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지에서 배로 2시간 거리면 그리 먼 거리도 아니다. 여수시 교동 여객선터미널에서 거문도로 가는 배편은 오전 8시께와 오후 2시께 4편이 있다. 300여석 규모의 페리호는 114㎞의 뱃길을 달려 2시간여만에 거문도항에 도착한다. 페리호가 뱃전을 대는 고도는 거문도의 3개 섬 가운데 가장 작지만 각종 기관과 상점들이 즐비해 섬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항구의 앞에 보이는 섬이 서쪽에 길게 늘어뜨려진 서도. 뒷편엔 동도가 고도를 감싸고 있다. 이처럼 고도를 서도와 동도가 둘러싼 모양새를 갖춘 거문도는 한때 ‘어업전진기지’ 또는 서구 열강의 ‘점령지’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부담없는 등산길 보로봉, 수월산 =서도의 보로봉(해발 170m) 가는 길은 거문도를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는 등산 코스다. 거문도 전체 나무 가운데 80%가 동백나무여서 거의 모든 등산로가 온갖 종류의 동백으로 둘러싸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동항에서 서도로 연결된 삼호교를 건너 가다보면 보로봉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나온다. 20분쯤 등산로를 따라 걸으면 능선이 등장한다. 능선에 오르면 가을의 서늘한 기운을 뿌려대는 남해바다가 장엄한 모습을 드러낸다. 오르는 길은 더없이 완만하지만 바다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깍아지른 듯한 절벽이다. 절벽을 따라 난 길엔 거북모양, 의자모양 등 기기묘묘한 모양을 한 바위들이 자연과 시간이 빚어낸 신비감을 자아내고 있다. 아차바위, 거북바위, 신선바위, 의자바위, 옹무늬절벽 등. 모양을 보면서 이름을 상상해보는 것도 거문도 등산의 또 다른 재미다. 서도 끝에 자리한 거문도 등대에 가는 길도 산책로 같은 등산로다. 등대까지 거리는 찻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1.5㎞ 정도. 현재는 새로운 등대를 만드는 중이어서 등대 주위에 깔려 있던 푸른 잔디를 볼 수 없다. 다만 등대 앞 벼랑 끝에 세워진 관백정에 앉아 명상에 젖을 수 있다. 날씨가 좋은 날은 이 곳에서 백도는 물론 제주도까지 볼 수 있다. ▲역사 공부도 함께=거문도의 구석 구석엔 역사의 숨겨진 이야기들을 간직한 유적들이 많다. 고도의 항구에서 이정표를 따라 10분 정도 걸으면 영국군 묘지가 나온다. 지난 1885년부터 22개월여간 거문도를 점령한 영국군의 흔적이다. 인근에는 당시 영국군들이 만들어 놓은 테니스장도 있다. 지금도 거문도 주민들에게 최고의 스포츠는 테니스로 통한다. 올해로 100주년을 맞는 거문도 등대와 서도 분교는 살아있는 거문도의 역사다. 수월산 자락의 거문도 등대는 당시로선 동양 최대이던 프랑스산 프리즘 렌즈가 장착돼 지금도 변함없이 뱃길을 밝혀주고 있다. 100년 전에 이미 등대가 자리잡았다는 자체가 거문도가 지리적·전략적 요충지라는 것을 대변하고 있다. 지금은 전교생이 10여명에 불과한 서도 분교는 한때 학생수가 400여명에 달할 정도로 성시를 이루었다. 서도분교에는 100년 전 학교를 설립한 김상순 선생의 공적비가 세워져 있다. 영국군의 거문도 무단 점령 등 열강들의 침략을 물리칠 수 있는 것은 ‘교육’이라는 생각에 학교를 세웠다. ▲거문도도 식후경(?)=거문도에 가면 반드시 은빛 투명한 갈치를 맛봐야 한다. 채낚기 어법을 이용해 한 마리씩 잡는 거문도 갈치는 상처가 없어 깨끗한 모양새 만큼이나 맛도 일품이다. 아침 6시께부터 고도의 거문도 수협에서 갈치 위판이 시작된다. 이 곳에서는 육지보다 훨씬 싼 가격에 싱싱하고 맛좋은 갈치를 살 수 있다. 300g 크기 10㎏ 한 상자에 7∼13만원 선에 거래된다. 7월말부터 11월까지 갈치 어장이 형성된다. 주민 김한길(56)씨는 “제주도 서남해역에서 겨울을 난 뒤 4월부터 연안으로 올라오는 갈치는 거문도 앞 바다를 지날 때쯤 잡아야 가장 맛있다”고 말했다. 해질녘에 바다로 나간 갈치잡이 배들은 밤새 조업을 마치고 새벽 즈음 항구로 돌아와 갈치를 정리해 위판에 나선다. 운 좋게 항구에서 갈치를 정리 중인 어민들을 만나면 수협 위판 가격보다 더 싸게 갈치를 살 수도 있다. /정상필기자 camus@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