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방문한 고려전통식품의 죽염제조 공장에서는 아침 일찍부터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기순도 표 제품들에 공통으로 들어가는 죽염을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다. 장정 두 명이 팔을 벌려야 안을 수 있는 커다란 가마에는 부안산(産) 천일염이 담긴 담양산(産) 대나무 통 100여 개가 구워지고 있었다. 소나무 장작에서 일으켜진 불로 2m길이의 대나무 통이 모두 타고 안에 든 소금이 벌겋게 녹아내리는 시간은 약 3일. 이곳에서 만들어지는 죽염은 이 같은 과정을 9번 되풀이하는 산고를 겪어내야 한다.
된장과 간장, 고추장의 원료인 메주를 만드는 과정도 녹록지 않다. 유기농 콩을 모아 동짓달 말날(음력 11월 12간지 중 우(牛)자가 들어간 날)을 받아 메주를 만든 뒤, 짚에 메달아 한 달 정도 발효를 시킨다. 잘 뜬(발효된) 메주를 죽염수(죽염을 녹여 만든 물)가 담긴 항아리에 넣어 5개월 이상 발효시킨 뒤 마지막으로 죽염수에서 빼낸 메주를 메줏가루에 섞어 항아리에 담아 숙성시키면 비로소 ‘기순도 된장’이 만들어진다. 전국 최고의 품질로 이름 높은 기순도 간장’은 메주가 우러난 죽염수를 달인 뒤, 또다시 항아리에서 숙성시켜 만든다. 고려전통식품의 안뜰에 놓인 500여 개의 항아리에는 항암과 니코틴·알코올해독 그리고 동맥경화 등 각종 성인병 예방에 특효가 있다는 기순도 표 간장, 된장, 고추장이 가득 들어있다.
‘기순도 된장’은 전국 주요 백화점 등지에서 1㎏당 17만 원에 판매된다. 일반 된장보다 무려 10배가량 비싼 값이지만,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다. 1㎏에 38만 원에 판매되는 10년산 된장은 내놓자마자 동나는 인기 상품이다. 최근엔 CJ나 농심 등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서도 ‘함께 사업을 해보자’는 제의가 잇따르고 있다.
기순도 표 제품들이 명성을 날리게 된 데에는 슬로시티인 이곳 창평의 자연조건도 큰 몫을 하고 있다. 공장으로 쓰이는 기 대표의 집은 예전부터 장 담그기에는 최적의 장소라는 평을 들어왔다. 집과 항아리를 둘러싼 수천 그루의 소나무에서 날리는 송홧가루, 그리고 지하 150m에서 퍼 올리는 암반수가 장맛을 돋워준다는 얘기다.
장흥 고씨 문중의 10대 종부이자 전남지역 최초의 장류 명인(35호)으로, 지난 1992년부터 고려전통식품을 이끌고 있는 기순도(58) 대표는 이곳에서 제조된 간장과 된장, 고추장 등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명품이 된 비결에 대해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정성을 다해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기 대표는 “정말 좋은 간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며 “자연의 힘과 인간의 노력이 어우러져야 진정으로 사람에게 이로운 음식이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홍행기기자 redplane@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