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부 동남아 국제결혼 현장을 가다 <18> ‘인간시장’ 베트남 현지 맞선
2007년 06월 03일(일) 19:42 가가
맞선에서 결혼까지 3박4일이면 ‘끝’
“남편의 직업은 농업이고, 부모님을 모셔야 한다” “고추농사는 힘이 많이드는 만큼 자신없으면 포기해도 좋다”
지난달 13일 베트남시 호치민 외곽의 결혼식장에서 진행된 한 결혼중개업소의 맞선 현장. 신랑의 신상에 대한 현지 통역의 말이 떨어지자 문옆에 앉아있던 베트남 여성이 머뭇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1차 선택을 통해 선발된 9명의 신부 후보 가운데 한 명이 거부의사를 표시한 것이다.
하지만 예비 신부들의 선택권은 이 뿐이다. 배우자 지목에서 결정까지 한국인 남성 위주로 맞선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이날 3∼4단계를 거친 최종 후보 3명 가운데 신부감으로 지목된 후앙(32·가명)씨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반면 최종 선택에서 제외된 두 명의 여성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곧바로 방을 빠져나갔다.
정석민(46·가명)씨는 퇴장하는 여성들을 바라보며 “여러 명에서 (신부를) 선택하는 게 너무 잔인한 것 같다”면서 “나이만 맞으면 다른 조건은 상관없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서장인(38·가명)씨도 고심 끝에 신부를 선택한 직후 “(정보업체)사장님이 장단점 등을 일러주지 않았다면 결코 신부를 고르지 못했을 것 같다”며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훔쳤다.
◇매매혼 성격 맞선 관행 여전=최근 베트남 당국의 감시속에서도 베트남 여성과의 국제결혼이 여전히 한국 남성 위주로 진행되고 있다.
한국 남성은 한 번 맞선에 적게는 20∼30명, 많게는 50∼100명을 볼 수 있다. A업체의 경우 베트남 여성이 5∼10명씩 모여있는 방을 7∼8곳 돌며 마음에 드는 여성을 1∼2명씩 고른 뒤 이들을 대상으로 2차 10여명, 3차 3∼5명 등으로 좁혀가며 최종 한 명을 낙점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커플이 서로의 신상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채 맺어지고 있다. 3∼5명으로 압축된 최종 선택 단계에 가서야 배우자의 나이와 학력, 직업, 가족관계, 고향 등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비 신부는 맞선 과정에서 사실상 자신의 뜻을 표현하지 못한다. 최종 선택까지의 경쟁이 워낙 치열한 데다 이유없이 남성을 거부할 경우 현지 ‘마담’들이 더 이상 맞선의 기회를 주지 않는다. 농사나 시부모 봉양 여부 등 일반적인 사안에 대해선 거부할 수 있지만 정작 남편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는 없다는 얘기다.
물론 이같은 남편의 일반적인 신상소개도 일부 업체들로 국한된다. 상당수 중개업체는 성혼률을 높이기 위해 남편의 직업이나 수입 등을 부풀리는 등 왜곡된 정보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는 게 현지 관계자의 설명이다. 또 이들 업체의 경우 남편의 가정폭력 등 범죄경력이나 이혼경력 등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부실 결혼’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게 제기되고 있다.
◇‘인륜지 대사’ 3박4일에 마무리=베트남에서의 국제결혼은 ‘초특급’으로 진행된다. 맞선, 결혼식, 합방, 신혼여행이 길게는 6박7일, 짧게는 2박3일 내에 이뤄진다.
일단 맞선을 통해 배우자를 선택하면 나머지 과정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맞선 다음날 신부 부모들로부터 결혼 승낙을 받은 뒤 호치민 국립병원에서 정신병력 및 에이즈검사를 마치면 모든 결혼 준비가 마무리 된다.
신부 부모들은 결혼 승낙서에 사인하기 직전 비로소 신랑의 얼굴을 볼 수 있다. 신부 부모들의 입장에선 결혼 승낙과 결혼식에 맞추기 위해 이틀 연속 새벽잠을 설치며 7∼8시간 걸리는 호치민행 버스에 몸을 실어야 한다. 최근 베트남 신부의 경우 카마오 등 호치민 남부의 궁벽한 시골마을 출신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지 풍습에 따라 ‘전광석화’ 처럼 결혼식을 치르면 신랑·신부는 비로소 부부가 됐음을 실감하게 된다. 하지만 결혼식 이후 4∼5개월은 정식 부부생활을 할 수 없다. 베트남 정부가 지난해 7월 이후 신랑이 2회 입국해야 결혼허가를 내주면서 한국입국까지의 기간이 2∼3개월 가량 늘어난 것이다.
특히 지난달 말에는 베트남 맞선 과정에서 신부 후보자에 대한 ‘알몸 검사’ 논란이 일면서 단속이 크게 강화됐다. 맞선현장에서 베트남 경찰에 단속된 건수만 올들어만 120건에 달한다는 게 현지 중개업자들의 설명이다. 최근 베트남 진출 업체 가운데 상당수가 캄보디아로 옮겨가거나 우즈베키스탄이나 몽골 등지로 사업확장을 고심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베트남 현지 A중개업소 지사장은 “국제결혼 커플의 행복을 보장하기 위해선 결혼 중개과정에서의 첫 단추가 잘 꿰져야 한다”며 “정부의 외교노력은 물론 국제결혼중개업소에 대한 허가제도입 등 적극적인 대안 마련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호치민=최경호기자 choice@kwangju.co.kr
지난달 13일 베트남시 호치민 외곽의 결혼식장에서 진행된 한 결혼중개업소의 맞선 현장. 신랑의 신상에 대한 현지 통역의 말이 떨어지자 문옆에 앉아있던 베트남 여성이 머뭇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1차 선택을 통해 선발된 9명의 신부 후보 가운데 한 명이 거부의사를 표시한 것이다.
