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의 산 · 맑은 하늘 ‘사색의 땅’ - 라오스 루앙프라방
2008년 04월 30일(수) 19:40 가가
베트남의 거리를 메운 수많은 오토바이들이 마치 날파리떼 같다고 느껴질 만큼 지쳐가는 순간 루앙프라방은 청량제처럼 눈앞에 다가왔다. 베트남 하노이 국제공항을 떠나 55분간의 비행 만에 내린 루앙프라방 공항은 평온하고도 따스하게 사람들을 맞았다. ‘착한 도시’ 루앙프라방의 여행은 그렇게 기분 좋게 출발했다.
라오스 북부지역에 자리하고 있는 루앙프라방은 5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라오스의 옛 수도다. 1353년 라오스 최초의 통일국가인 란산(100만 마리의 코끼리라는 뜻) 왕조의 도읍지가 되었다. 오늘날의 지명은 실론 섬에서 만들어졌다는 황금불상 ‘프라방’을 이곳에 안치시킨 게 계기가 되었다.
스님들의 탁발 행렬 … 착한 사람들의 ‘착한 도시’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루앙프라방을 설명하기에 부족하다. 루앙프라방은 두 번의 ‘사건’을 거쳐 세계적인 지명도를 갖게 된다. 지난 1995년 유네스코는 루앙프라방 도시 전체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도시가 송두리째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는 말은 처음 듣는 듯했다. 그만큼 루앙프라방은 도시 전체가 보존가치가 있다는 점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셈이다. 이때부터 관광에 활기를 띠기 시작한 루앙프라방은 올해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지가 ‘2008년도에 꼭 가봐야 할 곳’ 1위로 라오스를 꼽으면서 다시 각광받고 있다. 현지 가이드는 “라오스를 꼭 가봐야 한다고 했다면 그것은 루앙프라방이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렇다고 ‘자! 어떤 볼거리가 있나’는 식으로 덤벼들다간 실망하기 십상이다. 문화유산 루앙프라방은 보는 도시가 아니라 사색하는 도시, 아니 사색케하는 도시이기 때문이다.
루앙프라방의 아침은 신비롭고 엄숙한 모습으로 밝아왔다. 먼동이 트기 전 미명의 새벽녘이 되면 시내 주변 사원에서는 스님들의 탁발(托鉢) 행렬이 시작된다. 탁발은 스님들의 끼니를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 관광객들에게는 신비한 경험이지만 라오스인들에게는 일상이자 신앙의 일부이다. 불교국가 라오스인들에게는 스님들에 대한 공양으로 경건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의식이기도 했다.
루앙프라방 도시 전체를 조망하려면 푸씨(Phu Si) 산이 제격이다. 해발 150m의 푸씨 산은 ‘신선의 산’이라는 의미로 정상까지 오르려면 모두 328개의 계단을 밟아야 한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 올쯤 눈앞에 루앙프라방 시가지가 한 장면으로 펼쳐진다. 공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푸른 녹음과 맑은 하늘, 그리고 도시를 관통하는 메콩강이 일상에 찌든 심신의 때를 털어내 주는 듯했다.
청정도시에 사는 인간이 혼탁해질 수는 없는 법, 그 속엔 그만큼 착한 사람들이 그야말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꽝시(Kuang Si) 폭포 가는 길에 위치한 소수민족 몽족마을과 메콩강을 따라 2시간 정도 배를 타고 들른 한지마을에서 이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물질적으로 풍요롭지 못해 보였다. 하지만 ‘물질 운운…’ 따위의 생각이 얼마나 못난 생각인지를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갓난 동생을 돌보는 아홉 살 어린 언니, 아들의 머리를 쓱쓱 깎아주는 아버지, 시내 강가에서 목욕을 하고 돌아오는 아낙, 묵묵히 베를 짜는 젊은 처녀의 모습은 한없이 평온해 보였다. 아직도 뇌리에 선명한 그들의 선한 눈빛은 해외여행에다 오지마을이라 구경한답시고 땀을 뻘뻘 흘리며 돌아다니는 관광객들을 향해 “너희들은 행복하냐?”라고 단호하게 되묻는 듯했다.
