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은 맛과 함께 옷을 바꿔 입는다. 누가 뭐래도 가을은 전어 굽는 냄새로 사람들에게 다가온다. 태풍 ‘나비’가 남녘의 언저리를 살짝 스치고 지나간 후 가을이 슬며시 눌러앉을 기세다. 우리나라 전어의 대표적 생산지 중 한 곳인 광양시 진월면 망덕리는 수조 안에서 퍼뜩이는 전어와 함께 초가을 내음이 상큼하다. 50여개의 횟집이 포구를 향해 사열하듯 늘어서 있는 망덕리는 가을의 전령사인 전어들의 자맥질로 활기가 넘친다. 망덕리 다도해 횟집(주인 김선화·50)에 가면 전어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전어구이, 전어무침, 전어회 등 기본 메뉴에다 3년 묵은 마늘김치와 알 굵고 시원한 백합탕이 지나는 이의 발길을 붙잡는다. 구이는 어른 한 뼘만한, 그리 크지 않은 전어를 골라 칼집을 자잘하게 넣고 바삭하게 구워낸다. 고기가 너무 크면 가시가 세 먹기 불편하기 때문이다. 전어구이는 머리까지 버리지 않고 통째 먹어야 제맛이다. 젓가락을 놀려 구워진 전어의 살을 바르면 어른들에게 꾸지람듣기 십상이다. 전어를 썰어 양파 등 채소와 섞어 새콤한 초장으로 버무린 무침을 보기만해도 금세 혀가 시어지고 입안에는 침이 고인다. 다도해 횟집(061-772-9009)의 전어무침은 광양 특산인 매실의 원액을 섞은 초장으로 만들어 뒤탈을 막고 소화도 쉽게 해 준다. 그리 크지 않은 전어를 다듬어 뼈째 썰어낸 전어회는 입안에서 달콤하게 녹는다. 회를 먹을 때는 다도해 횟집만의 비결이 담겨있는 묵은 김치가 등장한다. “묵은 김치로 싸먹으면 전어 비린내가 거의 없어요. 전어 자체가 지방이 풍부하고 구이나 무침보다 회가 더욱 영양소가 많아 위장에 부담을 줄 수 있지만 3년 묵은 김치에 싸서 먹으면 아무 걱정없죠” 주인 김선화씨의 설명이다. 특이한 다도해 횟집의 마늘김치 또한 별미다. 배추와 함께 줄기째 횟집의 저온창고에서 숙성시킨 마늘김치는 특유의 향과 맛으로 젓가락을 유혹한다. 다도해 횟집 전어요리는 백합탕으로 마무리된다. 어린 아이 주먹만큼씩 실하게 알이 찬 광양 백합은 숙취 해소용으로는 최고. 고추를 적당하게 썰어넣어 맵싸하게 끓인 백합탕을 후후 불며 떠먹으면 전날 밤 술기운은 슬며시 자취를 감춘다. 여기에다 전어를 그대로 수년간 삭힌 전어젓과 내장으로 만든 전어밤젓. 보기만해도 군침이 도는 황석어젓은 밥도둑 소리 듣기에 손색없다. 감칠맛나는 밥상의 ‘감초’들은 여름내 무더위에 지쳐 짧아진 입맛을 되찾아주는 활력소다. 섬진강의 민물과 광양 앞바다의 바닷물이 만나는 망덕은 백합이며 재첩, 전어 등 풍부한 맛거리를 선물한다. 전어는 서민들도 부담없이 고를 수 있는 친근한 메뉴. 10월 15∼16일에는 망덕에서 일곱번 째 전어축제가 예정돼 있다.(문의 061-791-2606) 여름 내 더위에 몸이 지치고 일상의 틈바구니에서 마음이 찌들렸다면 망덕에서 맛깔스런 전어요리로 잠시 숨돌려 볼 일이다. /박치경기자 unipark@kwangju.co.kr /사진=위직량기자 wjri@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