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아저씨 어떻게 지내세요?
2008년 04월 23일(수) 20:01 가가
김해 봉하마을 생가·사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연인 노무현’으로 돌아왔다. 드넓은 바다를 헤엄치던 연어가 태어난 강으로 돌아가듯 ‘귀향 1호 대통령’을 기록하면서 서울 종로구 세종로 1번지 청와대에서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로 주소지를 옮겼다.
‘봉하마을 주민 노무현’이 32년 만에 다시 둥지를 튼 김해 봉하마을에는 평일 3천명, 주말 1만명의 관광 인파가 몰려든다. 이명박 대통령의 고향인 경북 포항 덕실마을도 최근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지만 이는 ‘뜨는 해’인 이 대통령의 생가를 찾아 용솟음치는 기운을 받기 위한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저문 해’인 노 전 대통령의 생가를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노 전 대통령을 향한 추억과 그리움, ‘이웃 노무현’에 대한 호기심, 그리고 특혜 논란을 불러일으킨 ‘노무현타운’의 실체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픈 마음이 어우러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봉화산(烽火山) 봉수대 아래 있는 마을이라 하여 ‘봉하(峰下)마을’로 이름 붙은 이 마을은 49가구에 130여명이 벼농사와 진영 단감농사를 짓고 있다. 한마디로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마을로 들어서면 노 대통령의 귀향을 환영하는 100여개의 현수막과 노란 풍선이 바람에 나부낀다. 마을회관 앞 광장에 도착하면 마을 안쪽으로 농촌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신축 저택 3채가 눈에 들어온다. 맨 먼저 맞닥뜨리는 집은 본산리 이장 집이고 다음은 경호요원들이 머무는 경호동사다. 노 전 대통령의 사저는 그 집들의 맨 안쪽이다. 이를 모르는 일부 관광객이 이장의 집을 둘러싸고 ’노무현’을 연호해 대는 바람에 이장이 최근 큰 고생을 치르고 있다고 한다.
사저로 들어서는 100여m의 진입로에는 ‘노사모’에서 설치한 소형 플래카드 20여개가 줄지어 있다. 2003년 취임 후부터 지난해 10월 남북정상회담까지 노 전 대통령의 주요 치적을 사진과 함께 게시해 놓은 것이다.
‘이웃 노무현’ … 생가 소박함 그 자체
또 이 길에는 10여개의 대형 보드도 세워져 있다. 보드에는 노 전 대통령의 귀향을 환영하는 인사말부터 보수언론과 현 집권여당을 성토하는 ‘열혈팬’의 격문까지, 방문객들이 남긴 다양한 글들로 빼곡하다. 얼마 전 이곳을 다녀간 이경규, 김구라, 김제동, 타블로 등 연예인들의 방명록도 설핏 보인다.
노 전 대통령의 사저 바로 앞에 있는 낡은 슬레이트의 단층주택이 눈에 띈다. 제비가 처마 밑에서 ‘셋방살이’를 하고 있는 재래식 농가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바로 노 전 대통령이 태어나 일곱 살까지 살았던 생가다. 원래 부엌 하나에 방 두 칸짜리 초가집이었는데 몇 차례 개량을 거치면서 현재의 슬레이트 건물로 탈바꿈했다. 이 집은 농사를 짓는 김영자(63·여)씨 내외가 41년째 살고 있는데 지난해 노 전 대통령의 지인이 사들였고, 김해시는 이를 생가 원형 그대로 복원할 계획이라고 한다. 어쨌든 대통령을 배출한 집터라 여겨 마당의 돌멩이와 흙을 비닐봉지에 담아가는 관광객들이 많다고 한다.
생가 바로 옆이 노 전 대통령이 머물고 있는 사저다. 집은 지하 1층, 지상 1층의 규모로 대도시 주택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양옥 형태다. 1.5m 높이의 석축과 함께 대나무와 소나무가 둘러쳐져 울타리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검정 점퍼 차림의 경호원 3명과 CCTV 카메라가 사저 입구를 물샐 틈 없이 지키고 있는 점은 조금 이질적인 부분.
“대통령님 얼굴 좀 봅시다”하면 나올까
경호부분만 뺀다면 주변 분위기 역시 여느 조용한 주택가 풍경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아직은 조경작업이 채 마무리되지 않아 인부와 공사차량이 수시로 드나드는 탓에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이다. 이런 것을 종합해 볼 때 일부 언론에서 ‘495억원짜리 노무현타운’, ‘노무현궁’ 등으로 묘사한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이게 정말 문제의 그 대통령 집이 맞냐”며 실망감이 역력한 관광객들의 표정은 이를 잘 반영한다.