꽝시 폭포는 이름난 폭포들이 실망감만 안기는 것과는 사뭇 달랐다. 시원한 물줄기는 청량도시의 이미지를 그대로 대변하듯 맑고도 장엄했다. 폭포 주변에는 소담스러운 오솔길이 펼쳐져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명상의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옥빛의 자그마한 계곡과 웅덩이는 수영하고 싶은 마음을 충동질한다.
메콩강이 시내 관통,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
왓 씨엥 통 사원(Wat Xieng Thong)은 사원도시라 할 수 있는 루앙프라방을 대표하는 사원이다. 씸(Sim)이라는 본당의 벽장식이 매우 화려하다. 불당과 승려들의 거처, 종무소 등 3개의 건물로 구성되는 라오스 전통적인 사원 건축 스타일을 모범적으로 따르고 있다.
도시 전체에 불상이 산재한 것과 달리 팍오 불상동굴(Pak Ou Caves)은 메콩강 상류 25㎞ 쯤에 위치해 이색적이었다. 2시간 정도 배로 달려 찾아간 동굴에는 수천 개의 나무말뚝과 300년 이상 된 수많은 불상이 상·하층부 두 개의 동굴에 나누어져 있었다. 이 동굴의 불상들은 손바닥을 몸 안쪽으로 향해 양팔을 옆으로 내린 모습으로 비를 내리도록 염원하는 뜻이 담겨 있다고 했다.
도시 어디를 돌아다녀도 루앙프라방은 항상 사색할 기회를 제공했다. 하지만 현지에서는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고 뉴스위크지가 꼭 가봐야 할 곳으로 소개하면서 사람도 자연도 많이 변해가고 있다는 우려가 커져가고 있었다.
사람도 자연도 물질문명을 접하면 접할수록 본래의 착한 본성을 잃어버리기가 쉬우리라. 루앙프라방을 떠나면서 더 많은 관광객이 더 많은 볼거리를 위해 탐욕적으로 찾아온다면 사색의 착한 도시가 물들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글·사진=부산일보 노정현 기자 jhnoh@busanilbo.com
라오스 북부지역에 자리하고 있는 루앙프라방은 5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라오스의 옛 수도다. 1353년 라오스 최초의 통일국가인 란산(100만 마리의 코끼리라는 뜻) 왕조의 도읍지가 되었다. 오늘날의 지명은 실론 섬에서 만들어졌다는 황금불상 ‘프라방’을 이곳에 안치시킨 게 계기가 되었다.
스님들의 탁발 행렬 … 착한 사람들의 ‘착한 도시’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루앙프라방을 설명하기에 부족하다. 루앙프라방은 두 번의 ‘사건’을 거쳐 세계적인 지명도를 갖게 된다. 지난 1995년 유네스코는 루앙프라방 도시 전체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도시가 송두리째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는 말은 처음 듣는 듯했다. 그만큼 루앙프라방은 도시 전체가 보존가치가 있다는 점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셈이다. 이때부터 관광에 활기를 띠기 시작한 루앙프라방은 올해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지가 ‘2008년도에 꼭 가봐야 할 곳’ 1위로 라오스를 꼽으면서 다시 각광받고 있다. 현지 가이드는 “라오스를 꼭 가봐야 한다고 했다면 그것은 루앙프라방이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렇다고 ‘자! 어떤 볼거리가 있나’는 식으로 덤벼들다간 실망하기 십상이다. 문화유산 루앙프라방은 보는 도시가 아니라 사색하는 도시, 아니 사색케하는 도시이기 때문이다.
