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남몰래 흐느끼는 그녀들’ - 광주일보.전남대 문화예술사업단 공동기획
2007년 03월 18일(일) 19:19 가가
필리핀 출신 지나(36·가명)씨는 최근 광주지법으로부터 이혼 판결을 받았다. 지난 2000년 국제결혼해 두 아이를 낳고 한국 국적까지 취득했지만 남편과 함께 한 지난 6년은 ‘공포의 나날’이었다. 1주일이 멀다하고 재발되는 남편의 폭행 때문이었다. 구타는 술을 마시거나 기분이 좋지 않은 날이면 어김없이 재연됐다. 친정에 경제적 보탬을 주고 싶어 공장에서 일하기도 했지만 조금이라도 귀가가 늦으면 폭언과 폭행이 이어졌다. 지나씨는 “더 이상 무서워서 못살겠다”며 경찰에 신고를 했고 광주여성의 전화와 법률구조공단의 도움으로 이혼 소송을 제기했다.
베트남에서 전남으로 시집온 H(25)씨는 지난 1월 6일 새벽 3시 파출소를 찾았다. 얼굴과 복부를 비롯 온몸에는 피멍이 든 채였다. 남편의 구타를 피해 경찰을 찾은 것이다. 그녀는 지난해 5월 자신보다 30살이나 많은 남편과 결혼했다. 20대 초반의 딸까지 둔 남자였지만 ‘한국에선 잘 살 수 있겠지’하는 생각에 입국했다. 하지만 자신에게 돌아온 것은 상습적인 폭력이었다. 경찰에서 그녀는 울먹이며 ‘베트남으로 돌려보내 달라’고 통사정했다.
빈곤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개척하기 위해 부푼 기대를 안고 광주·전남으로 들어온 국제결혼 이주여성의 상당수는 심각한 인권침해에 시달리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남편들의 상습적인 구타와 폭언 등 가정폭력이다.
그 심각성은 여러 실태조사 결과에서도 확인된다. 지난달 이순형 서울대 교수(아동가족학과)팀이 농림부의 의뢰로 전라·강원·경상·충청도 농촌지역 베트남, 일본, 중국, 필리핀 출신 여성결혼 이민자 16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용역조사 결과 여성결혼이민자 가운데 남편에게 언어적 학대를 당한 경우가 28.1%, 신체적 학대 9.5%, 성적 학대는 9.0%나 됐다.
광주여성발전센터 조사(2002년)에서는 광주·전남지역 국제결혼 여성 100명 가운데 30명이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고 답했다. 학대의 종류에는 폭행 57%, 폭언이 18%, 경제적 학대가 12%였다.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 중 16%는 자녀에게도 상습적으로 폭력을 휘두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광주여성의 전화에 가정폭력과 관련 상담을 요청해온 이주여성도 2004년 14명, 2005년 15명, 2006년 28명, 올들어 현재까지 7명 등 매년 늘고 있다.
최소한의 생활비 조차 받지 못한 채 경제적 학대를 당하고 있는 이주여성들도 적지 않다.
베트남 출신인 W(24)씨는 2년 전 전남의 한 농촌마을로 시집을 왔다. 결혼 당시에는 미처 물랐는데 남편에게는 정신 질환이 있었고, 군에서 지급한 출산장려금과 매월 지급되는 양육비는 시어머니가 관리하며 자신에게는 한 푼도 주지 않았다. 목욕조차 마음대로 다니지 못하게 할뿐더러 여성에게 꼭 필요한 생활용품도 사주지 않았다. 11개월 된 딸에게 먹일 이유식 값이라도 벌어볼까 하고 “일을 나가겠다”고 하면 돌아오는 것은 야단 아니면 남편의 폭행뿐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베트남의 친어머니가 베트남대사관에 하소연했고 1366센터를 거쳐 지금은 이주여성 쉼터에 피신해있다.
전문가들은 국제결혼 중개과정에서 돈을 매개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 이주여성들이 인격적인 존재로 대접받지 못할 소지가 잠재돼 있다고 진단한다. 매매혼적 성격으로 인해 의처증과 불신, 인격모독, 구타 등의 인권침해를 당할 우려가 높다는 지적이다.
이주여성들은 “주변에서 남편과 시어머니로부터 ‘너를 데려오는데 돈이 얼마나 들었는지 아느냐’고 구박을 당했다는 얘기를 들을 때면 가장 가슴이 아프다”고 토로한다. 광주 이주가족복지회 관계자는 “한글교육 시간에 남편이 다짜고짜 들어와 머리채를 잡고 질질 끌다시피 데려가는 경우도 있다”고 안타까워 했다. 또한 동남아 이주 여성과 한국인 남성간 나이가 평균 10살, 많게는 30살 이상 차이가 나는 데다 한국 남성의 경우 이혼 후 재혼 비율이 40%나 되는 점도 의처증이나 가정폭력의 잠재요인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 남성과 가족들은 가부장적 인식이 강한 반면 여성결혼이민자 상당수가 구 사회주의권이나 모계 풍습이 강한 나라에서 들어오고 있고, 의사소통이 잘 안되며 빈곤층이 많은 점도 갈등을 빚는 요인이 되고 있다.
