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물러가고 가을이 손짓하는 8월말. 이즈음에 사람들은 한여름의 멋진 휴가와 휴식에 대한 추억을 정리한다. 그런 여름의 끝에서 벌써 겨울 채비를 시작하는 민족의 영산 ‘백두산’ 과 백두산에 오르기 위해 거치는 중국 심양(瀋陽), 연길(延吉)에 대해 2회로 연재한다. 모든 산들을 저 아래에 두고/ 몇억만년 지나도록 / 아직은 이것은 산이 아니었다./ 오 너 백두산 / 그토록 오래된 나날이건만 / 새로이/ 네 열여섯 봉우리 펼쳐라/ 중략 / 이나라 시원 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너를 부른다. 중략/ 이나라 온통 하나의 백두산인 그날을 / 네 이름으로/ 네 이름으로 부르고 부르고 / 또 부른다. 백두산 순수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간직된 곳 백두산(白頭山). 백색의 부석(浮石)으로 이루어져 항상 희게 보이는데서 백두산으로 불리고 또는 항상 정상에 흰눈이 쌓여 있다고 해 백두산이라 한다. 도태산, 태백산, 장백산, 불함산으로도 불리웠다. 천지(天池)만 보고 백두산을 보았다고 하는 것은 검룡소(한강의 발원지)만 보고 한강을 보았다고 한 것과 같을지라도 쉽게 오를 수 있는 산이 아닌 백두산에 오른 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이미 감개무량한 일이다. 백두산은 안타깝게도 북한을 통해 갈 수 있는 길이 없다. 9월말부터 북한을 통해 백두산 시범관광을 실시한다는 반가운 뉴스가 있지만 실제 관광객들이 혜택을 누리기 까지는 아직 요원하다. 백두산은 중국 심양(瀋陽)을 거쳐 연길(延吉)에서 버스로 5시간 30분을 달려야 비로소 일부분이지만 오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천지와 장백폭포를 보기 위해서 중국 장백산 쪽인 백두산 3문에서 오르는 북파코스를 많이 이용한다. 이곳 3문에서 지프를 이용해 2천744m의 천지 위쪽에 오르는 방법과 장백폭포를 끼고 약 800m를 등반해 오르는 코스가 있다. 백두산은 1712년(숙종 38)5월 국경을 확실히 하자는 청의 제의에 의해 백두산 분수령인 2,150m의 지점에 정계비(定界碑)를 세웠는데 이 정계비는 서쪽은 압록강이고, 동쪽은 토문강(西爲鴨錄 東爲土門 ...)라고 새겼다. 그후 1880년 (고종17)부터 청나라가 돌연 토문이 두만(豆滿)을 뜻함이라는 억지 주장을 폈고, 일본이 북경에서 청나라와 회담해 두만강이 한·청 두나라의 국경이라고 협정을 체결, 간도 전역을 청나라에 넘겨 주게 되었다. 일제강점기 백두산은 1920년 6월 봉오동(鳳梧洞)에서 홍범도 장군이 이끄는 대한독립군이 일본군에 최대의 승전을 거두는 등 무력항쟁의 기지로서 역할을 하였다.현재 백두산 천지 수면을 경계로 해 동쪽의 비류봉에서 남서쪽 마천우(麻天隅)를 향해 일직선으로 국경선을 표시하는데 중국쪽이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다.그나마 백두산이 중국 땅이어서 이렇게 일반인들이 볼 수 라도 있지 북한 땅이었다면 이렇게 보는 것 마저 어려웠을 것이라는 생각에 약소 민족의 역사적 아이러니를 가슴저리게 느껴본다.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천지여서 인지 제 3문에 도착하자 마자 맑았던 날씨가 빗방울을 뿌려대며 심술을 부린다. 1천236개의 계단을 오르는데 숨이 턱턱 막힌다. 장백폭포의 장엄하고 눈부신 모습이 옆에 있어 힘든 산행길을 도와준다. 