루앙프라방의 아침은 신비롭고 엄숙한 모습으로 밝아왔다. 먼동이 트기 전 미명의 새벽녘이 되면 시내 주변 사원에서는 스님들의 탁발(托鉢) 행렬이 시작된다. 탁발은 스님들의 끼니를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 관광객들에게는 신비한 경험이지만 라오스인들에게는 일상이자 신앙의 일부이다. 불교국가 라오스인들에게는 스님들에 대한 공양으로 경건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의식이기도 했다.
루앙프라방 도시 전체를 조망하려면 푸씨(Phu Si) 산이 제격이다. 해발 150m의 푸씨 산은 ‘신선의 산’이라는 의미로 정상까지 오르려면 모두 328개의 계단을 밟아야 한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 올쯤 눈앞에 루앙프라방 시가지가 한 장면으로 펼쳐진다. 공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푸른 녹음과 맑은 하늘, 그리고 도시를 관통하는 메콩강이 일상에 찌든 심신의 때를 털어내 주는 듯했다.
청정도시에 사는 인간이 혼탁해질 수는 없는 법, 그 속엔 그만큼 착한 사람들이 그야말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꽝시(Kuang Si) 폭포 가는 길에 위치한 소수민족 몽족마을과 메콩강을 따라 2시간 정도 배를 타고 들른 한지마을에서 이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물질적으로 풍요롭지 못해 보였다. 하지만 ‘물질 운운…’ 따위의 생각이 얼마나 못난 생각인지를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갓난 동생을 돌보는 아홉 살 어린 언니, 아들의 머리를 쓱쓱 깎아주는 아버지, 시내 강가에서 목욕을 하고 돌아오는 아낙, 묵묵히 베를 짜는 젊은 처녀의 모습은 한없이 평온해 보였다. 아직도 뇌리에 선명한 그들의 선한 눈빛은 해외여행에다 오지마을이라 구경한답시고 땀을 뻘뻘 흘리며 돌아다니는 관광객들을 향해 “너희들은 행복하냐?”라고 단호하게 되묻는 듯했다.
꽝시 폭포는 이름난 폭포들이 실망감만 안기는 것과는 사뭇 달랐다. 시원한 물줄기는 청량도시의 이미지를 그대로 대변하듯 맑고도 장엄했다. 폭포 주변에는 소담스러운 오솔길이 펼쳐져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명상의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옥빛의 자그마한 계곡과 웅덩이는 수영하고 싶은 마음을 충동질한다.
메콩강이 시내 관통,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
왓 씨엥 통 사원(Wat Xieng Thong)은 사원도시라 할 수 있는 루앙프라방을 대표하는 사원이다. 씸(Sim)이라는 본당의 벽장식이 매우 화려하다. 불당과 승려들의 거처, 종무소 등 3개의 건물로 구성되는 라오스 전통적인 사원 건축 스타일을 모범적으로 따르고 있다.
도시 전체에 불상이 산재한 것과 달리 팍오 불상동굴(Pak Ou Caves)은 메콩강 상류 25㎞ 쯤에 위치해 이색적이었다. 2시간 정도 배로 달려 찾아간 동굴에는 수천 개의 나무말뚝과 300년 이상 된 수많은 불상이 상·하층부 두 개의 동굴에 나누어져 있었다. 이 동굴의 불상들은 손바닥을 몸 안쪽으로 향해 양팔을 옆으로 내린 모습으로 비를 내리도록 염원하는 뜻이 담겨 있다고 했다.
도시 어디를 돌아다녀도 루앙프라방은 항상 사색할 기회를 제공했다. 하지만 현지에서는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고 뉴스위크지가 꼭 가봐야 할 곳으로 소개하면서 사람도 자연도 많이 변해가고 있다는 우려가 커져가고 있었다.
사람도 자연도 물질문명을 접하면 접할수록 본래의 착한 본성을 잃어버리기가 쉬우리라. 루앙프라방을 떠나면서 더 많은 관광객이 더 많은 볼거리를 위해 탐욕적으로 찾아온다면 사색의 착한 도시가 물들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글·사진=부산일보 노정현 기자 jhnoh@busan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