노 전 대통령 사저 방문의 하이라이트는 노타이에 슬리퍼 차림으로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노 전 대통령의 소탈한 모습을 보는 것이다. 이를 위해 방송에서 보듯 수십명의 관광객과 함께 “대통령님, 얼굴 좀 봅시다”라며 외쳐 보았지만 불행이도 탐방 당일은 그 모습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공략법은 있다. 방문인파가 한꺼번에 많이 몰렸을 때를 노려 함께 목청껏 소리를 질러대면 노 전 대통령이 고개를 내밀 확률이 높다. 단순 무식하지만 ‘이쯤 되면 막가자는 기분(?)’으로 진득하게 기다리는 방법도 있다. 실제로 많은 관광객들이 그렇게 해서 사진도 찍고 악수도 하고 친필 사인도 받았다고 한다. 기다리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지만, 만나고 못 만나고는 다소 억울하지만 노 전 대통령 마음에 달렸다. 기다리기 지루하다면 봉하마을 쉼터에서 어묵과 라면, 국수를 먹으며 정보를 교환하거나 ’봉하마을 테마주막촌’에 들러 소고기국밥과 해물파전에 두부를 곁들여 막걸리나 소주를 한잔해도 좋다.
노무현 前 대통령 산책하는 봉화산 등반
아쉬움을 뒤로하고 봉화산을 올랐다. 봉화산은 높이 137m의 야트막한 동네 뒷산이지만 고대인들이 제물을 올려 산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제사터와 조선시대에 봉화를 올리던 봉화터가 있다고 한다. 바로 그 산을 노 전 대통령이 사색을 하며 산책한다고 한다.
20여분을 걸어 산 정상의 ’사자바위’에 오르니 드넓은 김해평야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오른쪽으로 아담한 봉하마을이 내려다보인다. 물론 ’노무현타운’의 전경도 한눈에 들어온다. 지금쯤 그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상상하면 못 만난 아쉬움이 조금은 줄어든다. 산 중턱 마애불과 호미든 관음개발성상 등도 산책의 즐거움을 더한다. 김해시가 이곳에다 웰빙 숲을 조성한다고 하니 다음을 기약해도 좋을 것 같다.
올 때의 기대와 달리 봉하마을을 떠나는 길은 진한 아쉬움으로 가득했다. 언젠가 노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 주민’으로 완전히 자리 잡는 날, 후덕한 촌부 같은 노 전 대통령과 함께 진영단감을 깎아 먹으며 담소를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생가 안내소 055-346-0660.
/부산일보 글=박태우 기자 wideneye@ busanilbo.com
/사진=김병집 기자 kbj@ busanilbo.com
‘봉하마을 주민 노무현’이 32년 만에 다시 둥지를 튼 김해 봉하마을에는 평일 3천명, 주말 1만명의 관광 인파가 몰려든다. 이명박 대통령의 고향인 경북 포항 덕실마을도 최근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지만 이는 ‘뜨는 해’인 이 대통령의 생가를 찾아 용솟음치는 기운을 받기 위한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저문 해’인 노 전 대통령의 생가를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노 전 대통령을 향한 추억과 그리움, ‘이웃 노무현’에 대한 호기심, 그리고 특혜 논란을 불러일으킨 ‘노무현타운’의 실체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픈 마음이 어우러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봉화산(烽火山) 봉수대 아래 있는 마을이라 하여 ‘봉하(峰下)마을’로 이름 붙은 이 마을은 49가구에 130여명이 벼농사와 진영 단감농사를 짓고 있다. 한마디로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마을로 들어서면 노 대통령의 귀향을 환영하는 100여개의 현수막과 노란 풍선이 바람에 나부낀다. 마을회관 앞 광장에 도착하면 마을 안쪽으로 농촌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신축 저택 3채가 눈에 들어온다. 맨 먼저 맞닥뜨리는 집은 본산리 이장 집이고 다음은 경호요원들이 머무는 경호동사다. 노 전 대통령의 사저는 그 집들의 맨 안쪽이다. 이를 모르는 일부 관광객이 이장의 집을 둘러싸고 ’노무현’을 연호해 대는 바람에 이장이 최근 큰 고생을 치르고 있다고 한다.
사저로 들어서는 100여m의 진입로에는 ‘노사모’에서 설치한 소형 플래카드 20여개가 줄지어 있다. 2003년 취임 후부터 지난해 10월 남북정상회담까지 노 전 대통령의 주요 치적을 사진과 함께 게시해 놓은 것이다.
‘이웃 노무현’ … 생가 소박함 그 자체
또 이 길에는 10여개의 대형 보드도 세워져 있다. 보드에는 노 전 대통령의 귀향을 환영하는 인사말부터 보수언론과 현 집권여당을 성토하는 ‘열혈팬’의 격문까지, 방문객들이 남긴 다양한 글들로 빼곡하다. 얼마 전 이곳을 다녀간 이경규, 김구라, 김제동, 타블로 등 연예인들의 방명록도 설핏 보인다.
