주를 방문하고 있다. 경주 시내 어지간한 곳에선 극중 인물인 덕만공주(선덕여왕의 어릴 적 이름)나 미실의 사진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 첨성대

여행은 첨성대로부터 시작하자. 드라마에서 덕만공주는 일식을 이용해 미실로부터 천신황녀의 자리를 되찾더니 천신황녀가 독점해오던 천기 읽는 능력을 백성들에게 공개하기로 결정한다. 그렇게 해서 추진한 것이 첨성대 건설이다.

농사를 짓기 위해선 날씨나 기후의 변화를 예측하는 것이 중요했다. 당시엔 언제 파종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는 사람은 천신황녀를 비롯한 일부 권력자들뿐이었다. 이런 정보를 첨성대라는 일종의 천문대를 만들어 누구라도 손쉽게 알 수 있도록 했다는 것.

그러나 최근 학계에서는 첨성대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천문대가 아니라 단순히 선덕여왕을 상징하는 건축물일 뿐이라는 의견이 제기되었기 때문. 함께 간 자녀들에게 최근의 논란까지 일일이 설명할 필요는 없을 지도 모른다. 다만 백성들을 위한 덕만공주의 마음만 깨닫게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을까? 게다가 부드럽게 휜 첨성대의 곡선은 보기만 해도 아름답다.

첨성대를 비롯해 계림과 반월성 등을 함께 둘러보는 산책코스도 강추.

◇ 분황사

삼국시대 불교는 이른바 ‘왕즉불’(왕이 곧 부처) 사상으로 왕권 강화의 수단이 됐다. 덕만공주가 선덕여왕으로 즉위한 이후에도 귀족들과의 힘겨루기는 여전했다. 이런 배경으로 인해 선덕여왕은 재위 당시 여러 사찰을 짓고 왕권 강화를 꾀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분황사와 황룡사이다.

분황사는 ‘향기 나는 황제의 절’이란 뜻. 향기가 나는 황제라니 여왕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현재 분황사 정문 앞으로 여전히 발굴이 진행 중이다.

경내로 들어서니 마치 어느 고택의 정원 같다. 경내 중앙에는 유명한 분황사 석탑이 서있다. 수수하고 둔탁해 보이면서도 왠지 모르게 화려하다. 전혀 다른 두 느낌을 함께 내뿜는 묘한 탑이다. 원래는 9층이었다고 하나 지금은 3층만 남아있는 데도 그 높이가 무려 9m를 넘는다.

◇ 황룡사지

분황사 바로 옆으로 황룡사의 절터가 있다. 탁 트인 들판의 노랗게 여문 계절 속에 그렇게 황룡사지가 놓여있다. 들판에 덩그렇게 흔적만 남아있는 터인지라 황량하게 느껴질 법도 한데 그렇지 않다. 이유는 절터의 엄청난 규모 때문이리라.

드라마 속 덕만공주와 김유신은 ‘신라’라는 국호의 숨겨진 의미를 찾아 나선다. 해답은 ‘삼한일통(삼국통일)’. 드라마에서는 당시 ‘삼국통일’은 마치 사람이 달나라에 가는 것만큼이나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불가능한 꿈으로 묘사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신라는 덕만공주의 할아버지인 진흥왕 때 이미 한강 하구를 손 안에 넣으면서 백제를 압박했고, 고구려의 함경도까지 영토를 확장하며 순수비를 세웠다. 삼국통일이라는 목표는 진흥왕 때부터 조금씩 진행되고 있었던 셈.

오히려 선덕여왕은 진흥왕의 대망을 더욱 확대해 동아시아를 가슴에 품었다. 그런 큰 뜻을 표현한 것이 바로 황룡사 9층탑. 각각의 층은 일본과 중국, 말갈 등 당시 신라 주변 동아시아의 9개 나라를 의미한다고. 지금은 소실돼 그 탑을 볼 수 없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보문단지 인근 경주엑스포공원에 세워진 경주타워에 당시 황룡사 9층탑의 위용을 음각으로 새겼으니, 이를 보는 것으로 아쉬움을 조금 달래볼 수 있을지도.

◇ 선덕여왕릉

마지막으로 선덕여왕릉을 찾았다. 선덕여왕릉은 경주 시내 낭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낭산은 해발 100m도 되지 않은 나지막한 야산으로 경주인들도 그 이름을 잘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여왕의 능 역시 소나무숲 사이로 소박하게 자리해 있다.

삼국유사에 선덕여왕의 ‘지기삼사’에 관련된 이야기가 있다. 선덕여왕이 선견지명으로 예측한 세 가지 일화로 그 중 하나가 그녀의 능에 관한 것이다. 선덕여왕이 어느 날 불현듯 신하들에게 “나는 아무 해 아무 날에 죽을 것이니 내가 죽거든 도리천(불교에서 말하는 욕계(欲界) 6천(六天)의 제2천)에 묻어 달라”고 지시한다. 이에 신하들이 “도리천이 어디냐”고 되묻자 선덕여왕은 “낭산의 남쪽”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후 선덕여왕이 숨진 30여년 뒤 그녀의 능 아래에 사천왕사가 세워졌다. 불가에 따르면 ‘사천왕천 위에 도리천이 있다’고 했으니 선덕여왕의 말대로 낭산의 남쪽이 도리천이 되는 셈이다.

선덕여왕릉을 내려오다 보면 북쪽 들판으로 또 다른 왕릉 하나가 보인다. 선덕여왕의 아버지 진평왕의 능이다. 선덕여왕릉에서 진평왕릉까지 걸어가 보는 것도 나름 즐겁다. 30분 쯤 걸리는 가을 들판이 싱그럽다.

◇ 신라밀레니엄파크

뭔가 부족하다면 덤으로 보문단지 인근 신라밀레니엄파크엘 들러보자. 신라를 테마로 조성된 이 공원에는 드라마 ‘선덕여왕’의 세트장이 있다. TV 속에 나오는 신라궁궐과 별궁, 김유신의 화랑 산채에 서 있으면 마치 드라마의 등장인물이라도 된 기분이다. 마상무예공연 ‘화랑도의 힘’도 놓치지 말도록.

/글=부산일보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사진=부산일보 강원태 기자 wk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