신분상의 불안정도 이주여성들을 불리한 입장에 놓이게 한다. 이들이 한국 국적을 취득하기 전까지는 외국인 신분이어서 국적 취득 전에 결혼이 파탄지경에 이르면 본국으로 귀국해야 하거나 불법 체류자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가정폭력으로 인한 이혼 사례도 최근 크게 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05년 외국인 처와의 이혼은 전 년에 비해 51.7%나 증가했다. 이는 같은 기간 내국인 이혼 증가율 7.8%를 크게 웃도는 것이다.
이주여성들은 이같은 인권침해와 가정폭력에 시달리면서도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모른 채 속앓이를 하는 경우가 많다. 농림부-서울대팀 조사에 따르면 가정폭력을 경험한 뒤 도움을 받는 방법을 아는지에 대한 질문에 절반 이상인 52.9%가 ‘전혀 모른다’고 답했다. 광주여성발전센터 조사에선 남편의 학대에 대해 피해여성의 64%가 ‘그냥 참는다’, 26%는 ‘가출한다’고 답했다. 여성단체에 도움을 청한 경우는 9%에 그쳤다.
광주·전남지역에는 5곳의 결혼이민자가족지원센터가 운영되고 있으나 가정폭력 피해를 입은 이주여성을 보호할 수 있는 시설은 나주센터 산하의 쉼터가 유일하다. 광주와 목포, 여수 등에도 가정폭력상담소와 쉼터가 있지만 내국인을 위한 시설이어서 이주여성은 쉽게 접근할 수 없다. 언어 장벽과 인식의 벽 때문이다.
따라서 이주여성들에게 적절한 지원·보호서비스를 제공해줄 수 있는 전용 상담소와 쉼터 확충이 시급하다. 남편과 가족들에 대한 갈등해소 교육도 필요하다. 서울대 이순형 교수팀은 “이주여성 인권보호를 위해 결혼 초기 가정방문 상담 및 생활지도와 함께 정기적인 전화상담을 제공해야 한다”며 특히 장기 폭력에 대한 피난처로 쉼터를 마련해 제공할 것을 제안했다. 지난해 11월 개설된 이주여성긴급전화1366센터(전용상담 전화 1577-1366)에서는 10여명의 이주여성 상담자들이 7개 언어로 24시간 상담을 해주고 있다.
/정후식기자 who@kwangju.co.kr
/사진=최현배기자 choi@kwangju.co.kr
베트남에서 전남으로 시집온 H(25)씨는 지난 1월 6일 새벽 3시 파출소를 찾았다. 얼굴과 복부를 비롯 온몸에는 피멍이 든 채였다. 남편의 구타를 피해 경찰을 찾은 것이다. 그녀는 지난해 5월 자신보다 30살이나 많은 남편과 결혼했다. 20대 초반의 딸까지 둔 남자였지만 ‘한국에선 잘 살 수 있겠지’하는 생각에 입국했다. 하지만 자신에게 돌아온 것은 상습적인 폭력이었다. 경찰에서 그녀는 울먹이며 ‘베트남으로 돌려보내 달라’고 통사정했다.
빈곤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개척하기 위해 부푼 기대를 안고 광주·전남으로 들어온 국제결혼 이주여성의 상당수는 심각한 인권침해에 시달리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남편들의 상습적인 구타와 폭언 등 가정폭력이다.
그 심각성은 여러 실태조사 결과에서도 확인된다. 지난달 이순형 서울대 교수(아동가족학과)팀이 농림부의 의뢰로 전라·강원·경상·충청도 농촌지역 베트남, 일본, 중국, 필리핀 출신 여성결혼 이민자 16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용역조사 결과 여성결혼이민자 가운데 남편에게 언어적 학대를 당한 경우가 28.1%, 신체적 학대 9.5%, 성적 학대는 9.0%나 됐다.
광주여성발전센터 조사(2002년)에서는 광주·전남지역 국제결혼 여성 100명 가운데 30명이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고 답했다. 학대의 종류에는 폭행 57%, 폭언이 18%, 경제적 학대가 12%였다.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 중 16%는 자녀에게도 상습적으로 폭력을 휘두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광주여성의 전화에 가정폭력과 관련 상담을 요청해온 이주여성도 2004년 14명, 2005년 15명, 2006년 28명, 올들어 현재까지 7명 등 매년 늘고 있다.
