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7개월째인 풍옥덴(23·강진군 황룡면·베트남 출신) 씨는 지난 6일, 배 속의 아이와 함께 모처럼 ‘화려한 외출’에 나섰다. 전남도가 이주여성가족을 대상으로 매년 한 차례씩 시행하고 있는 ‘다문화 가정 부부 공동체 훈련’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아침 일찍 예쁜 옷을 차려입고 남편 조병복(44·농업)씨의 손을 잡고 도착한 곳은 최근 개장한 ‘나주 중흥골드스파&리조트’. 리조트 1층 행사장에는 풍옥덴씨처럼 남편과 함께 이틀간의 나들이에 나선 이주외국인 여성 부부 35쌍이 도착해 있었다.
처음엔 남편도 아내도 서먹한 분위기였지만, 강사의 사회에 따라 레크리에이션이 진행되면서 행사장은 음악과 웃음소리 그리고 다정한 속삭임으로 가득한, 활기찬 공간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강사의 지시에 따라 손바닥으로 열심히 남편의 등을 두드려주며 게임에 열중하던 풍옥덴씨는 연방 “너무 좋다. 행복하다”며 남편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그녀는 “여기 한국에 온 지 2년째인데 주변에서 많이 도와줘 잘 살고 있다”며 “이런 모임에는 처음이지만 무척 재미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남편 조 씨도 “아내가 장성군청에서 마련한 ‘한글·문화학교’에서 우리말과 한글, 한국문화를 많이 배워 적응을 잘하고 있다”며 “될 수 있으면 이런 외부모임에 자주 참석해 한국에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아내 메리안(38·필리핀 출신) 씨, 그리고 아들 승배(5)군과 함께 행사에 참석한 이정실(43·상업)씨는 “5년째 진도에 살고 있지만 시간이 없어 이런 행사에 자주 참석하지 못하고 있다”며 “시부모를 모시면서 악착같이 살려고 노력하는 아내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앞으로는 자주 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미안해 했다. 메리안 씨도 “좀더 많이 오고 싶지만 사정상 그렇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친구들도 만나고, 모처럼 가족만의 휴식시간도 가질 수 있어 기쁘다”고 즐거워 했다.
전남도가 주관한 이번 행사는 다문화가정을 이루고 있는 부부가 서로를 좀더 깊이 이해하고, 또 외국인 주부가 한국문화에 좀더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지자체 차원에서 지원하기 위한 것이다. 지난 2002년에 시작됐으니 올해로 6년째다. 매년 40여 쌍의 다문화 가정 부부가 공동체 훈련에 참가하고 있다.
전남도는 이번 행사처럼 ‘남편과 함께 하는’ 각종 행사와 교육 프로그램이 다문화가정 주부의 한국 적응에 큰 도움이 되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주여성을 한국사회 속으로 이끌어 내는 데 남편만큼 적절한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주여성들의 한국사회 적응을 돕기 위한 체계적인 교육은 각 지자체별로 꾸준히 계속되고있다. 나주와 강진 등 전남도 내 22개 시·군에서 결혼 이민여성을 대상으로,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한글교실’이나 ‘문화교실’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풍옥덴씨도 강진군청에서 마련한 ‘한글교실’에서 우리말과 한글을 배웠다. 2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미 상당수준의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그녀는 “처음엔 가족들이 모두 바빠 한국어를 배울 곳이 마땅치 않았다”며 “하지만 군청에서 운영하는 한글교실에서 일주일에 4시간씩 한글을 배울 수 있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강진군청 사회복지과 직원 기은자(41)씨는 “결혼이민여성들은 한글과 한국문화를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며 “군청에서는 한글교실과 예절교실, 전통체험교실 등을 자체적으로 운영,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씨는 그러나 “결혼 이민여성이 남편이나 시부모의 도움없이 자발적으로 이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은 사실상 한계가 있다”며 “아내의 한국 사회 적응을 도우려는 남편과 가족의 적극적인 외조, 그리고 이주여성들을 가족처럼 보살펴 주는 이웃의 따뜻한 시선이 무엇보다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홍행기기자 redplane@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