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히말라야, 많은 사람들이 이 곳을 ‘신들이 사는 곳’ 또는 ‘신들의 영역’이라 부른다. 이 곳에서는 사람의 능력이나 노력보다도 지극히 모호한 개념인 ‘운’이나 ‘느낌’에 의해 생과 사가 극명하게 나뉜다. 우리나라 최초의 에베레스트 등정자 고상돈의 경우가 그렇고, 당대 최고의 등반가로 라인홀트 메스너에 버금가는 예지 쿠쿠츠카의 죽음이 그렇다. 】〉〕 베이스 캠프에 도착해 68일 만에 맞은 호기, 지난 6월 26일 0시 45분 영하 15도의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송형근(33·광주시산악구조대원) 대원 등 3명은 ‘벌거벗은 산’ 정상을 향해 첫 공격을 시도했다. 루트 개척작업은 당초 예상한 높이 만큼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몬순의 기운을 머금고 인도 쪽에서 밀려오는 구름들을 보니 더 이상 늦출 수는 없었다. 하늘은 맑았고 별빛도 초롱 초롱, 등반 속도가 다소 더딘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나쁘지 않았다.】〉〕 선등자가 올라가고 확보자가 확보를 보는 동안 후미의 등반자는 선등자가 등반 도중 떨어뜨리는 낙석과 낙빙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추위속에 배고픔과 졸음까지 겹치면 그야말로 삼중고를 겪어야 한다. 고도 7,550m의 급경사 얼음벽에서 우리는 그러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벽의 각도가 90도가 넘는 곳에 확보물을 설치하는 순간 우레와 같은 소리와 함께 돌더미가 우수수 쏟아졌다. 낙석이 지속된 시간은 20초정도였지만 그 속에서 돌세례를 받는 대원들에겐 영겁과도 같이 길게 느껴졌다.〔〈【 불안정하게 박힌 확보물에 의지해 돌더미와 얼음조작에 쓸려 내려가지 않게 버티는 동안 다른 생각은 할 수 없었다.】〉〕 부끄럽게도 나의 안전이 확인되고 나서야 확보를 보고 있는 송형근·주우평(31·광주전남등산학교 강사)·김미곤(33·한국도로공사산악팀) 대원의 안전을 물을 수 있었다. 그 들은 훨씬 큰 위험에 노출돼 있었다. 갑자기 맨 뒤에서 오르던 김미곤 대원의 비명이 터져나왔다. 바윗덩어리들이 왼쪽 발목과 오른쪽 어깨를 동시에 덮친 것이다. 힘없이 널브러진 김 대원을 향해 주 대원이 하강했다. 조장인 송 대원은 본능적으로 2차 사태를 우려해 “하산! 철수!”를 정신없이 외치며 나에게는 픽스로프를 확인해줄 것을 주문했다. 대원들은 2차 낙석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제대로 부목도 하지 못하고 김 대원을 위에서 로프로 묶어 내리고 밑에서는 균형을 잡아 끌어당겼다. 그러기를 여섯시간, 대원들은 모두가 지쳐 탈진 상태지만 자신의 온힘을 쥐어짜는데 인색하지 않았다. 사고 순간 나는 미곤의 아내를 생각했다. “이 놈을 두고 가면 평생 욕얻어 먹겠지.” 조장인 송 대원은 김 대원의 아들을 생각했단다. 폭이 1m미터도 안되는 좁은 통로에서 우리가 살아내려올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운이 좋아서였겠지만 대원들의 촘촘한 팀워크와 끈끈한 정도 그에 못지 않았다. 