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코앞이다. 아니, 거문도는 벌써 봄이 영글었다. 섬 곳곳에는 찬 기운을 녹이고 꽃망울을 터뜨린 붉은색 동백꽃이 지천이다.
매년 이맘 때면 봄날의 등대길과 동백꽃 향기를 맡으러 관광객들이 앞다퉈 찾는 곳, 거문도행 배를 탔다. 야무진 겨울 바람도 헐렁해진, 봄을 느끼기엔 알맞은 여행지다. 한국관광공사 호남권협력단 주관으로 코레일 직원들도 동행했다.
거문도는 고흥 녹동항에서 35마일(65㎞), 쾌속선으로 1시간 20분 거리에 있는 섬이다. 동도·서도·고도 등 세 개의 섬이 항아리처럼 아늑하게 내항을 감싸고 있으며 백도를 끼고 있어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에서도 경관이 빼어나기로 이름난 곳이다.
◇ 동백숲 따라 봄날의 등대길 산책=걷는데 부담이 없는 섬이 거문도다. 면적이 작아서 어디라도 쉬엄쉬엄 걸어다닐 수 있다. 포구를 조금만 벗어나면 동백꽃 산책길에 접어들고, 완만한 경사라 아이들과 함께 올라도 무리가 없다.
볼거리·느낄 거리도 많다. 섬 전체가 비경인데다, 영국군 묘지를 비롯해 곳곳에 역사의 발자취를 담고 있다. ‘아름다운 자연에 취하고, 섬이 낳은 인물에 감동하고, 마지막으론 역사에 눈을 돌린다”는 말이 나온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피었다가 지곤하는 동백꽃이 터널을 이룬 산책로는 트레킹 코스로 나무람이 없고 섬의 풍광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다. 봄색이 물들은 동백꽃길을 따라 신선바위, 영국군 묘지를 지난 등대까지 둘러보는데 쉬엄쉬엄 3시간 30분 정도다.
이 시기에는 바닥에 떨어진 동백꽃이 융단처럼 깔린다. 차마 발걸음을 떼기가 조심스러울 정도. 붉디 붉은 동백꽃이 송이채 뚝뚝 떨어진 길에 오랫동안 서 있는 연인들, 관광객들도 적지 않다.
떨어진 꽃송이들을 ‘즈려밟을까’ 걷다보면 갑자기 비취빛 바다가 눈 앞에 드러난다. 장관이다. 상쾌하기 이를데 없다. 푸른 바다와 해안 절벽, 고즈넉한 포구가 한눈에 들어온다.
산허리를 돌아가는 것이 지루하게 느껴질 때 쯤이면 신선바위 벼랑길이다. 짜릿함을 체험해보고 싶다면 ‘선택’해볼만 하다.
길이나 있을까 싶은 기암을 간신히 올라서면 아찔하다. 발 밑 해안 절벽으로 부서지는 하얀 파도를 내려다 보는 것도 힘겹게 느껴진다.
수월산(128m) 자락을 이리저리 굽어진 동백길을 걷다보면 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하얀 등대가 봄볕을 튕겨낸다. 지난 1905년에 처음 불을 밝힌 수월산의 거문도 등대. 날씨라도 좋을 때면 한라산과 백도가 보인다고 한다. 등대 옆 관백정에 앉아 있다보면 바람이 시원하다. 거문도는 이미 봄이 무르익었다.
◇ 마법의 성, 백도=여기까지 와서 백도를 보지 않으면 아쉽다. 거문도에서 뱃길로 30분 거리.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에 속해 있는 백도는 국가명승지 제7호다. 섬이 100개에서 하나 모자라 일백 백(百)에서 한 획(一)을 빼 백도(白島)라고 했다는 전설이 있다. 옥황상제의 아들이 용왕의 딸과 눈이 맞아 이곳에서 머물렀는데 100명의 신하를 내려보내도 올라오지 않자 화가 나서 아들과 신하들을 돌로 변하게 했다는 전설도 간직하고 있다. 크게 상백도와 하백도로 나뉘는데 39개의 바위섬으로 구성돼있다. 배는 상백도와 하백도를 돌아 나오는데, 병풍처럼 늘어선 암벽과 세월에 깎여 각양각색의 형상을 드러낸 바위들이 날씨, 햇빛, 보는 각도에 따라 모습을 바꿔 관광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서방바위, 각시바위, 매바위, 촛대바위, 쌍돗대바위 등 이름도 다양하다. 이름에 연연하지 않아도 절경을 감상하는데는 지장이 없다.
상백도엔 섬 꼭대기로 오르는 시멘트 계단이 만들어져 있지만 오를 수 없다.
/김지을기자 dok2000@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