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한 번만 더 갈게요. 레디∼ 액션!”
8일 오후 서울 조계사 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열린 제3회 이주노동자영화제 개막현장. 방송 큐시트와 카메라 화면을 꼼꼼히 살펴보던 네팔 출신 어쇽 타파씨는 5번이나 재촬영을 한 끝에 OK 사인을 내보냈다.
어쇽씨는 이주노동자 방송인 ‘MWTV(Migrant Workers TV)’에서 ‘다국어 이주노동자 뉴스-네팔어 편’을 제작하면서 다큐멘터리 영화도 만드는 미디어 활동가. 이번 영화제 ‘이주의 시선’ 섹션에 ‘어둠 속의 등불’이라는 단편영화도 출품했다. ‘어둠 속의 등불’은 이주노동자들의 꿈과 희망을 노래하는 이주노동자 밴드인 ‘스탑크랙다운’의 활약을 담은 18분짜리 다큐멘터리다.
“처음엔 저도 가구공장에서 일했어요. 우리를 돈 벌러 온 사람으로만 취급하는 게 서운했어요. 이주노동자들이 단지 돈만 생각하고 한국에 온 게 아니라 더 나은 미래와 꿈을 위해 왔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서 영화를 만든 거에요.”
네팔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던 그가 한국에 온 것은 지난 2000년. 가구공장에서 노동자로 시작한 한국생활은 새벽 2시까지 이어지는 고된 노동과 잦은 임금체불 때문에 고달팠다. 지인의 소개로 서울 종로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에서 진행하는 영상제작 강의를 듣게 되면서 미디어활동가라는 새로운 꿈을 키우게 됐다.
어쇽씨는 “한국에 온 지 8년이 넘었어요. 남은 것은 170만 원짜리 비디오카메라와 영화 필름이 전부지만 행복해요. 한국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는 그런 미디어활동가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네팔인 미누씨도 어쇽씨와 함께 ‘이주노동자의 세상’을 만들고 있다. 한국생활 17년째인 그는 MWTV의 외국인 대표이자 이주노동자 밴드인 ‘스탑 크랙다운’의 리드보컬이다. 이 밴드는 벌써 2집 음반을 냈고 500여명의 팬클럽까지 보유한 인기그룹이다.
그는 이번 영화제 개막전 오프닝 영상을 만들었다. 이주노동자들이 직접 만드는 방송인 MWTV가 지난 2005년 4월 개국한 이래 지금까지 어떤 활동을 해왔는지 등을 소개한 영상물이다.
공장에서 8년 넘도록 일만 했던 미누씨가 미디어 활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지난 2004년 명동성당에서 열린 ‘미등록 이주노동자 완전합법’을 위한 천막 농성에 참가하면서부터다.
당시 많은 언론과 인터뷰를 했지만 대부분의 기사가 미누씨의 의도와 다르게 나갔고 아예 기사가 실리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사회가 필요해서 온 사람들인데 가난한 나라에서 일하러 온 불쌍한 사람이나 범죄자 취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죠. 누군가 대신 말해주기보다는 우리가 직접 우리 이야기를 해보자는 생각에 미디어 활동에 뛰어든 거죠.”
처음에는 공장 노동자로 한국을 찾았다가 미디어활동가로 변신, 자신들의 이야기를 직접 영상으로 만들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은 이들만이 아니다.
현재 MWTV에는 각자의 직장생활을 하면서 자원봉사 형식으로 이주노동자 미디어활동가만 30여 명에 이른다. 11개 나라에서 온 13명의 이주노동자가 방송 앵커로 참여하고 있으며 카메라 등 각자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들은 2주에 한 번씩 11개국어로 ‘다국어 이주노동자 뉴스’를 만들고 있다. 또 매월 한차례씩 60분 분량의 ‘이주노동자 세상’도 만들고 있다.
이들 방송은 위성TV채널인 ‘시민방송 R-TV’와 MWTV 홈페이지(www.mwtv.or.kr)에서 볼 수 있다.
/이은미기자 emlee@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