뒤돌아보면 이번 낭가파르밧 루팔대장벽원정대는 대원들만의 팀워크가 아니라 광주·전남 산악계 전체의 관심과 배려속에 꾸려졌다.〔〈【 1999년 K2 남남동릉 등반때부터 ‘등로(登路)주의’로 방향을 잡은 산악계 선배들은 거벽등반 기술향샹을 위해 후배들을 2001년 알프스 3대 북벽에 보내 기량을 연마시키고 로체남벽 등반을 통해 경험을 축적시켰다. 훈련 때마다 상금을 걸고 후배들을 독려한 위계룡(2004로체남벽원정단장) 고문, 이 지역에 히말라야 원정의 씨앗을 뿌리고 베이스캠프까지 동행한 최창돈(1990낭가파르밧원정대장) 고문, 류재선(광주시산악연맹부회장) 단장, 기상 악화로 대원들이 힘들어할 때 격려차 방문한 홍성국 한국도로공사부장 등 많은 선후배들이 원정대의 등반에 함께 했다.】〉〕 〔〈【산은 참으로 묘한 매력을 갖고 있어 특별한 인연이 없던 이들도 등반을 함께 하다보면 피붙이 이상으로 꽁꽁 묶어 버린다. 】〉〕지역산악인들의 지극한 성원속에 지난 4월 12일 출국한 원정대는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행정처리를 한 뒤 마지막 마을에 도착했다. 여드레만에 도착한 베이스캠프에는 1m 이상의 눈이 쌓여 험로를 예견하고 있었다. 폭설 속에 텐트가 눈에 무너지지 않도록 지키느라 잠을 잘 수 없었다. 베이스 캠프 도착 12일째, 대원들은 6,090m 지점에 제 2캠프를 구축했다. “이런 속도면 이 달 중으로 올라가는 것 아냐”하는 기대도 가졌다. 하지만 여름 한철 양치기 가족들이 사용하는 두 평 남짓한 움막에 주민이 올라오고 녹색 기운이 완연해 지기 시작한 5월부터 역설적으로 우리는 하늘만 바라보고 있어야 했다〔〈【 대원들의 자만을 꾸짖는 듯 하늘은 늘 우중충하고 그런 날이면 예외없이 눈을 퍼부었다.】〉〕 간절한 마음으로 양을 잡아 낭가의 여신께 제사를 올리는 날이면 더 폭설이 내리니 참으로 묘한 일이었다. 〔〈【루트 작업은 ‘지지 부진’, 】〉〕이성원(45·광주시산악연맹 이사) 원정대장의 ‘노심초사’가 깊어졌다. 6월 14일 송형근·김미곤·주우평 대원의 노력으로 정상 도전을 향한 최소한의 발판이 마련되었다. 760m를 오르는데 꼬박 43일이 걸린 셈이다. 눈사태에 대원이 부상당하고 폭설로 텐트가 일곱동이 넘게 파손된 뒤에야 얻은 값진 결과다. 6월에는 5,000m이상의 캠프로 올라가지 않는 이상 영하로 떨어지지 않는다. 이제 문제는 추위가 아니라 영하의 날씨에도 지글지글 끓는 태양열이다.〔〈【 태양열은 대원들의 체력을 크게 저하시키기 때문이다.】〉〕 너무 더워 옷가지 준비를 소홀히 하면 어김없이 폭풍설이 몰아쳐 방심한 피부를 얼려버린다. 궂은 날씨, 웬만한 눈은 일상으로 여기니 등반에 속도가 붙는다. 해외원정을 처음 온 박남수(41·광주시산악구조대원) 대원, 두 번째인 김병찬(40·극동이엔지) 부대장, 로체샬원정을 다녀온 박현수(29·광주전남등산학교 강사) 대원 등 모두가 제 몫을 다했다. 그 결과 마침내 7월 14일 루팔대장벽 중앙직등루트를 돌파해 정상에 설 수 있었다. 이번 등반으로 우리는 또 하나의 거벽을 넘어섰다. 단순히 높이 만을 추구하는 데서(등정주의) 벗어나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개척해 나가는 ‘등로주의’의 신기원을 연 것이다. 히말라야에 새 길을 여는 광주·전남산악인들의 도전은 계속될 것이다. /이현조 한국루팔대장벽 원정대원·전남대산악회O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