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한국은 또 하나의 고향] ② 건설현장 ‘안전 지킴이’ 조선족 정상허 씨
2008년 07월 20일(일) 18:50 가가
“정 반장 떴다하면 안되는 일 없어요”
“저의 작은 도움으로 건설현장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일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중국 흥룡강성 출신 정상허(43·㈜한라토건 소속)씨는 지난 2005년 7월부터 산업연수생 자격으로 한국에서 일하고 있다. 강원도 두촌과 울산시 터널공사 현장을 거쳐 현재 ‘동광주∼고서 고속도로 확장공사’ 현장에서 통역 등 모든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관련된 안살림을 도맡아 해오고 있다.
동광주∼고서 확장공사에서 일하고 있는 내·외국인 노동자를 합치면 80여명 가량. 이중 중국인 10명과 베트남인 8명 등 외국인 노동자가 23%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고속도로 공사현장에서 작업장 정리와 자재운반, 교통안전시설물 보수, 청소 등 주로 내국인 노동자들의 보조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정씨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지시된 업무를 통역, 전달해 주는 일을 주로 하고 있으며, 임금지급기일 때는 총무부서 외국인 담당자가, 동료가 쇼핑을 나갔을 때는 가이드가 돼주기도 한다. 한마디로 이곳 건설현장에서 ‘약방의 감초’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족 2세인 그는 중국에 살던 당시 흥룡강성 탄광기계공장에서 산소공급 기계를 관리하던 공무원이었다.
그러나 박봉에 생활은 넉넉하지 못했고, 지난 95년 사직서를 낸 직후 리비아 대수로 공사현장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대수로 공사는 한국기업인 동아건설에서 맡고 있었고, 그가 한국과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경남 밀양에서 태어난 그의 아버지는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북한과 만주를 거쳐 중국으로 건너갔고, 그곳에서 태어난 정씨는 줄곧 고향을 떠나지 않았던 탓에 한국말을 전혀 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나라에 대한 동경심은 항상 가슴속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었고, 리비아 공사현장에서 한국 사람들과 생활하면서 그 마음은 더 커져만 갔다.
리비아에서 8년 동안 한국 사람들과 지내다보니 자연스럽게 한국말도 늘었다. 웬만한 대화는 물론이고 한국 사람들과 농담이 오갈 정도로 한국말이 자연스러워졌다. 리비아에서 일을 끝내고 가족들 품으로 돌아갔지만, 한국에 대한 동경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때 정씨의 귀에 들려온 것이 산업연수생 제도. 고향에 돌아온 지 2년 만에 다시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많은 산업연수생들이 몸은 고되지만 임금을 많이 받을 수 있는 건설현장을 선호했고, 한국말까지 익숙한 그는 곧바로 한국도로공사 고속도로 건설현장에 투입됐다. 함께 일하던 외국인 노동자들 중 한국말이 가능했던 사람은 정씨 뿐이었다. 특히 베트남인 중에는 한국말이 가능한 사람이 전혀 없었고, 유일하게 또홍하이(34·베트남)씨만이 중국어가 가능한 정도였다.
대만 핸드폰 제작회사에서 2년간 일한 경험이 있는 또홍하이씨는 그곳에서 중국말을 배웠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모든 지시사항은 정씨를 거쳐갈 수밖에 없었다. 현장 책임자가 정씨에게 지시를 하면, 정씨는 중국인 노동자들과 또홍하이씨에게 이를 설명하고, 또홍하이씨는 이를 베트남 노동자들에게 전달하는 방식이었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입사일자가 다들 달라서 임금이 한번에 지급되지 않자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았습니다. 정씨가 이를 자세히 설명해주고 나서야 오해가 풀렸죠.” 현장 소장인 정동근 상무이사의 말처럼 정씨가 중재에 나서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는 복잡한 일들이 종종 일어났다.
올 초에는 베트남 출신 노동자 반반잡(25)씨가 사색이 된 얼굴로 소장실에 찾아와 눈물을 흘리며 무엇을 설명하려 했지만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었다. 급하게 정씨와 또홍하이씨를 찾았고, 3자 통역을 하고 나서야 반반잡씨의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았다. 회사 측의 배려로 그는 휴가를 받고 다음날 비행기로 베트남으로 떠났다. 두 사람의 도움이 없었다면 혼자 가슴앓이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도로공사는 최근 정씨와 또홍하이씨의 도움으로 3개 국어로 된 작업장 안내간판을 곳곳에 설치했으며, 이는 모든 외국인들의 안전사고 예방에 큰 도움을 주기도 했다.
동료 외국인들의 쇼핑자문 역할도 정씨 담당이다.
노트북 등 전자제품은 어디가 싼지, 국제전화카드는 어느 곳에서 구매해야 하는지 등을 알려주고, 대신 구매를 해주기도 한다. 정씨는 열심히 일해 모은 돈으로 고향 인근 신도시 땅을 구매했고, 벌써 3배나 값이 뛰었다고 좋아했다.
