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년보다 한 달 가량 빨리 내린 첫눈이 빨간 단풍을 하얗게 덮고 있다. 수목은 스스로 노랗고 붉은 물감을 뿌려놓았던 잎새들을 떨구며 성큼 다가온 겨울을 재촉한다. 마지막 잎새를 떨구고 있는 겨울의 문턱에 조용한 산사를 찾아 정취를 만끽하며 사색에 잠겨보는 것은 어떨까.
겨울의 문턱에 선 아름다운 산사여행을 소개한다.

**조락의 계절 쓸쓸함 담은 백양사

20여종의 단풍나무가 이루는 절경으로 가을의 메타포가 된 내장산. 백양사 지구는 특히 아기단풍이 유명하다. 엄지손톱만한 것부터 아기손바닥만한 것까지 잎이 5∼7개로 갈라지며 백양사 일대를 붉게 불태운다.
봄 백양사, 가을 내장사라고 해 단풍은 내장사를 으뜸으로 꼽기도 하지만 실제 푸른 비자나무 숲과 늘어진 감나무, 그 주변으로 울긋불긋한 아기단풍나무숲이 어우러진 모습은 내장사보다 느끼는 감흥이 더 진하다.
조락의 계절 가을 단풍의 쓸쓸함속에 잠긴 백양사는 백제 무왕때 세워진 가람으로 하늘에서 흰 양이 내려와 설법을 들었다는 일화를 들려준다. 백양사에서 바라본 하늘과 연분홍 단풍을 담은 쌍계루의 연못은 한폭의 풍경화를 방불케 한다.
거울처럼 백양사 단풍 정경을 투영시키고 있는 쌍계루 연못을 보는 것은 백양사 방문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원효사 가는 길 … 눈과 어우러진 단풍 ‘선경’

갑작스레 내린 눈으로 인해 원효사 가는 길은 아직 지지 않은 단풍과 어우러져 흔히 접하지 못하는 선경을 연출한다. 포근한 어머니 같은 산으로 표현되는 무등산은 사시사철 아름다움을 자랑하지만 특히 가을 단풍이 이름높다. 가을이면 단풍을 배경으로 솟아 있는 규봉암과 중봉의 억새가 어우러져 한 폭의 동양화를 감상하는 듯 하다.
무등산 억새밭은 중머리재부터 시작해 서석대 입구까지 펼쳐진다. 백마의 등처럼 출렁이는 억새의 물결이 환상적이다. 중머리재는 말 그대로 스님의 머리같이 밋밋하게 생겼다. 그만큼 산행하는데 무리가 없다.
무등산의 북쪽 무등산 지구에 자리한 원효사는 신라 때 원효대가사 산세의 수려함을 사랑해 이곳에 암자를 세우고 지냈다 해 원효사라 명명됐다. 절 바로 앞에 높고 긴 계단이 있고, 양옆으로 하늘을 뒤덮은 우거진 대숲 때뭉에 마치 하늘로 오르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 일으킨다.

**두륜산, 늦가을 부여잡은 단풍의 향연

한반도에서 가장 늦게 단풍이 드는 곳. 가장 늦게 가을이 찾아오는 곳이다. 울창한 단풍숲과 푸른 동백나무가 자랑거리인 두륜산은 오색영롱한 빛깔들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하머니를 내뿜는 색다른 단풍 향연지다.
신라 진흥왕 5년 아도화상이 세운 대흥사(대둔사)를 병풍처럼 에워싼 단풍이 장관을 이룬다.
대흥사-가련봉-두륜봉-진불암-일지암-대흥사코스가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산행코스다.
두륜봉 정상에 오르면 마치 병풍처럼 다도해가 펼쳐지는데 그 위에 올라 다도해를 감상하다 보면 금방이라도 손에 잡힐 듯한 착각에 머리가 혼미해져 온다. 한반도 땅끝까지 이어진 산줄기와 남해 바다 위에 점점이 떠 있는 섬, 저 멀리 제주도 한라산까지 한 눈에 잡힐 듯한 신비한 풍광이 펼쳐진다.
두륜산은 케이블카를 이용해 오를 수도 있다. 케이블카를 이용하면 정상 바로 언저리까지 도달하는데 다도해와 넓은 평야가 펼쳐져 산행을 하지 않아도 된다.
/최재호기자 lion@kwangju.co.kr
/사진=최현배기자 choi@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