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쳐다보면 금세 멍하니 넋을 잃고 말 청명한 하늘. 그래서 가을의 풍경은 온갖 수식어가 붙어도 어딘가 부족하다. 수확의 계절 10월. 풍요로운 가을 들녘이 입맛을 절로 돋우는 때. 경치 좋은 곳에서 제철 음식으로 식탁을 차리면 수라상이 부럽지 않다. 이번 주말에는 가을의 맛을 쫓아 발길을 옮겨보자. 서해안은 요즘 대하가 한창이다. 9월 중순부터 10월말까지 출하되는 대하는 우리 연안에 자생하는 80여종의 새우 중 가장 크다. 특히 10월 대하는 평균 길이가 22㎝, 큰 것은 27㎝나 돼 보기만 해도 탐스럽고 먹음직 스럽다. 굵은 소금을 얹고 빠알갛게 구워먹는 대하는 고소하고 단백한 데다 향도 깊다. 붉은 빛을 띠는 껍질 역시 비타민 A가 풍부해 통째로 먹어도 좋다. 대하는 강장식으로도 유명하다. 본초강목에는 ‘새우는 양기를 왕성하게 하고 신장을 좋게 하면서 베타인과 아르기닌등의 성분을 포함하고 있어 혈액순환을 잘되게 하며 기력을 충실히 한다”고 전한다. 대하가 쏟아져 나오는 곳은 안면도 백사장 포구와 남당포구. 두 곳 모두 서해안에서 이름난 곳이다. 남당포구에서 먹는 새우가 씨알이 잔 대신 맛이 쫄깃쫄깃하고, 안면도 백사장에서 먹는 새우는 훨씬 크고 푸짐하다. 서로들 우리 동네 새우가 맛있다고 주장하나 두 곳 모두 맛있고 싱싱하니 어디를 편 들기 어렵다. 안면도 백사장 포구의 대하축제는 올해로 6회째다. 안면 연육교를 조금 지나 남서쪽으로 내려오면 백사장에 이른다. 원래 흰 모래밭이라는 의미의 백사지(白沙地)라 하였고, 지명을 백사장이라 불리게 됐다. 백사장 포구는 봄부터 늦가을 까지 수백척의 고깃배가 드나드는 어항(漁港)으로 충남, 경남, 전남 등의 어선이 모여들어 대하, 꽃게, 도다리, 우럭 등 여러 바닷고기를 잡는데 그 중에서 봄, 가을 중 대하의 어획수입은 년 수십억원에 이른다. 이곳은 외지 선 까지 다 하면 100여척의 대하잡이 배들이 새벽녘에 출어, 오후 4∼5시께 대하를 싣고 돌아온다. 축제는 10월 15일까지 개최한다. 매일 오후 통키타 가수 공연이 있고, 주말에는 유명 가수들이 저녁밤을 즐겁게 달군다. 백사장에 도착하면 대하구이 굽는 냄새가 비릿한 바다 내음과 섞여 입맛을 자극한다. 식당에서 1㎏ 3만 7천원이면 4인이 적당히 대하를 먹을 수 있고, 수협에서 1㎏에 3만원이면 안면도에서 갓 잡은 싱싱한 대하를 얼음 포장해 가져 올 수 있다. 백사장 포구에서 대하의 깊은 맛을 음미했다면 10여분 거리에 있는 꽃지해수욕장을 찾아 깊어가는 가을의 정취에 취해보자. 꽃지는 해안에 붉은 해당화가 많아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의 노을은 변산의 채석강, 강화의 석모도와 함께 ‘서해안 3대 낙조’로 손꼽힌다. 울창한 솔숲을 등지고 펼쳐진 꽃지 해변은 일렁이는 파도가 하얀백사장을 거칠게 애무하는 모습으로도 철지난 바다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곳이지만 이곳에 ‘노부부’가 없었다면 이처럼 유명세를 타지 못했으리라. 노부부란 바로 해수욕장 앞에 수문장처럼 버티고 서 있는 할미바위와 할아버지바위. 신라때 전쟁에 나간 지아비를 평생 기다리다 바위가 되었다는 가슴 아픈 사연이 깃든 바위다. 지척에 있건만 평행선을 달리는 기차레일처럼 영원히 만나지 못한 채 마주 선 두 바위는 언제나 서로를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다. 오랜 세월을 이렇듯 애틋하게 보내온 두 개의 바위는 이곳 낙조를 보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로 만들었다. 하루를 정리하고 숨어드는 해가 두 바위 사이로 떨어지는 모습이 꽃지 해변의 낙조 포인트다. 낙조의 황홀경에 빠져들기 시작하면 사방이 어둠으로 뒤덮일 때까지 그 묘한 분위기로 인해 자리를 뜰수가 없다. /최재호기자 lion@kwangju.co.kr 사진=최현배기자 choi@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