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저 들녘에 들꽃으로 흔들리고, 나는 그 들꽃을 핥고 가는 바람이어라.’ 영광군 영광읍 소재지에 위치한 ‘남도땅’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글귀다. 언젠가부터 “영광에 가면 삶이 건강함 그 자체인 부부가 있다”는 소문이 좋은 음식과 문화, 풍요로운 삶을 열망하는 웰빙 피플들의 입을 타고 퍼져가기 시작했다. 그 주인공은 100년이 다된 일본식 가옥을 개조한 고택에 살고 있는 윤광석(47)·이양옥(46) 부부. 남편은 무명으로 ‘세상에 하나뿐인’ 옷을 짓고, 아내는 자신이 개발한 ‘세상에 둘도 없는’ 음식을 만든다는 이야기였다. ▲남편은 디자이너 30여년 전, 윤씨는 옷 만드는 기술을 배우기 위해 한 의상실에 들어갔다. 고운 옷감으로 한땀 한땀 정성들여 바느질해 마침내 탄생한 ‘옷’은 그에게 정말 신비로운 존재였다. 그러나 80년대 초반, 기성복이 생겨나기 시작하자 소규모 의상실을 찾는 사람은 점점 줄어갔다. 이제 막 인체의 입체를 적용한 테일러링(tailoring·재단 기술)을 알아가던 윤씨는 막막해지기 시작했다. 그의 결론은 ‘과거로의 회귀’였다. 폴리에스테르나 나일론처럼 값도 싸고 대량 생산이 쉽고 세탁도 간편한 소재가 각광받던 80∼90년대 그는 오히려 ‘친 자연 소재’인 무명을 선택했다. 이유는 무명이 닳아지고, 소멸하는 소재이기 때문이다. 합성 소재로 만든 옷은 결국 사라지지 않는 쓰레기를 양산하지만 우리 옷은 썩어서 흙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 그가 무명을 사랑하는 이유였다. ▲아내는 요리사 이씨가 만드는 요리의 제작 과정을 알고 있는 사람은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한다. 예를 들어 대표적 메뉴인 ‘계수면’같은 경우, 여러번 우려내 기름기를 제거한 닭 육수와 과일즙이 섞여 오묘하고 상큼한 맛을 낸다. 타지역에서 택배로 주문해 갈 정도로 유명해진 ‘송주’는 10년간 따로 발효시킨 송순을 소주와 섞어 따로 1년간 발효시켰다. 묵 잡채는 직접 쑤어 만든 도토리 묵과 갖은 야채를 버무린다. 돼지고기 역시 와인에 절여 고온에서 푹 삶아내기 때문에 기름기, 콜레스테롤 걱정을 덜어버릴 수 있다. 화학 조미료는 커녕 소금·설탕과 같은 기본 조미료도 들어가지 않는 대신 과일을 이용해 새콤하게, 때로는 달콤한 알맞은 간으로 만들어진 음식이 이집의 자랑거리다. ▲우리 집을 소개 합니다 앞뜰에는 함평 향교에서 뜯어낸 옛날 기와를 가져다 깔고, 뒤뜰에는 돌답과 돌탑을 정성스레 쌓았다. 광주에서 활동하는 의상 디자이너 김훈씨와 윤·이씨 부부가 손수 개조한 집은 폐교에서 가져온 나무 마루와 색감 좋은 기와가 조화를 이룬다. 조금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서면 100년 넘은 은행나무와 자그마한 잔디가 안락한 운치를 준다. 은행나무 아래 서서 앞을 바라보면 석류나무와 어울린 ‘사랑채’가 보인다. 윤씨 부부와 친해지면 창호지 문과 나무 바닥 내음, 직접 키우는 차(茶)나무가 어우러진 사랑채에 들어갈 수 있는 행운을 누릴 수 있다. 이 집 사랑채의 자랑거리는 철 따라 윤씨가 준비하는 한국·중국산 차와 ‘매킨토시 275’앰프. 1962년 개발된 이후 ‘진공관 앰프의 황제’로 군림했던 바로 그 명기다. 언젠가 선이 굵고 중후한 음색의 음악과 녹차의 향기로움이 영광 군내에 퍼진다면, 그날은 이집 주인과 마음 맞는 손님이 온 날이다. ▲‘부부’가 삶의 중심 윤씨는 최근 굉장한 깨달음을 얻었노라고 고백했다. 그 깨달음이란 다름 아닌 ‘부부’가 삶의 중심이 되어야 삶 자체가 행복해지더라는 것. 여러 차례 어려운 고비를 넘기며 살아왔지만 항상 자신의 곁을 지켜준 것은 아내 이씨였다. “원래 저처럼 의상을 했던 아내는 제가 마음놓고 의상에 전념할 수 있도록 요리사가 되어 뒷받침을 해줬어요. 아내가 10년간이나 음식에 몰두할 때 그 성장 속도가 느리다고만 생각했죠. 그러나 지금은 아내의 요리 또한 제 옷을 만드는 과정과 어우러진 일종의 ‘퍼포먼스’입니다.” 부부 중심의 잣대로 세상을 보니, 전과는 달리 보였다. 전에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옷을 만들었다면 지금은 ‘내 맘에 맞는 옷한벌 지어 세상에 내놓고 싶다’는 것이 윤씨의 바람이다. 이들 부부는 “최근 ‘우리 평생 즐겁고 멋있게 살자’고 새롭게 다짐했다”며 두손을 꼬옥 잡았다. /글=서민정기자 viola@kwangju.co.kr /사진=나명주기자 mjna@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