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희경의 소설을 읽을 때면 약간의 서늘함을 느낀다. 이런 저런 상황에 맞닥뜨리는 등장인물들이 낯설지 않아서다. 마치 나의 , 내 곁의 누군가의 생각을 적어놓은 듯해 움찔해지기도 한다.

서로 잘 안다고 생각한 오랜 친구를 주인공으로 내 세운 단편 ‘우리는 왜 얼마 동안 어디에’도 그런 기분이 드는 소설이다.

소설가 은희경이 작품집 ‘장미의 이름은 장미’를 펴냈다. 단편집으로는 ‘중국식 룰렛’ 이후 6년만에 나온 책이다. 네 편의 연작 소설은 모두 ‘뉴욕’이 배경이고, 출판사측은 ‘뉴욕-여행자 소설 4부작’이라 이름 붙였다. 낯선 외국에서 펼쳐지는 이이야기는 다양한 시선을 만날 수 있어 흥미롭다.

‘우리는 왜 얼마 동안 어디에’는 잡지사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승아’가 친구 ‘민영’의 뉴욕집에 머무는 10일간의 이야기를 다룬다. 두 사람의 일상은 승아가 도착한지 하룻만에 인터넷으로 빨리 돌아갈 수 있는 티켓을 알아볼 정도로 아슬아슬하다. 왠지 계속 어긋나기만하는 두 사람의 상태는 줄곧 ‘관계’에 대해, 누군가를 안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든다. 승아와 민영의 하루를 번갈아가며 보여주는데, 자꾸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표제작 ‘장미의 이름은 장미’는 제29회 오영수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주인공은 이혼을 하고 홀로 뉴욕으로 떠난 마흔 여섯의 ‘나’와 그녀가 어학원에서 만난 세네갈 대학생 ‘마마두’다. 누구와도 잘 어울리지 않는 마마두와 짝을 이뤄 조금씩 가까워진 ‘나’는 그와 따로 학교 밖에서도 만남을 갖지만 오해가 빚어낸 일로 서로의 ‘다름’을 확인한다.

‘양과 시계가 없는 궁전’은 뒤늦게 예술대학 극작과에 진학해 극본 작업을 하는 ‘현주’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삼 년 전 처음 뉴욕을 방문한 그는 사촌언니를 따라 간 피크닉에서 중학생 때 유학 온 ‘로언’을 만나 인연을 맺는다. 이후 매년 뉴욕을 방문한 현주는 이번 네 번째 방문 때도 로언을 만나고, 로언의 친구들을 소재로 글을 써 보리고 마음먹었지만 로언과 함께 있는 시간이 이어지면서 둘 사이의 관계도 조금씩 변화를 맞는다.

‘아가씨 유정도 하지’의 주인공 ‘나’ 역시 글을 쓰는 사람이다. 문학 행사 참여 차 뉴욕에 온 그는 평소에 자식들 일에 그다지 관여하지도, 또 의존하지도 않는 팔 십대 어머니와 동행중이다. 어머니와 자신이 지나온 여러 시절을 돌이켜 보던 그는 어머니가 왜 이곳에 온 것일까 궁금해하고, 그녀의 캐리어에서 ‘최유정’이라는 어머니 이름 앞으로 온 오래된 항공우편을 발견하고, 그녀의 마음을 헤아린다.

<문학동네·1만5000원>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