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밤과 무수한 별뿐이로다/밀리고 흐르는 게 밤뿐이오/흘러도 검은 밤뿐이로다…’(신석정 ‘슬픈 구도’중) 7월 내내 지속되던 장마가 그친 요사이, 흐린 날이 많지만 가끔은 가을 하늘같은 맑은 밤하늘을 선사한다. 이러한 날 모처럼 도심을 떠나 별빛을 찾아보라. 날이 저물기가 무섭게 남동쪽 하늘에 목성이 떠오르고 밤 9시께면 뿌연 구름 같은 은하수가 머리 위를 지난다. 지상에서는 반딧불이가 연초록빛 불빛을 깜박이며 반겨준다.

준비물은 소구경 망원경이나 쌍안경, 돗자리, 두툼한 옷차림. 굳이 망원경과 쌍안경이 없더라도 두 눈만으로도 은하수를 흠씬 맛볼 수 있다. 기왕이면 달이 뜨지않는 그믐께에, 밤하늘을 안내하는 별자리 책을 가지고 간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이다.

◇ 어린 시절 추억이 담겨있는 밤하늘 여행=이제는 거침없는 도시화와 산업개발로 더 이상 ‘무수한 별뿐’인 밤하늘을 보기 어렵게 됐다. 더욱이 도심의 휘황찬란한 불빛은 별빛을 도시인들에게서 아예 빼앗아가버렸다. 기껏 보이는 것이라곤 도심 하늘을 가로질러 가는 달과 몇몇 밝은 별뿐. 어린 시절 까만 눈동자에 가득 찼던 무수한 별과 그 사이를 흐르던 은하수(銀河水)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70년대 말 중학시절. 대도시에서 학교에 다니다 모처럼 여름방학을 맞아 찾은 고향 산골마을에서 밤하늘을 가득 채운 별들과 접했다. 앞마을 원두막에서 채 익지않아 하얀 박속 같은 핸드볼공 크기 수박을 죽마고우들과 먹고 돌아오던 길이었다.

마을 불빛마저 모두 꺼져버린 자정을 넘긴 늦은 시각, 남녘 산 너머로 펼쳐진 밤하늘 별빛은 경이로웠고 뿌연 구름처럼 하늘을 가로지르던 은하수는 그저 황홀하고 신비로웠다. 이후 산골마을은 수몰돼 친구들은 각지로 흩어졌고 다시는 그러한 강렬한 인상을 안겨줬던 밤하늘도 볼 수 없었다.

우주공간에서 바라본 우리나라와 일본의 광공해(Light Pollution)는 심각하다. 광주역시 시내에서 은하수를 보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다행스럽게도 도심을 한 발짝 벗어나면 맑은 별빛을 토하는 밤하늘을 만날 수 있다. 광주에서 1시간 거리에 위치한 곡성, 화순, 장성의 산중에서 무수한 별과 은하수를 맛볼 수 있다. 도심의 광해(光害) 못지 않게 시골도 도로변과 마을 곳곳에 가로등이 설치돼 있기 때문에 적당한 관측장소를 찾기는 쉽지않다.

은하수는 우리가 살고 있는 나선팔 은하의 일부가 보이는 것이다. 은하수가 별들의 집합체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불과 400여년 전. 갈릴레오 갈릴레이(1564∼1642)는 당시 최첨단 발명품인 망원경을 천체로 향한 인물이다. 배율도 낮고 렌즈연마도 형편없었던, 현재 초등학교 문방구에서 파는 망원경보다도 못한 장비로 목성 주위를 도는 4대 위성과 달 분화구, 은하수를 체계적으로 관측, 현대 천문학의 서장(序章)을 열었다.

◇ 밤하늘의 신화와 영웅=밤하늘은 신화의 세계이다.

은하수에 걸쳐있는 전갈-궁수-독수리-거문고-헤라클레스-백조자리 등은 모두 그리스·로마신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다. ‘그리스 최고의 신’인 제우스(Zeus)가 스파르타의 왕비 레다를 사랑해 백조로 변신했다는 ‘백조자리’, 죽은 아내를 찾아 명계(冥界)에 갔다 돌아나오는 길에 뒤를 돌아다본 오르페우스의 사연이 깃든 ‘거문고자리’, 여신 헤라가 사냥꾼 오리온을 시기해 독살시키려 보냈다는 ‘전갈자리’ 등이 남쪽 하늘을 장식하고 있다.

메소포타미아 들녘을 지키던 양치기들에 의해 비롯된 서양의 별자리가 서양인들에 의해 88개의 별자리로 정리된 까닭에 동양이나 우리 고유의 별자리는 전혀 알지못한다. 다만, ‘여름철 대삼각형’이라고 부르는 백조-독수리-거문고 자리의 밝은 별들에서 직녀와 견우의 슬픈 사랑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다.

거문고 자리의 알파(α)별인 직녀성(vega)과 독수리자리 알파별인 견우성(Altair) 사이로 은하수가 흐른다. 직녀성과 견우성의 거리는 수십 광년(光年=빛이 진공 속에서 1년 동안 진행하는 거리). 그러나 신화의 세계에서는 시간과 공간을 거침없이 뛰어넘어 까치와 까마귀가 만들어주는 오작교(烏鵲橋)를 건너 매년 칠월칠석에 연인은 만날 수 있다.

◇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 은하수는 나이에 따라 철이가 미지의 여인 ‘메텔’과 함께 열차를 타고 온갖 모험을 하며 우주여행을 떠나는 일본 애니메이션 ‘은하철도 999’를 떠올릴 수도 있고, 자그마한 소행성 B-612에서 의자를 옮겨다니며 하루 동안 일몰을 44번이나 봤다는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머리에 그릴 수도 있다. 고흥 나로도에서 힘차게 쏘아올릴 우리나라 첫 위성발사체 ‘나로호’역시 우주에 대한 관심과 상상력을 더욱 드높이게 될 것이다.

광주·전남 지역의 별을 좋아하는 이들의 모임인 ‘광주 천문동호회’(cafe.naver.com/gwangjuastronomy) 회원들은 안시관측을 뛰어넘어 굴절·반사·돕소니안식 등 다양한 형식과 크기의 천체망원경으로 은하수가 품고 있는 보석 같은 다채로운 성단과 성운을 찾는다. 렌즈나 반사경 구경이 클수록 수백억 광년이라는 아스라한 거리를 달려온 희미한 별빛을 보다 쉽게 관측할 수 있다.

카페 매니저인 김형진(33·회사원)씨는 “고교시절 완도 신지 명사십리 해수욕장에서 봤던 은하수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며 “도심을 벗어나는 피서철의 휴가지가 가족들과 함께 은하수를 보며 우주의 신비로움에 빠져볼 수 있는 좋은 시기”라고 말했다.

여름밤은 짧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들을 하나하나 헤며 가슴에 새기노라면 시나브로 아니 어느새, 문득, 아쉽게도 뿌옇게 동이 터온다. 한여름밤의 꿈처럼…

/글·사진=송기동기자 song@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