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상기행] 왜 우리는 시를 사랑할까
2024년 10월 05일(토) 12:10 가가
<1>시를 노래하는 ‘김창완 밴드’
‘시상’과 ‘기행’에는 각각 두 가지 뜻이 있다. 시상에는 첫째 ‘시적인 생각이나 상념’, 둘째 ‘세상‘을 의미하는 전라도 방언’이라는 뜻이 있고, 기행은 첫째 ‘여행하는 동안에 보고, 듣고, 느끼고, 겪은 것을 적은 것’, 둘째 ‘기이한 행동’이라는 뜻을 가진다.
‘시상(세상)’을 바라보며 느낄 ‘시상(詩想)’에 대하여, ‘기행(奇行)’하며 써 내려갈 ‘기행(紀行)’을 위하여. ‘시상기행’을 시작한다.
시상기행의 목적은 “왜 우리는 무엇을 사랑할까”에 대한 탐구다. 철학도로서, 더 나아가서 학문을 하려는 이로써 가져야 할 자세는 언제나 모든 것에 ‘왜?’라고 질문하는 자세임을 대학에 온 지 반년이 지난 지금, 여실히 느끼는 중이다. 우리는 삶 속에서 ‘왜’ 어떤 것을 보았을 때 특정한 감정을 느끼는지, 우리는 ‘왜’ 무언가에 매료되는지 묻게 되었고, 그리하여 “왜 우리는 무엇을 사랑할까”라는 대질문이 완성되었다. ‘시상’기행이니만큼, 시상기행의 첫 번째 물음은 ‘왜 우리는 시를 사랑할까’다.
지난 9월 ‘2024 ACC 월드뮤직 페스티벌’이 진행되었다. 장르와 국경을 초월하는 무경계 음악 축제인 ‘ACC 월드뮤직 페스티벌’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대표 행사로, 2010년에 처음 개막해 올해로 제15회를 맞이했다. 필자는 행사 첫날 이곳을 찾아 ‘김창완밴드’의 공연에 다녀왔다.
축제를 즐기던 중, ‘산울림’부터 ‘김창완밴드’까지 그들의 음악은 왜 나이를 불문하고 많은 이의 사랑을 받는가에 대한 물음이 생겼다. 아티스트 본인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만, 나는 그를 한국의 대중 시인이라고 생각한다. 일례로 그가 작사한 <시간>이라는 곡이 있다.
“[......]
시간은 화살처럼 앞으로 달려가거나
차창 밖 풍경처럼 한결같이 뒤로만 가는 게 아니야
앞으로도 가고 뒤로도 가고 멈춰 서 있기도 한단다
더 늦기 전에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
모든 생명은 아름답다
모든 눈물이 다 기쁨이고 이별이 다 만남이지
사랑을 위해서 사랑할 필요는 없어
그저 용감하게 발걸음을 떼기만 하면 돼
네가 머뭇거리면 시간도 멈추지
후회할 때 시간은 거꾸로 가는 거야 잊지 마라
시간이 거꾸로 간다 해도 그렇게 후회해도
사랑했던 순간이 영원한 보석이라는 것을
시간은 모든 것을 태어나게 하지만
언젠가 풀려 버릴 태엽이지
시간은 모든 것을 사라지게 하지만
찬란한 한순간의 별빛이지
[......]”
- 김창완, <시간>
이 곡을 들으며 노래 가사와 시는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은 글자로만 전해지는 과거의 시들 역시 노래로 불리지 않았을까. 시의 특징 중 하나가 운율감이고, “시를 노래한다”라는 수사적 표현이 어색하지 않다는 것이 그에 대한 방증이리라 생각한다.
‘김창완밴드’의 공연을 관람하고 있던 청년에게 몇 가지를 물었다.
-ACC 월드뮤직 페스티벌에 오셔서 관람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평소 대중 문화 예술에 큰 관심이 있는 한 사람으로서 ACC에서 주최하는 월드뮤직 페스티벌에 흥미를 느끼고 관람하게 됐다.