최소한의 생활비 조차 받지 못한 채 경제적 학대를 당하고 있는 이주여성들도 적지 않다.
베트남 출신인 W(24)씨는 2년 전 전남의 한 농촌마을로 시집을 왔다. 결혼 당시에는 미처 물랐는데 남편에게는 정신 질환이 있었고, 군에서 지급한 출산장려금과 매월 지급되는 양육비는 시어머니가 관리하며 자신에게는 한 푼도 주지 않았다. 목욕조차 마음대로 다니지 못하게 할뿐더러 여성에게 꼭 필요한 생활용품도 사주지 않았다. 11개월 된 딸에게 먹일 이유식 값이라도 벌어볼까 하고 “일을 나가겠다”고 하면 돌아오는 것은 야단 아니면 남편의 폭행뿐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베트남의 친어머니가 베트남대사관에 하소연했고 1366센터를 거쳐 지금은 이주여성 쉼터에 피신해있다.
전문가들은 국제결혼 중개과정에서 돈을 매개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 이주여성들이 인격적인 존재로 대접받지 못할 소지가 잠재돼 있다고 진단한다. 매매혼적 성격으로 인해 의처증과 불신, 인격모독, 구타 등의 인권침해를 당할 우려가 높다는 지적이다.
이주여성들은 “주변에서 남편과 시어머니로부터 ‘너를 데려오는데 돈이 얼마나 들었는지 아느냐’고 구박을 당했다는 얘기를 들을 때면 가장 가슴이 아프다”고 토로한다. 광주 이주가족복지회 관계자는 “한글교육 시간에 남편이 다짜고짜 들어와 머리채를 잡고 질질 끌다시피 데려가는 경우도 있다”고 안타까워 했다. 또한 동남아 이주 여성과 한국인 남성간 나이가 평균 10살, 많게는 30살 이상 차이가 나는 데다 한국 남성의 경우 이혼 후 재혼 비율이 40%나 되는 점도 의처증이나 가정폭력의 잠재요인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 남성과 가족들은 가부장적 인식이 강한 반면 여성결혼이민자 상당수가 구 사회주의권이나 모계 풍습이 강한 나라에서 들어오고 있고, 의사소통이 잘 안되며 빈곤층이 많은 점도 갈등을 빚는 요인이 되고 있다.
신분상의 불안정도 이주여성들을 불리한 입장에 놓이게 한다. 이들이 한국 국적을 취득하기 전까지는 외국인 신분이어서 국적 취득 전에 결혼이 파탄지경에 이르면 본국으로 귀국해야 하거나 불법 체류자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가정폭력으로 인한 이혼 사례도 최근 크게 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05년 외국인 처와의 이혼은 전 년에 비해 51.7%나 증가했다. 이는 같은 기간 내국인 이혼 증가율 7.8%를 크게 웃도는 것이다.
이주여성들은 이같은 인권침해와 가정폭력에 시달리면서도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모른 채 속앓이를 하는 경우가 많다. 농림부-서울대팀 조사에 따르면 가정폭력을 경험한 뒤 도움을 받는 방법을 아는지에 대한 질문에 절반 이상인 52.9%가 ‘전혀 모른다’고 답했다. 광주여성발전센터 조사에선 남편의 학대에 대해 피해여성의 64%가 ‘그냥 참는다’, 26%는 ‘가출한다’고 답했다. 여성단체에 도움을 청한 경우는 9%에 그쳤다.
광주·전남지역에는 5곳의 결혼이민자가족지원센터가 운영되고 있으나 가정폭력 피해를 입은 이주여성을 보호할 수 있는 시설은 나주센터 산하의 쉼터가 유일하다. 광주와 목포, 여수 등에도 가정폭력상담소와 쉼터가 있지만 내국인을 위한 시설이어서 이주여성은 쉽게 접근할 수 없다. 언어 장벽과 인식의 벽 때문이다.
따라서 이주여성들에게 적절한 지원·보호서비스를 제공해줄 수 있는 전용 상담소와 쉼터 확충이 시급하다. 남편과 가족들에 대한 갈등해소 교육도 필요하다. 서울대 이순형 교수팀은 “이주여성 인권보호를 위해 결혼 초기 가정방문 상담 및 생활지도와 함께 정기적인 전화상담을 제공해야 한다”며 특히 장기 폭력에 대한 피난처로 쉼터를 마련해 제공할 것을 제안했다. 지난해 11월 개설된 이주여성긴급전화1366센터(전용상담 전화 1577-1366)에서는 10여명의 이주여성 상담자들이 7개 언어로 24시간 상담을 해주고 있다.
/정후식기자 who@kwangju.co.kr
/사진=최현배기자 choi@kwangju.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