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안 리포트-짓눌러오는 절대 빈곤
2007년 03월 26일(월) 13:29 가가
기름값 없어 세 아이와 함께 ‘냉방살이’
무안군 무안읍 허름한 단칸방에서 세 아이와 함께 생활하는 비아트리스(37·필리핀 출신)씨 가족은 올 겨울 내내 감기를 달고 살았다. 동사무소에서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권자에게 매달 지급하는 39만 원으로는 먹고 살기도 빠듯해, 단 한 번도 보일러를 가동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 20일, 초등학교 1학년인 둘째 딸 미란(12) 이가 생일선물로 사달라고 한 ‘1천 원짜리 인형’도 ‘너무 비싸’ 사주지 못했다.
지난 98년 결혼한 지 6년 만에 남편이 세상을 떠난 이후 세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비아트리스씨의 재산은 현재 살고 있는 단칸방 전세금이 전부다. 아이들을 키우느라 공장에도 나가지 못하는데다, 가끔씩 아르바이트로 들어오는 영어 원어민교사 자리도 요즘엔 거의 끊기는 바람에 살아갈 길이 막막한 상태다.
막내 유치원 교재비는 물론 얼마 안 되는 전기료·수도료도 밀린지가 오래다. 필리핀 마닐라의 5년제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곤 하지만, 이곳에서 취직하기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이웃에 필리핀 친구들이 살고 있기는 하지만 모두 여유가 없는 탓에 급전을 빌리기도 쉽지 않다.
지난 2001년 국제결혼을 통해 담양에 정착한 베트남 출신 리티 후엔(28) 씨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돈이 없어 밖에도 못 나가요. 츄리닝 한 벌로 한철을 나는 때가 많고요. 비행기표를 살 돈이 없어 고향에는 가볼 생각도 못합니다.”
혼자서 베트남을 다녀오는데 50만 원 정도가 필요하지만, 남편이 수천만 원대의 빚을 지고 있는 상황에서 돈을 마련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부모님께도 결혼 초 꼭 한 번 30만 원을 보내드렸을 뿐 그 이후론 전화로 안부만 전하고 있다. 부모님이 편찮으시단 연락이 와도 눈물만 흘릴 뿐이다. 병원에도 거의 가보지 못했다. 남편과 시어머니가 돈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해, 아무리 아파도 꾹 참고 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잘 사는 나라에서, 좋은 남편을 만나, 행복하게 사는 미래를 찾아 한국에 온 이주여성들이 빈곤이라는 늪에서 신음하고 있다. 이주여성 상당수가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할 정도로 가난에 찌들어 살고 있는데다, 이들을 위한 사회보장체제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희망이 없는’ 삶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전남도가 1천499명의 국제결혼 이주여성을 대상으로 실시한 ‘복지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의 12.8%인 185명이 ‘경제적 이유로 식비를 줄이거나, 끼니를 거른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100명 중 12명 이상의 이주여성이 끼니를 걱정할 정도의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는 얘기다.
또 지난 2005년 기준 가구당 최저생계비의 경우 이주여성 가정의 절반이 넘는 52.9%가 최저생계비 이하의 소득을 올리고 있으며, 특히 가구당 소득이 최저생계비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경우가 무려 44.2%에 이르는 등 대다수 이주여성 가정이 ‘절대 빈곤’상태에 놓여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주여성들이 이처럼 경제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결혼 상대자인 남성들의 대다수가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위치에 있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주여성과 결혼한 남성들은 일정한 직장이 없는 경우가 많은데다 결혼으로 인해 진 빚까지 갚아야 하는 실정이어서, 이주여성과 한국 남편, 남편의 가족 등과 심각한 갈등을 빚는 주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주여성들은 이처럼 가난에 시달리고 있으면서도, 한국정부가 국민에게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는 사회보장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있었다.
전남도 조사에 따르면 1천429명의 이주여성 가구 중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권자로 선정돼 매월 40만 원 안팎을 지원받는 가구는 215명으로, 전체의 15%에 불과했다. 이주여성 가정의 소득이나 끼니를 거른 경험의 비율 등을 감안하면, 식생활마저 위협받는 극빈층 가구만이 수급권자 혜택을 받고 있을 뿐 많은 빈곤층 이주여성 가정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로부터 제외되어 있는 것이 현실인 셈이다.
이와 함께 대다수 이주여성이 의료보험에 가입되어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고 있는 실정인데다, 조사대상의 18%가 ‘치료비가 부담돼’ 의사의 도움이 꼭 필요한데도 병원에 가지 못했거나 중도에 치료를 포기했던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나는 등 의료보장체제에서도 소외되어 있는 실정이다.
