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에서 연락이 오기 전까지 저는 아르바이트인 줄 알았지 제가 보이스피싱 수금책으로 활동했다(이용당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월급을 딱 최저임금에 맞춰준다길래 상상조차 못했습니다. ”

정수희(가명·23·광주시 북구)씨는 요즘 광주지방법원 형사법정에 불려 다니고 있다. 경찰 수사를 거쳐 검찰이 지난 2월 정씨를 보이스피싱(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겼기 때문이다. 피고인 정씨는 “대학 졸업하고 곧바로 취업이 안 돼 세상 물정 모르고 알바에 나섰다가 전과자로 전락할 상황”이라며 “유무죄 판단은 법원에서 하겠지만 저 같은 사례가 다시는 나오지 않길 바란다”며 13일 인터뷰에 응했다.

지난해 2월 광주의 한 대학을 졸업한 정씨는 아르바이트를 구하다 보이스피싱 범죄에 휘말렸다. 그는 약 2주간 자신이 보이스피싱 일당의 손발이 된 줄도 모르고 일을 하다가 손에 쥔 것은 30만원인데, 피해자에게 합의금으로 5000만원을 물어줘야 하는 처지라고 하소연부터 했다.

사건은 지난해 1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씨는 2021년 11월 초 구인·구직 포털사이트 ‘알바○○’에 이력서를 올렸다. 취업공부를 하면서 용돈 벌이도 할 겸 간단한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서였다.

예상과 달리 반나절도 안 돼 구인 문자 메시지 수십 통이 왔다. 이 중 일이 비교적 쉬워 보이는 업체에 입사 지원을 했다. 각종 회삿돈을 관리하는 ‘아웃소싱 급여 대행업’을 한다는 업체였다. 업체 측이 4대 보험도 가입할 수 있었고, 근로계약서도 꼼꼼히 작성하는 데다 월급도 최저임금인 164만원에 맞춰서 준다니 별다른 의심이 들지 않았다고 한다.

정씨의 근무지는 다름 아닌 PC방이었다. 종일 대기하다가 연락을 받으면 나와서 일종의 심부름을 하라는 것이었다. 정씨는 PC방에서 취업 관련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업무 중 공부도 할 수 있다니, 괜찮은 아르바이트다’고 생각했다.

“만날 사람이 있다”는 전화를 받고 거리로 나선 정씨는 대뜸 돈이 가득 담긴 검은 비닐봉지를 전달받았다. 거리에서 만난 남성(실제로는 보이스피싱 피해자)이 건네준 휴대전화에서 “정수희 사원님, 보내드린 계좌 번호에 이 돈을 무통장입금하세요”라는 회사의 지시가 전해지자 정씨는 인근 은행으로 가서 송금했다.

정씨는 약 2주 동안 이 일을 6번 반복했다. 한 건당 전달받은 수수료는 5만원 남짓으로 총 30만원을 받았다.

같은 달 18일 경찰서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피해자들의 신고로 보이스피싱 수금책 노릇을 한 혐의(사기)가 적발됐으니 경찰서에 출석하라는 것이었다. 정씨가 다급하게 회사에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봤지만, 회사는 ‘경찰에는 아무것도 몰랐다, 의심조차 안됐다고만 얘기하라’는 말만 남겼다. 정씨와 회사가 나눴던 텔레그램 대화 기록은 어느새 삭제돼 있었다.

정씨는 “알바○○에서 꾸준히 ‘보이스피싱 구인광고’를 조심하라고 경고했다지만, 막상 당하기 전까진 눈에 안 들어오더라”며 “지금까지도 유사한 구인 문자메시지가 하루에 1~2건씩 계속 온다. 피싱범에게 전화번호를 다 풀어주고, 정작 책임은 구직자에게 돌리는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정씨와 같은 20대와 30대 구직 청년들이 보이스피싱 일당의 꾐에 넘어가 수금책으로 활동하다 붙잡히는 사례가 잇따르자 광주경찰청은 최근 ‘채권 회수’ 아르바이트 주의보를 발령했다. 고수익을 빌미로 아르바이트를 지원했다가 본의 아니게 피해 금액을 수거·전달·송금하다 범죄자로 전락하는 청년들이 급증하고 있어 청년들에게 각별한 주의를 당부하고 나선 것이다.

광주경찰청은 올해 광주 경찰이 검거한 보이스피싱 피의자를 유형별로 분석한 결과, 전체 288명 중 144명(50%)이 현금 수거책으로 나타났다. 붙잡힌 수금책 중에선 20대와 30대가 각각 89명과 24명으로 30대 이하 청년이 78%를 차지했다. 광주경찰청 관계자는 “아르바이트를 구할 때 비대면 면접을 하거나 카톡·텔레그램으로 현금 수령이나 입금을 지시하는 경우는 보이스피싱을 의심해야 한다”며 “청년 구직자들은 어떠한 경우라도 현금을 수거하는 아르바이트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했다.

/유연재 기자 yjyou@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