하지만 예비 신부들의 선택권은 이 뿐이다. 배우자 지목에서 결정까지 한국인 남성 위주로 맞선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이날 3∼4단계를 거친 최종 후보 3명 가운데 신부감으로 지목된 후앙(32·가명)씨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반면 최종 선택에서 제외된 두 명의 여성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곧바로 방을 빠져나갔다.
정석민(46·가명)씨는 퇴장하는 여성들을 바라보며 “여러 명에서 (신부를) 선택하는 게 너무 잔인한 것 같다”면서 “나이만 맞으면 다른 조건은 상관없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서장인(38·가명)씨도 고심 끝에 신부를 선택한 직후 “(정보업체)사장님이 장단점 등을 일러주지 않았다면 결코 신부를 고르지 못했을 것 같다”며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훔쳤다.
◇매매혼 성격 맞선 관행 여전=최근 베트남 당국의 감시속에서도 베트남 여성과의 국제결혼이 여전히 한국 남성 위주로 진행되고 있다.
한국 남성은 한 번 맞선에 적게는 20∼30명, 많게는 50∼100명을 볼 수 있다. A업체의 경우 베트남 여성이 5∼10명씩 모여있는 방을 7∼8곳 돌며 마음에 드는 여성을 1∼2명씩 고른 뒤 이들을 대상으로 2차 10여명, 3차 3∼5명 등으로 좁혀가며 최종 한 명을 낙점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커플이 서로의 신상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채 맺어지고 있다. 3∼5명으로 압축된 최종 선택 단계에 가서야 배우자의 나이와 학력, 직업, 가족관계, 고향 등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비 신부는 맞선 과정에서 사실상 자신의 뜻을 표현하지 못한다. 최종 선택까지의 경쟁이 워낙 치열한 데다 이유없이 남성을 거부할 경우 현지 ‘마담’들이 더 이상 맞선의 기회를 주지 않는다. 농사나 시부모 봉양 여부 등 일반적인 사안에 대해선 거부할 수 있지만 정작 남편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는 없다는 얘기다.
물론 이같은 남편의 일반적인 신상소개도 일부 업체들로 국한된다. 상당수 중개업체는 성혼률을 높이기 위해 남편의 직업이나 수입 등을 부풀리는 등 왜곡된 정보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는 게 현지 관계자의 설명이다. 또 이들 업체의 경우 남편의 가정폭력 등 범죄경력이나 이혼경력 등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부실 결혼’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게 제기되고 있다.
◇‘인륜지 대사’ 3박4일에 마무리=베트남에서의 국제결혼은 ‘초특급’으로 진행된다. 맞선, 결혼식, 합방, 신혼여행이 길게는 6박7일, 짧게는 2박3일 내에 이뤄진다.
일단 맞선을 통해 배우자를 선택하면 나머지 과정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맞선 다음날 신부 부모들로부터 결혼 승낙을 받은 뒤 호치민 국립병원에서 정신병력 및 에이즈검사를 마치면 모든 결혼 준비가 마무리 된다.
신부 부모들은 결혼 승낙서에 사인하기 직전 비로소 신랑의 얼굴을 볼 수 있다. 신부 부모들의 입장에선 결혼 승낙과 결혼식에 맞추기 위해 이틀 연속 새벽잠을 설치며 7∼8시간 걸리는 호치민행 버스에 몸을 실어야 한다. 최근 베트남 신부의 경우 카마오 등 호치민 남부의 궁벽한 시골마을 출신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지 풍습에 따라 ‘전광석화’ 처럼 결혼식을 치르면 신랑·신부는 비로소 부부가 됐음을 실감하게 된다. 하지만 결혼식 이후 4∼5개월은 정식 부부생활을 할 수 없다. 베트남 정부가 지난해 7월 이후 신랑이 2회 입국해야 결혼허가를 내주면서 한국입국까지의 기간이 2∼3개월 가량 늘어난 것이다.
특히 지난달 말에는 베트남 맞선 과정에서 신부 후보자에 대한 ‘알몸 검사’ 논란이 일면서 단속이 크게 강화됐다. 맞선현장에서 베트남 경찰에 단속된 건수만 올들어만 120건에 달한다는 게 현지 중개업자들의 설명이다. 최근 베트남 진출 업체 가운데 상당수가 캄보디아로 옮겨가거나 우즈베키스탄이나 몽골 등지로 사업확장을 고심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베트남 현지 A중개업소 지사장은 “국제결혼 커플의 행복을 보장하기 위해선 결혼 중개과정에서의 첫 단추가 잘 꿰져야 한다”며 “정부의 외교노력은 물론 국제결혼중개업소에 대한 허가제도입 등 적극적인 대안 마련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호치민=최경호기자 choice@kwangju.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