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소국이라 깔보며 이해조차 안해요"
2007년 03월 04일(일) 18:41 가가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모르겠습니다. 너무 힘들어요.”
지난 1일, 담양의 한 마을에서 만난 베트남 출신 이주여성 당티투홍 씨(28·가명)는 지난 6년간의 결혼 생활을 되돌아보며 눈물을 삼켰다. 낯선 타국에서, 남편과 시어머니 그리고 주변 친지들로부터 당해야 했던 무시와 따돌림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아무리 잘하고 싶어도 남편과 시어머니가 받아주질 않아요. 뭘 잘못했는지, 고치겠다고 말씀을 해 달라고 해도 그저 화만 내세요”
당티투홍 씨는 ‘한국말에 익숙지 않은데다 아직까지 한국음식을 잘 만들지 못하고, 아들을 낳지 못한 죄 때문’이라고 막연히 생각하고는 있지만, 집에만 오면 말이 없어지는 남편과 시도 때도 없이 불만을 터뜨리는 시어머니를 보면 억장이 무너진다. 어쩌다 손찌검이라도 당하는 날이면 살고 싶은 생각이 없어진다.
당티투홍 씨는 고된 결혼생활 속에서도 남편과 시어머니가 한국음식만 먹게 하거나 어떻게든 한국사람과 똑같이 행동하게 하는 것을 못 견뎌 했다. “가난한 나라라며 베트남을 무시하는 것은 물론, 아예 베트남을 잊어버리라고 말씀하세요. 그러지만 20여 년간 나서 자란 고향을 기억에서 지워버릴 순 없잖아요. 그런 것은 조금만 이해해주고, 존중해줬으면 좋겠어요.”
그녀는 특히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이라는 한국의 가부장적인 문화에 적응하지 못해 힘겨워 했다.
“베트남에선 남자가 아내에게 잘 해줘요. 남자와 여자가 똑같거든요. 아내가 힘들어하면 남편이 밥하고 청소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한국은 달라요. 남편과 웃어른이 시키는 대로 해야합니다.”
속이 상한 듯 한동안 침묵하던 그녀는 “여기서처럼 맞거나 하는 일이 있으면 베트남에선 이혼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이젠 무섭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키워야 할 어린 두 딸을 생각하면 참고 살 수밖에 없어요.”라며 긴 한숨을 쉬었다.
코리안 드림을 찾아 한국에 온 이주여성들이 ‘문화적 차이’라는 암초에 부딪혀 표류하고 있다. 한국의 고유한 사고방식과 가치관에 미처 적응하지 못한 상당수 이주여성들이 ‘속수 무책으로’ 한국사회의 편견에 희생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전남도가 실시한 ‘이주여성 실태조사’결과에 따르면 국제결혼 가정의 부부싸움 이유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이 바로 ‘남편과의 생활방식 차이’(25.8%)였다. 경제문제(15.5%)나 부모와의 불화(3.6%) 등은 큰 이유가 되지 못했다.
또 ‘이주여성이 시부모와 관계에서 느끼는 어려움’에 대한 조사에서도 ‘사고방식과 가치관, 생활방식의 차이’라는 답변이 32.1%를 차지해, ‘의사소통의 어려움’(22.1%)을 크게 앞질렀다.
실제로 이주여성들은 음식과 같은 구체적이고 사소해 보이는 것에서부터, 국가관·가치관과 같은 추상적인 부분에 이르기까지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된 다양한 문제들로 갈등과 마찰을 빚고 있다.