- ‘김창완밴드’의 공연은 어땠나
▲절기상 가을이라고는 하지만 잎사귀는 아직 파릇파릇하며 여전히 여름부터 이어진 더위가 남아있다. 늦여름이라고 느껴지는 시기에 광주의 중심에 위치한 ACC 야외무대에서 조우한 김창완 밴드의 공연은 낭만이라는 단어를 가시적으로 목격할 수 있는 경험이었다.
-왜 ‘김창완밴드’는 나이를 불문하고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을까
▲아마도 김창완 밴드가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에 대해서 그들이 노래하는 가사가 특별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이지 아닐까 싶다. 사람들은 일상을 살아가고 일상은 반복되기 때문에 만연하다. 만연한 것들은 삶 속에서 자주 목격되기에 쉽사리 가치를 잃기 쉽다. 누군가 반복되고 만연한 일상이 특별하다며 이야기해 주면, 일상은 그 순간 의미가 생기게 되기 마련이다. 김창완 밴드의 음악은 우리의 일상이 사실은 매일매일 의미 있고 특별하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그렇기에 그들은 여전히 사랑받지 않나 싶다.
인터뷰를 통해 알 수 있는 ‘김창완밴드’가 사랑받는 이유는, 우리가 시를 사랑하는 이유와 맞닿아 있다. 우리가 시를 사랑하는 이유는, 시는 쉽게 쓰이지 않기 때문이다. 윤동주 시인은 <쉽게 쓰여진 시>를 쓰며 부끄러움을 느끼지만, 그 시 역시 결코 쉽게 쓰이지 않았을 것이다. 단순히 물리적인 힘이 든다기보다는, 시를 쓰기 위해 모든 감각을 깨워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뻐하고 향유하기 위해서, 슬퍼하고 괴로워하기 위해서, 감사하기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든 무언가 느끼기 위해서 시인은 감정의 최전선에 서야만 한다. 이는 시상을 떠올리는 사람, 시를 쓰는 사람, 시집을 펴내는 사람, 시를 읽는 사람에게 모두 해당된다. 시상이 떠오르는 건 한순간이라지만 그것 역시 받아들일 준비가 된 자에게 떠올려지는 것이며, 많은 창작물이 그러하겠지만 마음을 쓰고 감정을 들여야 시와 대화를 할 수 있다.
나는 언제나 “시인은 천재다”라고 말했고, 누군가 ‘롤모델이 누구냐’고 물으면 “늙은 시인이다”라고 답했다. 특히 존경하는 존재, 되고 싶은 존재를 늙은 시인이라 지목한 것은 무뎌지지 않는 어른이 되고 싶다는 소망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감각에 무뎌진 어른이 아닌 감수성을 가진 어른이 되기 위해, 아름다움을 느끼고 감격할 수 있는 어른이 되기 위해, 강물이 마르고 별이 무너져 내려도(서덕준, <장밋빛 인생>) 인생을 노래하기 위해, 우리는 시를 사랑한다.
풀꽃 시인이라 불리는 ‘나태주’ 시인의 <선물>이라는 시를 소개하며 첫 번째 시상기행, “왜 우리는 시를 사랑할까”를 마친다.
반복되는 만연함으로 흘려보낼 수도 있는 하루의 요소들을 모두 선물이라 말하는 이 시는, 열네 살 때 내 손으로 처음 사본 시집에 수록되어 있던 시이자, 처음 스스로의 의지로 암송해 본 시다. “우리가 왜 사는지는 모르지만, 살고 있다는 건 알잖아요. 세상은 아름답습니다. 아름다운 가을밤입니다”라고 공연 중 김창완 씨가 전한 말을 떠올리게 되는 시이기도 하다. 김창완 씨의 <나는 지구인이다>를 들으며 오늘의 시를 읽어보시는 건 어떨까.
“나에게 이 세상 하루하루가 선물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만나는 밝은 햇빛이며 새소리,
맑은 바람이 우선 선물입니다.
문득 푸르른 산 하나 마주했다면 그것도 선물이고,
서럽게 서럽게 뱀 꼬리를 흔들며 사라지는
강물을 보았다면 그 또한 선물입니다.