3개월 후면 한국생활을 마감하고 중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정씨는 “아버지의 나라 한국은 나에게 2번째 고향이나 다름없다”며 “또다시 기회가 된다면 언제든지 한국으로 건너와 일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현주기자 ahj@kwangju.co.kr
중국 흥룡강성 출신 정상허(43·㈜한라토건 소속)씨는 지난 2005년 7월부터 산업연수생 자격으로 한국에서 일하고 있다. 강원도 두촌과 울산시 터널공사 현장을 거쳐 현재 ‘동광주∼고서 고속도로 확장공사’ 현장에서 통역 등 모든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관련된 안살림을 도맡아 해오고 있다.
동광주∼고서 확장공사에서 일하고 있는 내·외국인 노동자를 합치면 80여명 가량. 이중 중국인 10명과 베트남인 8명 등 외국인 노동자가 23%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고속도로 공사현장에서 작업장 정리와 자재운반, 교통안전시설물 보수, 청소 등 주로 내국인 노동자들의 보조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정씨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지시된 업무를 통역, 전달해 주는 일을 주로 하고 있으며, 임금지급기일 때는 총무부서 외국인 담당자가, 동료가 쇼핑을 나갔을 때는 가이드가 돼주기도 한다. 한마디로 이곳 건설현장에서 ‘약방의 감초’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족 2세인 그는 중국에 살던 당시 흥룡강성 탄광기계공장에서 산소공급 기계를 관리하던 공무원이었다.
그러나 박봉에 생활은 넉넉하지 못했고, 지난 95년 사직서를 낸 직후 리비아 대수로 공사현장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대수로 공사는 한국기업인 동아건설에서 맡고 있었고, 그가 한국과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경남 밀양에서 태어난 그의 아버지는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북한과 만주를 거쳐 중국으로 건너갔고, 그곳에서 태어난 정씨는 줄곧 고향을 떠나지 않았던 탓에 한국말을 전혀 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나라에 대한 동경심은 항상 가슴속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었고, 리비아 공사현장에서 한국 사람들과 생활하면서 그 마음은 더 커져만 갔다.
리비아에서 8년 동안 한국 사람들과 지내다보니 자연스럽게 한국말도 늘었다. 웬만한 대화는 물론이고 한국 사람들과 농담이 오갈 정도로 한국말이 자연스러워졌다. 리비아에서 일을 끝내고 가족들 품으로 돌아갔지만, 한국에 대한 동경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때 정씨의 귀에 들려온 것이 산업연수생 제도. 고향에 돌아온 지 2년 만에 다시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많은 산업연수생들이 몸은 고되지만 임금을 많이 받을 수 있는 건설현장을 선호했고, 한국말까지 익숙한 그는 곧바로 한국도로공사 고속도로 건설현장에 투입됐다. 함께 일하던 외국인 노동자들 중 한국말이 가능했던 사람은 정씨 뿐이었다. 특히 베트남인 중에는 한국말이 가능한 사람이 전혀 없었고, 유일하게 또홍하이(34·베트남)씨만이 중국어가 가능한 정도였다.
대만 핸드폰 제작회사에서 2년간 일한 경험이 있는 또홍하이씨는 그곳에서 중국말을 배웠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모든 지시사항은 정씨를 거쳐갈 수밖에 없었다. 현장 책임자가 정씨에게 지시를 하면, 정씨는 중국인 노동자들과 또홍하이씨에게 이를 설명하고, 또홍하이씨는 이를 베트남 노동자들에게 전달하는 방식이었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입사일자가 다들 달라서 임금이 한번에 지급되지 않자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았습니다. 정씨가 이를 자세히 설명해주고 나서야 오해가 풀렸죠.” 현장 소장인 정동근 상무이사의 말처럼 정씨가 중재에 나서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는 복잡한 일들이 종종 일어났다.
올 초에는 베트남 출신 노동자 반반잡(25)씨가 사색이 된 얼굴로 소장실에 찾아와 눈물을 흘리며 무엇을 설명하려 했지만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었다. 급하게 정씨와 또홍하이씨를 찾았고, 3자 통역을 하고 나서야 반반잡씨의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았다. 회사 측의 배려로 그는 휴가를 받고 다음날 비행기로 베트남으로 떠났다. 두 사람의 도움이 없었다면 혼자 가슴앓이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도로공사는 최근 정씨와 또홍하이씨의 도움으로 3개 국어로 된 작업장 안내간판을 곳곳에 설치했으며, 이는 모든 외국인들의 안전사고 예방에 큰 도움을 주기도 했다.
동료 외국인들의 쇼핑자문 역할도 정씨 담당이다.
노트북 등 전자제품은 어디가 싼지, 국제전화카드는 어느 곳에서 구매해야 하는지 등을 알려주고, 대신 구매를 해주기도 한다. 정씨는 열심히 일해 모은 돈으로 고향 인근 신도시 땅을 구매했고, 벌써 3배나 값이 뛰었다고 좋아했다.
3개월 후면 한국생활을 마감하고 중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정씨는 “아버지의 나라 한국은 나에게 2번째 고향이나 다름없다”며 “또다시 기회가 된다면 언제든지 한국으로 건너와 일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현주기자 ahj@kwangju.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