나주에 거주하는 이주여성 웬옥투(27·베트남)씨는 “남편이 베트남 음식 냄새가 싫다고 따로따로 음식을 해 먹을 때면 기분이 좋지 않다”며 “이제 어느 정도는 한국에 익숙해져야 하는데, 아직까지도 ‘아 나도 한국인이구나’ 하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올해로 3년째 광주에서 살고 있는 뤄친(30·중국 한족)씨도 중국과 한국의 다른 풍습 때문에 애를 먹고 있다. 뤄친 씨는 남편이 중국어를 할 줄 알아 결혼 후 한국생활에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뜻밖에 중국 시어머니와 한국의 시어머니의 가치관이 근본적으로 달라 당황했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가락지 같은 예물을 해주는데 한국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예를 들었다. 그녀는 또 “한국은 남녀불평등이 너무 심하다”며 “아침 일찍 남편 출근 전에 식사를 챙기고 배웅해야 하고, 또 남편은 밖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무조건 남편을 이해해야 한다는 한국의 가부장적 문화에 적응하는 것이 무척 힘들다”고 말했다.
명절 문화에 대해서도 “중국에서는 명절 때 밖에 나가서 축제 분위기를 즐기는 반면 한국에선 남자들은 놀고 여자들이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제사를 지내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여자만 힘들게 하는 명절이라 재미가 없다”고 말했다.
한국 남편들도 할 말은 있는 듯했다. 19세 연하의 베트남 여성과 결혼해 나주에 살고 있는 조상봉(39)씨는 “(이주여성들이) 코리안 드림만 생각하다 보니 한국의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며 “국제 결혼하는 남자들 가운데 고학력자나 부유층에 속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데도 ‘그저 한국만 가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식이어서 한국사회에 적응을 못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남도의 의뢰를 받아 ‘국제결혼 이주가정 복지실태’를 조사한 한영현 광주보건대 사회복지과 교수는 “전남지역 이주여성 가운데 상당수가 생활양식과 관습의 차이로 인해 남편이나 가족 구성원들과 갈등을 빚고 있다”며 “이들에 대한 한국문화 교육이 행정기관의 책임 아래 사회단체와 연계해 체계적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이주여성뿐만 아니라 남편이나 시부모를 비롯한 이주여성의 가족들이, 이주여성의 문화나 관습에 대해 문화적 상대주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도 개발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홍행기기자 redplane@kwangju.co.kr
지난 1일, 담양의 한 마을에서 만난 베트남 출신 이주여성 당티투홍 씨(28·가명)는 지난 6년간의 결혼 생활을 되돌아보며 눈물을 삼켰다. 낯선 타국에서, 남편과 시어머니 그리고 주변 친지들로부터 당해야 했던 무시와 따돌림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아무리 잘하고 싶어도 남편과 시어머니가 받아주질 않아요. 뭘 잘못했는지, 고치겠다고 말씀을 해 달라고 해도 그저 화만 내세요”
당티투홍 씨는 ‘한국말에 익숙지 않은데다 아직까지 한국음식을 잘 만들지 못하고, 아들을 낳지 못한 죄 때문’이라고 막연히 생각하고는 있지만, 집에만 오면 말이 없어지는 남편과 시도 때도 없이 불만을 터뜨리는 시어머니를 보면 억장이 무너진다. 어쩌다 손찌검이라도 당하는 날이면 살고 싶은 생각이 없어진다.
당티투홍 씨는 고된 결혼생활 속에서도 남편과 시어머니가 한국음식만 먹게 하거나 어떻게든 한국사람과 똑같이 행동하게 하는 것을 못 견뎌 했다. “가난한 나라라며 베트남을 무시하는 것은 물론, 아예 베트남을 잊어버리라고 말씀하세요. 그러지만 20여 년간 나서 자란 고향을 기억에서 지워버릴 순 없잖아요. 그런 것은 조금만 이해해주고, 존중해줬으면 좋겠어요.”
그녀는 특히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이라는 한국의 가부장적인 문화에 적응하지 못해 힘겨워 했다.
“베트남에선 남자가 아내에게 잘 해줘요. 남자와 여자가 똑같거든요. 아내가 힘들어하면 남편이 밥하고 청소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한국은 달라요. 남편과 웃어른이 시키는 대로 해야합니다.”
