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근 축구공 하나로 아시아 친구들이 하나가 됐다.’
지난 26일 오후 광주시 광산구 평동산단 4번로 인근 축구장. 경기중에 유난히 대화가 없는 한 축구팀 선수들이 묵묵히 그라운드를 뛰어다니고 있었다.
축구팀 명칭은 ‘아시아 프렌즈(Asia friends)’.
평동산단에 근무하는 외국인 노동자와 이들을 후원하는 송정가나안교회(목사 김복주) 교인들로 구성된 축구동호회였다.
올해 4월에 창단된 이 축구팀은 태국, 베트남, 중국, 캄보디아, 스리랑카 등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 30여명이 주축이다. 김 목사와 교인들은 축구팀의 서포터즈로 활동하고 있다.
팀원은 그리 많지 않지만 여러 나라 노동자들이 활동하다보니 경기중 대화는 별로 없는 편이다.
아시아 연합팀이나 다름 없는 선수들이 30분간의 경기 도중 나눈 대화라곤 “헤이∼” “패스” “나이스”가 전부였다.
그래도 반년 넘게 발을 맞춰 온터라, 서로 눈빛만 봐도 패스를 어디다 줄지 알 정도로 수준급의 경기력을 갖추고 있다.
3년만의 귀국을 앞두고 있는 인디케(26·스리랑카)씨도 이날 한국에서의 마지막 축구경기에 나섰다.
지난 2005년 12월 코리안 드림을 안고 한국에 온 인디케씨는 새시(sash) 일을 하면서 한국을 배우고 자신의 꿈을 키웠다. 그는 일주일 후면 정들었던 한국을 떠나 그리운 가족들이 있는 스리랑카로 돌아간다. 외로운 타국생활에서 인디케씨의 삶을 활력소가 돼준 것은 축구였다.
“고국인 스리랑카에서는 크리켓을 많이 하지만 학창시절 친구들과 축구를 즐기기도 했습니다. 처음 한국에 와서는 말도 서툴고, 취미생활을 할 수 없어서 쉬는 날이면 집에만 있었는데 ‘아시아 프렌즈’를 통해 매주 축구를 하면서 스트레스도 풀고 같은 처지의 친구들과 수다도 떨면서 외로움을 달랠 수 있었습니다.”
힘든 일도 많았고, 상처를 준 사람도 있었지만 인디케씨는 한국에서 좋은 경험과 친구들을 더 많이 만날 수 있었다며 작별을 못내 아쉬워했다.
그는 축구를 하면서 더 많은 한국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운동이 끝난 뒤에 친구들과 함께 끓여 먹었던 라면 맛은 고국에 돌아가서도 잊지 못할 것 같다고 말한다.
올 4월 한국에 건너와 바로 축구팀에 가입한 반추(28·베트남)씨는 함께 운동을 하면서 한국말을 많이 배운 경우다.
프리미어리거 박지성 선수를 제일 좋아한다는 반추씨는 “운동을 하면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며 “축구는 타국생활의 무료함을 달래줄 유일한 취미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외국인 노동자들은 특근수당을 받기 위해 주말 오후에도 일을 한다. 그래서 아시아 프렌즈팀의 운동시간은 토·일요일 오후 5시부터다. 이날도 첫 경기를 시작한 지 불과 몇 분만에 해가 저물었지만 팀원들은 익숙한 환경인 듯 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축구를 계속했다.
송정소망교회 학생부 선수들과 대결한 이번 경기 결과는 2대 1 승리. 원래 1대 1로 경기시간이 끝났지만 승부를 가리기 위해 양팀이 골든골에 합의했다.
승부는 아시아 프렌즈팀의 골게터 수빈(23·태국)씨의 발끝에서 판가름 됐다. 창단멤버이기도 한 수빈씨는 이날 문전에서 패스 받은 볼을 상대팀 골대 구석으로 정확히 꽂아 넣어 간판 스트라이커로서의 역할을 다했다.
팀의 서포터즈이자 단장 역할을 맡고 있는 김 목사는 “팀원 대부분이 주말이면 외국인 동료와 만나 술 먹는 것이 유일한 여가생활이나 다름 없었지만 이제는 그라운드에서 함께 땀 흘리며 스트레스를 풀 수 있게 됐다”며 “내년에는 호남지역 외국인 축구팀을 모아서 대회도 유치해 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안현주기자 ahj@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