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을 가기 위해서는 북한을 통한 직항로나 육로가 열리지 않은 이상 중국 심양과 연길을 거쳐야만 한다. 심양(瀋陽)은 그 옛날 고구려의 옛 땅이었으며 옛 이름이 봉천(奉天)으로 인구 460만명, 북경과 상해, 천진에 이어 중국에서 네번째로 큰 도시다. 우리나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중국 요녕성(遼寧省)의 성도로 동북 공업지대의 중심지이자 교통의 요지이다. 심양은 2천년의 역사를 지닌 도시이며 1625년∼1644년 청(淸)의 도읍지였다. 누루하치가 청을 일으켜 명을 쓰러뜨리고 중국 천하를 통일했던 곳으로 당시 명을 숭상하던 우리나라는 청나를 배척하다가 인조(仁祖) 14년(1636년)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무릎을 꿇는 치욕의 역사를 갖게 했던 곳이다. 역사적 상념속에 심양 국제공항에 내려 남루한 옷차림을 한 중국인들 사이를 빠져나오려니 어쩐지 유쾌한 기분은 아니다. 고궁(故宮)은 청나라를 건국한 태조 누루하치와 2대 태종 홍타이지가 베이징으로 천도하기전 머물렀던 황궁이다. 왕궁은 70여채의 건물에 방이 300칸에 이르는 웅장한 규모의 건축물로 베이징 고궁에 이어 중국에서 두번째로 큰 궁전이다. 내부는 크게 동·중·서로(西路)로 나뉘어 지고 출구는 남쪽에 있다. 동로에는 고궁의 상징인 대정전(大政殿)이 자리하고 있다. 만주족 특성을 그대로 살린 몽고식 움막 형태로 지어진 팔각형 건축물인 대정전은 황제와 신하들이 정무들 보던 곳이다. 대정전 앞에 선 순간 과거의 우리네 치욕의 역사가 떠오른다. 우리에게 병자호란이라는 수모를 겪게 했고, 인조를 무릎꿇리고,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을 인질로 잡아와 이곳에서 무릎을 꿇렸으리라.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의 비분강개한 마음이 전해지는 듯 해 눈시울이 뜨거워 진다. 또 척화론을 주장하던 3학사인 홍익환, 윤집, 오달제 등을 이곳 어디선가 처형했을 생각을 하니 가슴이 답답해 진다. 순절하지 못한 여인네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는 ‘화냥년’ 이라는 어원도 바로 이곳에서 비롯됐다. 병자호란 후 50만명의 무고한 양민들이 청나라로 끌려갔는데 인고의 세월을 견뎌낸 여인들이 고향으로 돌아왔으나 순절(殉節)하지 못하고 청나라 남자들에 능욕당하고 살아온 것에 대해 고향에서 내쫓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후 세월의 변천과 함께 환향녀(還鄕女)가 화냥년이 되었다. 약소국의 서러움으로 인한 여성들의 아픔을 감싸안아주지 못하고 손가락질 했던 풍습은 시대적 상황이었을까? 이렇듯 우리나라를 유린했던 이들이 1931년 9월 18일 일본 관동군이 만주사변의 신호탄으로 발사한 포탄이 터진곳에 거대한 9·18사변 기념관을 건립, 정문에 있는 종에 물망국치(勿忘國恥·나라잃은 치욕을 잊지 말자 ) 라고 새겨 과거를 교훈삼고 있으니 역사적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북릉공원은 심양시 북쪽에 자리잡고 있는 대규모 공원으로 청나라 2대황제 황태극의 부부가 묻혀있는 능묘다. 정문을 들어서면 청태종 부부능이 있는 소능까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참도(參道)가 길게 이어져 있다. 능묘 앞에는 황제의 상징인 황색유리기와로 된 아름다운 전각이 우뚝 솟아있다. 황태극의 능에는 누루하치의 고향인 무순시의 대표적 나무인 느름나무를 심어 그를 잊지 말라는 의미를 새기고 있다. 그의 능은 지하를 통해 들어갈 수 있으나 입구를 열 수 있는 암호를 해독하지 못해 아직까지 능의 내부를 볼 수 없다. 서탑가(西塔街)는 한인들이 많이 살고 있으며 북한이 운영하는 모란각이 있다. 모란각은 북한이 운영하는 해외 식당 중 가장 맛있는 식당으로 평양식 냉면과 김치가 그만이다. 북한 여성들이 1시간 동안 가무를 곁들여 여흥을 돋운다. 심양에서 연길까지는 국내선을 이용해야 하는데 1시간 가량 걸린다. 연길(延吉)은 길림성(吉林省)동부에 있는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주도로 러시아, 한반도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이름난 명승고적은 없지만 백두산 광관을 위한 중요 길목으로 38만 인구의 절반 이상이 조선족이다. 연변에서는 옷차림, 집, 길거리를 둘러봐도 전혀 낯설지 않으며 옥외간판이 한글로 되어 있고 우리말 밑에 중국말이 쓰여있는데 이를 지키지 않으면 벌금을 부과한다. 연변방송국은 중국의 55개 소수민족에게서는 볼 수 없는 소수민족 자치방송국으로 조선족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용정(龍井)은 해란강과 일송정, 윤동주 시인이 다녔던 용정중학교가 있다. 현재는 용정제일중학교로 명칭이 바뀌었으며 실제로 학생이 공부하고 있다. 이곳은 또한 재야 운동가였던 문익환 목사〔〈【와 정일권 전 총리】〉〕의 모교이기도 하다. 용정에서 버스로 1시간여를 달리면 중국의 도문(圖們)시에 이른다. 중국과 북한은 도문대교로 이어져 그 절반으로 국경을 나누고 있으며 다리 아래로 두만강과 강 건너편의 북한의 산하와 건너편에 지어진 남양시를 볼 수 있다. 〔〈【도문시 까지 오는동안 창 너머로 보이는 북한의 산들은 중국 산과는 다르게 민둥산이다. 배가 고파 나무껍질을 벗겨 먹고, 땔감으로 나무를 베어 이렇게 민둥산이 됐다는 가이드의 설명에 한 숨이 절로 난다. 】〉〕두만강 중류의 강폭은 130m, 수심 1.7m〔〈【에 불과해 마음만 먹으면 북한 동포들이 얼마든지 탈북이 가능하】〉〕이다. 이곳은 뗏목을 이용해 관광객들이 두만강을 15분정도 둘러 볼 수 있는데 북한 쪽에 뗏목을 스치듯 지나가다 보면 초병들이 풀 숲에 앉아 관광객들이 던져주는 달러를 줍기도 하고, 조용히 돈을 던져달라고 손짓을 보내기도 한다. /사진·글 중국 심양·연길=최재호기자 lion@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