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농촌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희망을 키우고 있다. 이들은 공장 등 산업단지의 제조업 분야에 주로 종사했던 것에서 벗어나 최근에는 농촌에도 진출, 고령화와 이농현상을 겪고 있는 농촌에 정착해 빈공간을 메우며 한 몫하고 있다.
지난 13일 오후 곡성군 옥과면 무창리 황등쌀영농조합(대표 황철규·이하 황등단지) 단지 안. 과거 겨울철 한가한 농촌의 풍경은 온데간데없고 십여 명의 사람들이 쌀을 도정하고, 운반 및 포장 작업을 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수도권 지역 대형 마트에 납품할 물량을 맞추기 위한 막바지 작업이 한창이었다.
중국 지린(吉林)성 장춘시에서 온 박형춘(35)씨는 고향에서 농업관련 사업을 하기 위해 지난해 9월 이곳으로 와 일을 배우며 경험을 쌓고 있다.
고향에서 화력발전소 기계설비 담당으로 10년 동안 근무했던 박씨는 “한국으로 시집온 누나의 권유로 한국에서 들어와 다양한 기술을 배우고 있다”면서 “모내기, 추수, 탈곡, 도정 등 기본적인 농사일뿐만 아니라 소비자에게 공급하고 좋은 상품을 개발하는 것까지 농업과 관련된 사업이 많아 앞으로 배워야 할 게 많다”고 웃으며 말했다.
농업 관련 사업 목표 … 기술 배우러 한국행
박씨가 일하고 있는 황등단지는 곡성군 100여 농가가 참여해 200ha 면적에서 군 브랜드인 황등쌀을 연간 1만5천가마(40㎏기준)를 생산하고 있는 대규모 친환경쌀 전문 생산 농업단지다.
모내기에서부터 관리, 수확, 이송, 도정, 판매까지 모든 과정이 단지 안에서 이뤄지고 전용도정공장에 저온저장고 등 대규모 시설도 갖춰 박씨가 일을 배우는 데 있어 더 없이 좋은 직장이다.
다음 달이면 비자가 만료돼 중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박씨는 “한국에서 고생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다고 들었는데 사장님과 직원들의 배려 덕분에 힘든지 모르고 생활을 하고 있다”면서 “이번에 고향에 돌아가면 가족을 데리고 한국으로 나올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곳 황등단지에서 박씨와 함께 일을 했던 동료 중국인 박철(35·중국 지린성)씨 역시 가족과 함께 곡성으로 이사 올 준비를 하겠다며 지난주 중국으로 돌아갔다.
이들 중국인들에게 한국 정착에 대한 꿈을 심어준 사람은 바로 황등쌀영농조합 황철규(45) 대표. 황 대표는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 집의 방을 한 칸 내줬다. 같은 민족인데다 1년 동안 한집에서 생활하다 보니 이제는 이들이 가족처럼 느껴진다.
또 황 대표는 이들을 위해 82.6㎡(25평 규모) 크기의 사무실 기능을 갖춘 기숙사도 지을 예정이다.
황 대표는 “요즘 젊은 사람들은 힘든 농사일은 안 하려고 하고 농촌을 떠나려고만 하는데 이 친구들은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고 모든 일을 열심히 하고 있어 일손 부족한 농촌에서 큰 힘이 되고 있다”면서 “이들 덕분에 농촌에 활기가 도는 것 같다”고 말했다.
“모든 일 열심 … 일손 없는 농촌에 큰 힘”
황 대표 역시 이들처럼 농촌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았다. 운영하던 회사가 부도가 나자 서울에서 귀향한 뒤 농업경영인으로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그의 새로운 꿈은 ‘황등쌀’을 ‘세계적인 쌀’로 키워 살맛나는 농촌을 만드는 것.
이를 위해 황 대표는 생산에만 그쳤던 친환경농업을 유통, 가공, 판매까지 그 영역을 확대, 농업의 새로운 활로를 열어가고 있다. 지난 4년 동안 꾸준히 노력한 결과 지난달에는 농림수산식품부가 전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제5회 친환경농업평가에서 황등단지가 친환경농업 우수지구로 선정되는 기쁨도 누렸다.
황 대표는 “무한경쟁시대에 살고 있지만 자신만의 장점이 있다면 농촌에서도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것 같다”면서 “희망과 꿈을 위해 한국은 찾은 이들이 농촌에서 그 꿈과 희망을 이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은미기자 emlee@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