대불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김오남 교수는 “최근 들어 한국국적을 갖고 있지 않더라도 기초생활수급권자로 선정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등 사회보장제도는 어느 정도 개선되고 있지만 빈곤 문제는 나아질 기미를 보이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빈곤은 이주여성 가족 전체의 문제로서 다뤄져야 하며, 금전적인 지원보다는 교육과 정보제공 등을 통해 고소득을 올릴 수 있는 길을 제시해주는 방향으로 지원책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행기기자 redplane@kwangju.co.kr
지난 98년 결혼한 지 6년 만에 남편이 세상을 떠난 이후 세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비아트리스씨의 재산은 현재 살고 있는 단칸방 전세금이 전부다. 아이들을 키우느라 공장에도 나가지 못하는데다, 가끔씩 아르바이트로 들어오는 영어 원어민교사 자리도 요즘엔 거의 끊기는 바람에 살아갈 길이 막막한 상태다.
막내 유치원 교재비는 물론 얼마 안 되는 전기료·수도료도 밀린지가 오래다. 필리핀 마닐라의 5년제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곤 하지만, 이곳에서 취직하기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이웃에 필리핀 친구들이 살고 있기는 하지만 모두 여유가 없는 탓에 급전을 빌리기도 쉽지 않다.
지난 2001년 국제결혼을 통해 담양에 정착한 베트남 출신 리티 후엔(28) 씨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돈이 없어 밖에도 못 나가요. 츄리닝 한 벌로 한철을 나는 때가 많고요. 비행기표를 살 돈이 없어 고향에는 가볼 생각도 못합니다.”
혼자서 베트남을 다녀오는데 50만 원 정도가 필요하지만, 남편이 수천만 원대의 빚을 지고 있는 상황에서 돈을 마련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부모님께도 결혼 초 꼭 한 번 30만 원을 보내드렸을 뿐 그 이후론 전화로 안부만 전하고 있다. 부모님이 편찮으시단 연락이 와도 눈물만 흘릴 뿐이다. 병원에도 거의 가보지 못했다. 남편과 시어머니가 돈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해, 아무리 아파도 꾹 참고 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잘 사는 나라에서, 좋은 남편을 만나, 행복하게 사는 미래를 찾아 한국에 온 이주여성들이 빈곤이라는 늪에서 신음하고 있다. 이주여성 상당수가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할 정도로 가난에 찌들어 살고 있는데다, 이들을 위한 사회보장체제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희망이 없는’ 삶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전남도가 1천499명의 국제결혼 이주여성을 대상으로 실시한 ‘복지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의 12.8%인 185명이 ‘경제적 이유로 식비를 줄이거나, 끼니를 거른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100명 중 12명 이상의 이주여성이 끼니를 걱정할 정도의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는 얘기다.
또 지난 2005년 기준 가구당 최저생계비의 경우 이주여성 가정의 절반이 넘는 52.9%가 최저생계비 이하의 소득을 올리고 있으며, 특히 가구당 소득이 최저생계비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경우가 무려 44.2%에 이르는 등 대다수 이주여성 가정이 ‘절대 빈곤’상태에 놓여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주여성들이 이처럼 경제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결혼 상대자인 남성들의 대다수가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위치에 있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주여성과 결혼한 남성들은 일정한 직장이 없는 경우가 많은데다 결혼으로 인해 진 빚까지 갚아야 하는 실정이어서, 이주여성과 한국 남편, 남편의 가족 등과 심각한 갈등을 빚는 주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주여성들은 이처럼 가난에 시달리고 있으면서도, 한국정부가 국민에게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는 사회보장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있었다.
전남도 조사에 따르면 1천429명의 이주여성 가구 중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권자로 선정돼 매월 40만 원 안팎을 지원받는 가구는 215명으로, 전체의 15%에 불과했다. 이주여성 가정의 소득이나 끼니를 거른 경험의 비율 등을 감안하면, 식생활마저 위협받는 극빈층 가구만이 수급권자 혜택을 받고 있을 뿐 많은 빈곤층 이주여성 가정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로부터 제외되어 있는 것이 현실인 셈이다.
이와 함께 대다수 이주여성이 의료보험에 가입되어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고 있는 실정인데다, 조사대상의 18%가 ‘치료비가 부담돼’ 의사의 도움이 꼭 필요한데도 병원에 가지 못했거나 중도에 치료를 포기했던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나는 등 의료보장체제에서도 소외되어 있는 실정이다.
대불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김오남 교수는 “최근 들어 한국국적을 갖고 있지 않더라도 기초생활수급권자로 선정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등 사회보장제도는 어느 정도 개선되고 있지만 빈곤 문제는 나아질 기미를 보이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빈곤은 이주여성 가족 전체의 문제로서 다뤄져야 하며, 금전적인 지원보다는 교육과 정보제공 등을 통해 고소득을 올릴 수 있는 길을 제시해주는 방향으로 지원책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행기기자 redplane@kwangju.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