한낮의 햇살 받아 손바닥 뒤집는
잎사귀 넓은 키 큰 나무들도 선물이고
길 가다 발밑에 깔린 이름 없어 가여운
풀꽃들 하나하나도 선물입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이 지구가 나에게 가장 큰 선물이고
지구에 와서 만난 당신,
당신이 우선적으로 가장 좋으신 선물입니다.
저녁 하늘에 붉은 노을이 번진다 해도 부디
마음 아파하거나 너무 섭하게 생각하지 마서요
나도 또한 이제는 당신에게
좋은 선물이었으면 합니다.“
- 나태주, <선물>
/글·사진=정은 대학생 기자
/정리=김진아 기자 jinggi@kwangju.co.kr
시상기행의 목적은 “왜 우리는 무엇을 사랑할까”에 대한 탐구다. 철학도로서, 더 나아가서 학문을 하려는 이로써 가져야 할 자세는 언제나 모든 것에 ‘왜?’라고 질문하는 자세임을 대학에 온 지 반년이 지난 지금, 여실히 느끼는 중이다. 우리는 삶 속에서 ‘왜’ 어떤 것을 보았을 때 특정한 감정을 느끼는지, 우리는 ‘왜’ 무언가에 매료되는지 묻게 되었고, 그리하여 “왜 우리는 무엇을 사랑할까”라는 대질문이 완성되었다. ‘시상’기행이니만큼, 시상기행의 첫 번째 물음은 ‘왜 우리는 시를 사랑할까’다.
“[......]
시간은 화살처럼 앞으로 달려가거나
차창 밖 풍경처럼 한결같이 뒤로만 가는 게 아니야
앞으로도 가고 뒤로도 가고 멈춰 서 있기도 한단다
더 늦기 전에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
모든 생명은 아름답다
모든 눈물이 다 기쁨이고 이별이 다 만남이지
사랑을 위해서 사랑할 필요는 없어
그저 용감하게 발걸음을 떼기만 하면 돼
네가 머뭇거리면 시간도 멈추지
후회할 때 시간은 거꾸로 가는 거야 잊지 마라
시간이 거꾸로 간다 해도 그렇게 후회해도
사랑했던 순간이 영원한 보석이라는 것을
시간은 모든 것을 태어나게 하지만
언젠가 풀려 버릴 태엽이지
시간은 모든 것을 사라지게 하지만
찬란한 한순간의 별빛이지
[......]”
- 김창완, <시간>
이 곡을 들으며 노래 가사와 시는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은 글자로만 전해지는 과거의 시들 역시 노래로 불리지 않았을까. 시의 특징 중 하나가 운율감이고, “시를 노래한다”라는 수사적 표현이 어색하지 않다는 것이 그에 대한 방증이리라 생각한다.
‘김창완밴드’의 공연을 관람하고 있던 청년에게 몇 가지를 물었다.
-ACC 월드뮤직 페스티벌에 오셔서 관람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평소 대중 문화 예술에 큰 관심이 있는 한 사람으로서 ACC에서 주최하는 월드뮤직 페스티벌에 흥미를 느끼고 관람하게 됐다.
- ‘김창완밴드’의 공연은 어땠나
▲절기상 가을이라고는 하지만 잎사귀는 아직 파릇파릇하며 여전히 여름부터 이어진 더위가 남아있다. 늦여름이라고 느껴지는 시기에 광주의 중심에 위치한 ACC 야외무대에서 조우한 김창완 밴드의 공연은 낭만이라는 단어를 가시적으로 목격할 수 있는 경험이었다.
-왜 ‘김창완밴드’는 나이를 불문하고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을까
▲아마도 김창완 밴드가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에 대해서 그들이 노래하는 가사가 특별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이지 아닐까 싶다. 사람들은 일상을 살아가고 일상은 반복되기 때문에 만연하다. 만연한 것들은 삶 속에서 자주 목격되기에 쉽사리 가치를 잃기 쉽다. 누군가 반복되고 만연한 일상이 특별하다며 이야기해 주면, 일상은 그 순간 의미가 생기게 되기 마련이다. 김창완 밴드의 음악은 우리의 일상이 사실은 매일매일 의미 있고 특별하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그렇기에 그들은 여전히 사랑받지 않나 싶다.
