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의 서쪽끝 화개장터는 하동, 구례, 쌍계사의 세 갈래 길목이라, 예로부터 오가는 나그네로 하여 언제나 흥성거렸다. 특히 장날이면 지리산 화전민들이 산나물을 들고 내려오고, 전라도 황화물 장수들이 구례길을 넘어오며, 섬진강 하류 해물장수들이 하동길을 통해 모여들었다. 김동리의 소설 ’역마’의 입새에 따른 말이다. 그러나 5일장이 사라진 오늘날 이곳엔 장돌뱅이 대신 매년 봄마다 벚꽃과 산수유를 찾아 동서의 상춘객들이 모여든다. 그리고 ’봄비가 백곡을 윤택하게 한다’는 곡우(穀雨)를 즈음해 꽃이 떨어지고 나면 꽃내음 대신 진한 차(茶)향으로 다시금 사람들을 끌어당긴다.
흔히들 차밭이라 하면 보성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하동의 차밭이 더욱 오래됐다. 특히 화개 지역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차 시배지(始培地)로 알려져 있다. 삼국사기 기록을 보면 ’신라 흥덕왕 3년(828년) 당나라에서 돌아온 사신 대렴공이 차 종자를 가져오자 왕이 지리산에 심기를 명했다’고 전한다. 쌍계사로 올라가는 화개동천 인근 1천년된 고차수잎으로 만든 녹차는 한 통에 1천만원이 훌쩍 넘을 정도다.
그러고 보면 화개, 악양면 등 하동 일대는 천혜의 차 재배지다. 3면이 지리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북쪽으로는 1천m가 넘는 고봉이 많아 차를 생산하기에 안성맞춤이라는 것.
그럼에도 보성에 비해 하동의 차밭이 덜 알려진 이유는 뭘까? 그것은 두 차밭의 특징 때문일 것이다. 하동의 차는 보성의 것과 다르다. 보성이 대규모로 조성된 재배 차밭이라면, 하동은 산비탈에서 저절로 번식해 이뤄진 야생녹차지다.
그래서일까? 차밭의 전경도,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도 또한 다르다. 탁트인 보성의 차밭은 이국적이다. 일정한 나무높이가 끝없는 곡선을 이루며 통일된 시원함을 느끼게 해준다. 그러나 올망졸망 산비탈마다 흩어져 흐드러진 하동의 차밭은 여느 밭뙈기랑 별반 다를바 없이 우리네 농촌 풍경 속의 한부분처럼 느껴진다. 시원함은 없지만 대자연과의 조화가 있다.
5월 하동의 차밭은 분주하다. 봄에 따는 찻잎은 시기와 크기에 따라 우전, 세작, 중작, 대작의 이름이 붙여지는데, 6월 초순까지 그 채취가 이어진다. 그래서 이 시기에 이곳을 찾으면 산기슭마다 찻잎을 따는 시골아낙들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때마침 오는 25일까지 시배지 일대에서 하동 야생차문화축제가 펼쳐진다니, 때를 맞춰 들러보는 것도 좋겠다.
화개동천 계곡 주변으론 차밭만큼이나 수제차를 파는 전통다실들을 손쉽게 발견할 수 있다. 대부분 직접 차밭을 일궈 가꾼 차나무에서 잎을 채취해 차를 만든다. 어느 다실이든 문을 열고 들어가 차 한 잔을 요구해도 괜찮다. 차를 마시고 굳이 구입하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갓 만들어 낸 차의 향기에 마음을 다잡기란 그 또한 쉽지 않다.
운이 좋으면 인근 농가에서 덖음을 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덖음이란 차의 독성을 제거하고 건조시키기 위해 찻잎을 솥에 넣고 볶는 과정으로, 섭씨 300∼350도의 무쇠 솥에 찻잎을 2∼3㎏씩 넣어 덖는다. 이후 고루 잘 덖은 찻잎을 손으로 비벼 상처를 내는데 이를 통해 차는 더욱 진한 향을 얻게 된다.
이 같은 과정을 직접 체험해보고 싶다면 인근 하동차문화센터(055-880-2838)에 들러보자. 센터 뒤쪽 차밭에서 직접 찻잎을 따 덖음체험을 할 수 있다. 단 참가인원이 30명 이상이어야만 가능하며, 30명당 10만원 상당의 참가비가 필요하다. 30명 이상 단체손님이 많을까 싶지만 5월의 경우 신청자가 몰려 이미 예약이 끝나 간다고 한다. 문의. 하동군청 문화관광과 055-880-2376.

**하동 가는 길

광주에서 남원·구례쪽 국도를 이용하는 방법과 남해고속도로를 이용해 순천을 경유 하동IC를 통과해 국도 19호선을 탄다. 바로 유홍준 교수가 그의 저서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에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꼽았던 바로 그 19번 국도다. 왼쪽으로 섬진강을 끼고 19번 국도를 따라 30분 가량 달리면 평사리 삼거리가 나온다. 그곳에서 우회전 하면 바로 드라마 ‘토지’ 촬영 세트였던 최참판댁, 평사리삼거리를 지나 400m가량 차를 몰면서 산길로 우회전 하면 형제봉에 올라 악양 들판을 조망할 수 있다. 화개장터로 바로 가고 싶다면 이를 다 건너뛰고 19번 국도를 타고 왼편으로 남도대교가 보일때가지 10여분을 더 달리자. 남도대교가 보이는 삼거리에서 우회전을 하면 바로 화개장터다.


/글=부산일보 김종열 기자 bell10@busanilbo.com
/사진=이재찬 기자 chan@busa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