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공부 문제로 많은 고민을 했지만 어떻게 해 볼 방법이 없어요. 그저 이렇게 넘어가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 막막하기만 합니다.”
마사코(41)씨는 책상에 마주 앉은 아이들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 쉬었다. 국제결혼을 통해 나주에 살게 된지 벌써 15년째지만 아이들 교육을 생각할 때마다 억장이 무너진다.
중학교 3학년인 진앙이와 중학교 1학년인 정아, 초등학교 4학년인 진현이 그리고 막내인 창용이(초등학교 2학년) 이렇게 네 아이 모두 성격은 활달하지만, ‘언어적인’ 문제로 학교성적이 중·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엄마’가 한국어를 별로 못하다 보니, 아이들 어렸을 때 한국어 발음이나 단어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던 것이 결국 ‘성적 부진’이라는 문제를 불러 왔다는 게 마사코씨의 생각이다.
그녀는 “이제는 한국어를 곧잘 하지만 결혼 초에는 한국어를 잘 하지 못해 아이들에게 발음이나 문법을 거의 가르쳐 주지 못했고, 아이들 아빠도 생활에 바빠 아이를 별로 돌보지 못했다”며 “아이들은 지금도 발음이 좋지 않다”고 답답해 했다.

첫째와 둘째는 서서히 나아지고 있지만, 초등학생인 셋째와 넷째는 아직도 발음이 잘 안 되는 데다 어려운 단어는 알아듣지 못하고, 이해력도 또래보다 많이 떨어지는 것 같아 고민이라는 그녀는 “이런 문제가 쌓이고 쌓이면 고등학교, 대학교는 물론 사회에서도 영영 뒤처지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지난 2003년 필리핀에서 건너온 레야(37·여·가명) 씨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3살짜리 지훈이는 간신히 한국말을 하지만, 발음이 불분명해 알아듣기가 힘들 정도다.
14개월 된 장훈이는 ‘엄마’ ‘아빠’를 옹알거리는 또래와는 달리 아직까지도 말이 ‘터지지’않았다. 엄마 레야씨는 간단한 한국말만 하는 처지여서, 아이들의 ‘한국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 아이들의 문제를 아예 인식하지 못하는 셈이다.

이 같은 문제점은 실제 학교생활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26명의 국제결혼가정 자녀가 다니는 나주초등학교의 경우, 이들의 성적이 대부분 중·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다 최근 전남도교육청이 실시한 진단평가 결과 2∼6학년 생 20명 가운데 절반인 10명이 기준학력에도 미달한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학교 김순종 교감은 “국제결혼 가정 자녀 가운데 상당수가 빈곤한 가정에서 자라고 있는데다, 외국 출신인 어머니는 한국어 실력이 유치원 수준도 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이국적인 외모로 인해 따돌림을 당하는 경우는 별로 없지만, 한국어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 수업을 잘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전남도 교육청 강홍숙 장학사도 “일선 교사들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국제결혼가정 자녀의 경우 고학년으로 올라가면서 상태가 다소 좋아지지만 저학년은 발음이 불분명하고 어휘력이 부족해 말하기를 아예 꺼리는 경우가 많다”며 “가정에서도 지도해 줄 사람이 없어 과제물 준비를 비롯 가정학습이 잘 안 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강 장학사는 또 “아이들이 어렸을 땐 어머니가 언어적 자극을 줘야하는데, 국제결혼 가정의 경우 그 같은 일이 어렵다”며 “아이들이 가정에서 아빠의 한국말과 엄마의 외국말을 듣다 보니 혼란에 빠져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결혼이민가족지원연대 전남대표 홍기술 목사는 “국제결혼가정 자녀 가운데 상당수는 어렸을 때 엄마의 정확한 한국어 발음을 듣지 못해 발음이 불분명한데다, 어휘력도 부족해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라며 “이 같은 상황이 지속할 경우 어른이 되어서도 사회체제 편입하지 못하는 부작용을 낳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홍 목사는 또 “얼굴 생김새가 다르거나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정서적인 장애에 시달리면서, 불안을 호소하거나 자폐증에 시달리는 경우도 일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어렸을 때부터 체계적인 교육을 하고, 교사들에게도 적절한 연수를 실시하는 등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홍행기기자 redplane@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