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급여를 못 받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새날학교 학생 아나스타샤)

“법원으로 오면 됩니다. 법원으로 와서 임금 청구소송을 내면 됩니다. 학생들은 절차를 잘 모르잖아요. 이런 경우를 대비해 무상으로 변호사를 붙여 소송을 지원하는 제도가 있어요.” (고영구 광주지방법원장)

‘대한민국 법원의 날’을 맞아 광주지방법원 고영구 원장을 비롯한 판사들이 13일 오후 광주 새날학교 학생들과 마주 앉았다. 광주지법은 매년 9월 13일 법원의 날이면 지역 학생들을 법원으로 초청하는 ‘열린 법원’ 행사를 열어왔는데, 이날은 고 원장을 비롯한 광주지법 판사와 직원들은 ‘사회적 약자’가 있는 다문화 대안학교로 직접 찾아 나섰다.

이날 판사들이 찾아간 곳은 광주시 광산구 삼도동 새날학교.

광주시교육청이 지정한 위탁형 학력 인정 교육기관으로 고려인과 다문화가정 자녀 75명의 배움터다. 한국이 낯선 학생들에겐 일종의 한국 생활 적응을 돕는 기관이기도 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조상들의 땅인 한국으로 올해 건너온 고려인 난민 학생 10여 명도 이곳에서 학업을 이어가며 꿈을 키우고 있다.

광주지법은 약 한 달 전 새날학교에 전화를 걸어 “법원의 날을 맞아 판사들이 직접 방문해 학생들에게 법원의 역할을 설명하고, 학생들 꿈도 키워주는 시간을 갖고 싶다”며 행사 일정을 조율했다고 한다.

이날 행사는 학교 강당에서 이뤄졌다.

이천영 교장이 “오늘 우리 학교가 생긴 이래 가장 큰 행사가 열렸다. 학생과 교직원을 대표해 제가 환영하고 감사 인사를 드린다. 이 순간 정말 마음이 따뜻해진다”고 환영사를 했다.

고 원장은 “새날학교에는 우리 대한민국의 후손들이 우크라이나 등지에서 살다가 2세 3세들이 한국에 와서 적응하기 위해 공부를 하고 있다고 들었다”며 “법원은 나쁜 사람을 처벌하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힘없는 사람들의 권리를 구제하는 곳이다. 법원이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 알려드리고 도움을 주고 싶어 찾아왔다”고 인사했다.

이어 법원장과 학생들의 문답 시간.

학생들은 최근 종영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재미있게 봤다며, 궁금증이 쌓여 있다는 듯 질문 공세를 폈다.

학생들은 “외국인도 판사가 될 수 있느냐” “법원장님 월급은 얼마냐” “재판을 할 땐 한국 사람과 외국인 모두 적용하는 법 기준이 같으냐”고 물었다.

고 원장은 월급 질문이 나올 땐 난처한 듯 주변을 살폈지만 이내 하나하나 솔직하게 답했다.

“저는 올해로 32년째 법관을 하고 있고요. 월급은 1000만원이 조금 넘지만 구체적인 것은 비밀입니다. 외국인이든 한국인이든, 남자든 여자든, 나이가 많든 적든 법원은 공평합니다. 외국인은 한국 판사가 될 수 없어요. 그렇지만 한국인으로 귀화하면 여러분도 변호사 시험 등 절차를 거쳐 판사가 될 수 있습니다”

20분가량 이어진 대화에서 학생들 집중도는 고 법원장이 월급을 공개할 때와 판사가 되는 방법에 관해 이야기할 때가 최고조였다. 문답 시간이 끝나자 학생들은 법원에서 준비해온 법복을 입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여학생 3명은 법복을 벗기 아쉬운지 마지막까지 법복을 벗지 않고 계속 카메라를 향해 ‘손가락 브이’를 하며 사진을 찍었다. 학교 현관 앞 전체 기념 촬영이 끝나면서 행사가 마무리되려 하자 일부 학생은 판사들에게 다가가 함께 인증 사진을 찍었다. 법원장에게도 “어느 대학 나왔느냐”고 물으며 “법원장님 명함을 받고 싶다”고 조르기도 했다. 고 원장은 당황하는 표정을 짓다가 이내 “성균관대 졸업했어요”라고 웃으며 명함도 건넸다.

이 학교 학생회장 김 율리아(18·고 3) 양은 “드라마 우영우를 친구들이 많이 봐서 법원에 관심이 많다. 판사님 하면 뭔가 딱딱한 느낌인데 오늘 강의를 들으며 훨씬 가깝고 친숙하게 느껴졌다. 함께 웃으며 사진도 찍을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고 원장을 비롯한 광주지법 관계자들은 새날학교 행사를 마치고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을 찾아 고려인들의 애로사항 등을 들었고, 법원 내 봉사 조직인 ‘무등봉사단’이 준비한 사랑의 쌀을 전달했다.

/김형호 기자 khh@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