인터뷰를 통해 알 수 있는 ‘김창완밴드’가 사랑받는 이유는, 우리가 시를 사랑하는 이유와 맞닿아 있다. 우리가 시를 사랑하는 이유는, 시는 쉽게 쓰이지 않기 때문이다. 윤동주 시인은 <쉽게 쓰여진 시>를 쓰며 부끄러움을 느끼지만, 그 시 역시 결코 쉽게 쓰이지 않았을 것이다. 단순히 물리적인 힘이 든다기보다는, 시를 쓰기 위해 모든 감각을 깨워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뻐하고 향유하기 위해서, 슬퍼하고 괴로워하기 위해서, 감사하기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든 무언가 느끼기 위해서 시인은 감정의 최전선에 서야만 한다. 이는 시상을 떠올리는 사람, 시를 쓰는 사람, 시집을 펴내는 사람, 시를 읽는 사람에게 모두 해당된다. 시상이 떠오르는 건 한순간이라지만 그것 역시 받아들일 준비가 된 자에게 떠올려지는 것이며, 많은 창작물이 그러하겠지만 마음을 쓰고 감정을 들여야 시와 대화를 할 수 있다.
나는 언제나 “시인은 천재다”라고 말했고, 누군가 ‘롤모델이 누구냐’고 물으면 “늙은 시인이다”라고 답했다. 특히 존경하는 존재, 되고 싶은 존재를 늙은 시인이라 지목한 것은 무뎌지지 않는 어른이 되고 싶다는 소망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감각에 무뎌진 어른이 아닌 감수성을 가진 어른이 되기 위해, 아름다움을 느끼고 감격할 수 있는 어른이 되기 위해, 강물이 마르고 별이 무너져 내려도(서덕준, <장밋빛 인생>) 인생을 노래하기 위해, 우리는 시를 사랑한다.
풀꽃 시인이라 불리는 ‘나태주’ 시인의 <선물>이라는 시를 소개하며 첫 번째 시상기행, “왜 우리는 시를 사랑할까”를 마친다.
반복되는 만연함으로 흘려보낼 수도 있는 하루의 요소들을 모두 선물이라 말하는 이 시는, 열네 살 때 내 손으로 처음 사본 시집에 수록되어 있던 시이자, 처음 스스로의 의지로 암송해 본 시다. “우리가 왜 사는지는 모르지만, 살고 있다는 건 알잖아요. 세상은 아름답습니다. 아름다운 가을밤입니다”라고 공연 중 김창완 씨가 전한 말을 떠올리게 되는 시이기도 하다. 김창완 씨의 <나는 지구인이다>를 들으며 오늘의 시를 읽어보시는 건 어떨까.
“나에게 이 세상 하루하루가 선물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만나는 밝은 햇빛이며 새소리,
맑은 바람이 우선 선물입니다.
문득 푸르른 산 하나 마주했다면 그것도 선물이고,
서럽게 서럽게 뱀 꼬리를 흔들며 사라지는
강물을 보았다면 그 또한 선물입니다.
한낮의 햇살 받아 손바닥 뒤집는
잎사귀 넓은 키 큰 나무들도 선물이고
길 가다 발밑에 깔린 이름 없어 가여운
풀꽃들 하나하나도 선물입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이 지구가 나에게 가장 큰 선물이고
지구에 와서 만난 당신,
당신이 우선적으로 가장 좋으신 선물입니다.
저녁 하늘에 붉은 노을이 번진다 해도 부디
마음 아파하거나 너무 섭하게 생각하지 마서요
나도 또한 이제는 당신에게
좋은 선물이었으면 합니다.“
- 나태주, <선물>
/글·사진=정은 대학생 기자
/정리=김진아 기자 jinggi@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