속이 상한 듯 한동안 침묵하던 그녀는 “여기서처럼 맞거나 하는 일이 있으면 베트남에선 이혼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이젠 무섭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키워야 할 어린 두 딸을 생각하면 참고 살 수밖에 없어요.”라며 긴 한숨을 쉬었다.
코리안 드림을 찾아 한국에 온 이주여성들이 ‘문화적 차이’라는 암초에 부딪혀 표류하고 있다. 한국의 고유한 사고방식과 가치관에 미처 적응하지 못한 상당수 이주여성들이 ‘속수 무책으로’ 한국사회의 편견에 희생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전남도가 실시한 ‘이주여성 실태조사’결과에 따르면 국제결혼 가정의 부부싸움 이유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이 바로 ‘남편과의 생활방식 차이’(25.8%)였다. 경제문제(15.5%)나 부모와의 불화(3.6%) 등은 큰 이유가 되지 못했다.
또 ‘이주여성이 시부모와 관계에서 느끼는 어려움’에 대한 조사에서도 ‘사고방식과 가치관, 생활방식의 차이’라는 답변이 32.1%를 차지해, ‘의사소통의 어려움’(22.1%)을 크게 앞질렀다.
실제로 이주여성들은 음식과 같은 구체적이고 사소해 보이는 것에서부터, 국가관·가치관과 같은 추상적인 부분에 이르기까지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된 다양한 문제들로 갈등과 마찰을 빚고 있다.
나주에 거주하는 이주여성 웬옥투(27·베트남)씨는 “남편이 베트남 음식 냄새가 싫다고 따로따로 음식을 해 먹을 때면 기분이 좋지 않다”며 “이제 어느 정도는 한국에 익숙해져야 하는데, 아직까지도 ‘아 나도 한국인이구나’ 하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올해로 3년째 광주에서 살고 있는 뤄친(30·중국 한족)씨도 중국과 한국의 다른 풍습 때문에 애를 먹고 있다. 뤄친 씨는 남편이 중국어를 할 줄 알아 결혼 후 한국생활에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뜻밖에 중국 시어머니와 한국의 시어머니의 가치관이 근본적으로 달라 당황했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가락지 같은 예물을 해주는데 한국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예를 들었다. 그녀는 또 “한국은 남녀불평등이 너무 심하다”며 “아침 일찍 남편 출근 전에 식사를 챙기고 배웅해야 하고, 또 남편은 밖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무조건 남편을 이해해야 한다는 한국의 가부장적 문화에 적응하는 것이 무척 힘들다”고 말했다.
명절 문화에 대해서도 “중국에서는 명절 때 밖에 나가서 축제 분위기를 즐기는 반면 한국에선 남자들은 놀고 여자들이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제사를 지내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여자만 힘들게 하는 명절이라 재미가 없다”고 말했다.
한국 남편들도 할 말은 있는 듯했다. 19세 연하의 베트남 여성과 결혼해 나주에 살고 있는 조상봉(39)씨는 “(이주여성들이) 코리안 드림만 생각하다 보니 한국의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며 “국제 결혼하는 남자들 가운데 고학력자나 부유층에 속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데도 ‘그저 한국만 가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식이어서 한국사회에 적응을 못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남도의 의뢰를 받아 ‘국제결혼 이주가정 복지실태’를 조사한 한영현 광주보건대 사회복지과 교수는 “전남지역 이주여성 가운데 상당수가 생활양식과 관습의 차이로 인해 남편이나 가족 구성원들과 갈등을 빚고 있다”며 “이들에 대한 한국문화 교육이 행정기관의 책임 아래 사회단체와 연계해 체계적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이주여성뿐만 아니라 남편이나 시부모를 비롯한 이주여성의 가족들이, 이주여성의 문화나 관습에 대해 문화적 상대주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도 개발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홍행기기자 redplane@kwangju.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