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기쁜 크리스마스가 돌아왔다. 각종 경쟁이 가져온 위기 의식과 날로 짙어가는 전 세계적인 정치·경제 파동의 긴장 속에서 사람들은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다. 이러한 때 평화의 왕, 인류의 구세주가 오신 날을 맞는 마음은 기쁘다기보다 차라리 절실하다.

비할 데 없이 기쁜 성탄이지만 이때가 돌아오면 해마다 뜻 없이 늘어만 가는 들뜬 축하 행사와 소란한 거리의 축하 소동 속에서 조용하고 뜻 있는 성탄을 맞고 싶다고 곰곰이 뇌게 된다. 그것은 시대의 요청이며 겨레와 교회의 혁신을 바라는 양심의 소리일 것이다.

불과 몇 년전만 해도 크리스마스가 되면 트리가 숲을 이루고 선물과 카드가 홍수를 이루고 네온사인과 촛불이 별인 듯 명멸하는 속에 흥겹고 다채로운 놀이가 밤을 세워 진행되곤 했다. 이런 축하 소동 속에서 끝없이 외로우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게 되었다. 실로 그것은 그리스도 없는 성탄 축하가 아니었을까.

가난과 주림에서 시달리는 겨레, 질고와 고독에 우는 이들, 철의 장막 뒤에서 자유를 동경하며 한숨 짓는 형제들, 복지 사회 실현은 아직도 까마득히 멀고 생활난과 물가고로 삶의 주변은 그대로 슬픔에 둘러싸여 있다. 우리 중 풍요와 평화의 착각에서 로마의 농신제 사투르날리아(Saturnalia)를 방불케하는 가장 행렬 같은 성탄 축하를 해도 좋은 사람이 있을 것인가. 고요한 성탄 대신 소란한 성탄으로 변질된 크리스마스를 맞으면서 어떻게 성탄을 맞을까를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불안과 초조에 떨고 있는 이 겨레에게 목마르게 아쉬운 것은 마음과 몸과 생활, 겨레와 국가의 평안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안주할 평화의 땅은 이 지상에 없는 것 같다.

우리는 조용히 2019년 전 그때 쓸쓸한 베들레헴 말구유에 탄생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가고 싶다. 수도 예루살렘 왕궁이 아니고 벽촌 베들레헴의 마굿간에서 인류의 구세주, 평화의 왕이 탄생했기 때문에 세상을 지으신 이가 자기 땅에 오셨지만,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고 영접하지 않았다는 것은 2000년 전 신화가 아니라 21세기 오늘의 정황인 점에서 그때와 이때는 같은 시대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류의 구세주가 탄생하셨다는 관념적인 성탄 축하보다 실존하는 인간 예수를 영접함으로써 주님을 영접하는 성탄을 맞고 싶다.

‘주리고 헐벗고 병들고 외로운 어린 소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는 말씀을 기억하는 성탄이 아쉽다.

깊은 밤, 차가운 빈 들에서 양떼를 지키던 목자들, 가난하고 고달픈 삶에서 삶의 보람도 기쁨도 체념 속에 묻고 사는 불행한 이들, 따뜻한 사랑도 정다운 이웃도 없는 이들에게 제일 먼저 성탄의 기쁜 소식을 하늘의 천사가 전하였다. 바로 그들이 뛰어가 집도 없는 가난하고 고단한 나그네의 아들 예수에게 경배한 것이 처음 크리스마스 축하였다는 것은 먼 옛날의 전설이 아니다. 그리스도는 오늘도 이런 모양으로 새상에 오시고 이런 이들을 찾아가 이 성탄을 지내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신앙의 세계에서 볼 때 그때나 이때나 동시대적인 역사의 현실이다.

평화의 왕이 오셨다. 그러나 왕이 말구유에 태어나셨다. “강보에 싸여 말구유에 태어난 아이를 보리니 이것이 표적이다”고 한 것이다. 왕도 가난하고 고달픈 나그네의 아들로 당신들보다 더 불행하게 태어났다. 평화는 강자의 지배로만 이루어지고 힘에 의해서만 누릴 줄 알았는데, 평화의 왕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심으로 참 평화의 복음을 전했다. 인류는 남을 정복해야 자기가 사는 줄 알았는데 예수는 남을 살리려고 자기를 버리는 길이 다같이 평화롭게 사는 길인 것임을 성탄으로 계시해 보여주신 것이다.

따뜻한 인정이 향기처럼 풍기고 사랑의 손길이 햇빛처럼 퍼져 버림받은 영들에도 빠짐없이 미치는 2019년 크리스마스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