장백폭포는 천지의 맑은 물이 ‘승사하’라는 개활지를 통해 흐르다 68m의 장대한 폭포를 이루며 90도 수직으로 암벽을 때리며 떨어진다. 꼭대기에서 36m아래까지 곧게 쏟아져 내리며 그 아래에서는 비탈진 벼랑에 부딪쳐 물보라를 일으킨다. 떨어진 물은 송화강으로 유입되는데 그소리가 얼마나 웅장한 지 200m떨어진 곳에서도 폭포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하산하는 아주머니가 “하늘이 열렸어요. 금방 안개가 끼었다가 다시 걷혔는데 빨리 가서 보세요”라며 발걸음을 부추긴다. 10번 올라 1번을 제대로 보기 힘들다는 천지. 천지의 장관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다시 한번 기합을 넣고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뗀다. 천지. 구름이 완전히 걷히지는 않았지만 열려 있는듯한 하늘, 푸르고 맑은 천지호수, 선선한 바람, 아름다움과 장엄함의 극치. 말로 표현 못할 이 벅찬 감동. 모두가 입을 벌리고 전신으로 퍼져가는 흥분을 느끼기에 말을 아낀다. 2천7백 3십5미터/ 보이는 것이라곤/꿈 속 같은 짙은 안개/ 천지는 그만두고도/내몸마저 잃었네/ 장순하 시인의 ‘백두산 가는 길’에서 중. 춤추는 구름이 다시 심술을 부릴 즈음 끝없는 상념에서 문득 정신을 차린다. 중국인들은 백두산을 창바이산(장백산)이라 부르며 자신들 산이라 여긴다. 백두산의 상당 부분이 중국땅이다. 그러나 유사 이래로 백두산은 중국민족과 전혀 무관한 곳이다. 한족이 이곳에 자리를 잡고 산적이 한 번도 없다. 백두산 일대는 멀리 예맥족이 세운 고조선과 부여의 터전이고 그 후로 고구려와 발해가 주인이었다. 국조(國祖)단군의 아버지 환웅이 3천여명의 무리를 이끌고 나라를 연 곳이 백두산이다. 백두산은 주로 우리 민족과 만주족이 함께 거주했다. 지금은 중국에 거의 흡수 됐지만 만주족은 우리와 밀접한 민족이다. 만주족 조상이 바로 여진이고 말갈로 중국 동북부와 만주지역, 백두산과 함경도 일원에서 살아왔다. 우리와 같은 예맥족이고 우리와 비슷한 풍습과 문화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고려시대 때 금나라를 세웠고, 명나라 말기 청나라를 세웠다. 만주족이 가장 신성시 한 곳이 백두산이다. 금나라때는 영응산(靈應山)이라 제사를 지냈고, 청나라때는 나라의 발상지라 해 일반인의 출입을 금지했다. 이처럼 백두산은 우리민족과 우리와 같은 계통인 만주족과 관계 된 곳이지 한족과는 무관한 곳이다. 백두산의 관리권이 내년부터 연변조선족 자치주에서 지린성으로 넘어간다. 여지껏 조선족자치정부가 잘 관리해온 백두산을 중국인들이 다수를 이루는 지린성 정부가 맡는 다는 것이 영 찜찜하다. 중국은 최근 ‘동북공정’이란 이름으로 고구려사를 자신들의 역사에 편입시키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구려, 발해, 요, 금, 청으로 이어지는 동북지역의 역사를 ‘장백산 문화’라는 개념으로 정리하고 이 문화도 중화문명의 일부라고 주장한다. 우리 민족의 시원(始原)이요 영산(靈山)인 백두산을 중화문명의 하나로 편입하려는 의도가 아닌지 염려스러움이 앞선다. 하루 빨리 통일을 이뤄 빼앗겼던 우리네 땅을 되찾아 ‘이 나라 온통 하나의 백두산 ’일때를 간절히 염원하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린다. /백두산=글·사진 최재호기자 lion@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