노 전 대통령의 사저 바로 앞에 있는 낡은 슬레이트의 단층주택이 눈에 띈다. 제비가 처마 밑에서 ‘셋방살이’를 하고 있는 재래식 농가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바로 노 전 대통령이 태어나 일곱 살까지 살았던 생가다. 원래 부엌 하나에 방 두 칸짜리 초가집이었는데 몇 차례 개량을 거치면서 현재의 슬레이트 건물로 탈바꿈했다. 이 집은 농사를 짓는 김영자(63·여)씨 내외가 41년째 살고 있는데 지난해 노 전 대통령의 지인이 사들였고, 김해시는 이를 생가 원형 그대로 복원할 계획이라고 한다. 어쨌든 대통령을 배출한 집터라 여겨 마당의 돌멩이와 흙을 비닐봉지에 담아가는 관광객들이 많다고 한다.
생가 바로 옆이 노 전 대통령이 머물고 있는 사저다. 집은 지하 1층, 지상 1층의 규모로 대도시 주택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양옥 형태다. 1.5m 높이의 석축과 함께 대나무와 소나무가 둘러쳐져 울타리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검정 점퍼 차림의 경호원 3명과 CCTV 카메라가 사저 입구를 물샐 틈 없이 지키고 있는 점은 조금 이질적인 부분.
“대통령님 얼굴 좀 봅시다”하면 나올까
경호부분만 뺀다면 주변 분위기 역시 여느 조용한 주택가 풍경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아직은 조경작업이 채 마무리되지 않아 인부와 공사차량이 수시로 드나드는 탓에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이다. 이런 것을 종합해 볼 때 일부 언론에서 ‘495억원짜리 노무현타운’, ‘노무현궁’ 등으로 묘사한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이게 정말 문제의 그 대통령 집이 맞냐”며 실망감이 역력한 관광객들의 표정은 이를 잘 반영한다.
노 전 대통령 사저 방문의 하이라이트는 노타이에 슬리퍼 차림으로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노 전 대통령의 소탈한 모습을 보는 것이다. 이를 위해 방송에서 보듯 수십명의 관광객과 함께 “대통령님, 얼굴 좀 봅시다”라며 외쳐 보았지만 불행이도 탐방 당일은 그 모습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공략법은 있다. 방문인파가 한꺼번에 많이 몰렸을 때를 노려 함께 목청껏 소리를 질러대면 노 전 대통령이 고개를 내밀 확률이 높다. 단순 무식하지만 ‘이쯤 되면 막가자는 기분(?)’으로 진득하게 기다리는 방법도 있다. 실제로 많은 관광객들이 그렇게 해서 사진도 찍고 악수도 하고 친필 사인도 받았다고 한다. 기다리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지만, 만나고 못 만나고는 다소 억울하지만 노 전 대통령 마음에 달렸다. 기다리기 지루하다면 봉하마을 쉼터에서 어묵과 라면, 국수를 먹으며 정보를 교환하거나 ’봉하마을 테마주막촌’에 들러 소고기국밥과 해물파전에 두부를 곁들여 막걸리나 소주를 한잔해도 좋다.
노무현 前 대통령 산책하는 봉화산 등반
아쉬움을 뒤로하고 봉화산을 올랐다. 봉화산은 높이 137m의 야트막한 동네 뒷산이지만 고대인들이 제물을 올려 산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제사터와 조선시대에 봉화를 올리던 봉화터가 있다고 한다. 바로 그 산을 노 전 대통령이 사색을 하며 산책한다고 한다.
20여분을 걸어 산 정상의 ’사자바위’에 오르니 드넓은 김해평야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오른쪽으로 아담한 봉하마을이 내려다보인다. 물론 ’노무현타운’의 전경도 한눈에 들어온다. 지금쯤 그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상상하면 못 만난 아쉬움이 조금은 줄어든다. 산 중턱 마애불과 호미든 관음개발성상 등도 산책의 즐거움을 더한다. 김해시가 이곳에다 웰빙 숲을 조성한다고 하니 다음을 기약해도 좋을 것 같다.
올 때의 기대와 달리 봉하마을을 떠나는 길은 진한 아쉬움으로 가득했다. 언젠가 노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 주민’으로 완전히 자리 잡는 날, 후덕한 촌부 같은 노 전 대통령과 함께 진영단감을 깎아 먹으며 담소를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생가 안내소 055-346-0660.
/부산일보 글=박태우 기자 wideneye@ busanilbo.com
/사진=김병집 기자 kbj@ busan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