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진상규명위원회는 무엇을 할 것인가?
2019년 12월 19일(목) 04:50 가가
[최용주 5·18기념재단 비상임연구위원]
사회가 혁명적인 변화를 겪지 않는 한, 보통 선거 제도가 도입되었다고 통치 체제가 바로 민주주의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제도로서 민주주의로 이행 이후에도 독재 정권 시절에 기득권을 누렸던 지배 계급의 영향력은 쉽게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1987년 6월 항쟁으로 주권자인 시민이 대통령을 직접 선출하였으나, 신군부의 주역인 노태우가 대통령으로 취임하고 5공화국 인사들이 주요 요직을 차지했던 시절을 상기하면 쉽게 이해가 된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독재 정권이 남겨놓은 인적, 관행적, 도덕적 유산을 청산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공고화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 공고화 과정이 그 이전 단계에 버금가는 사회적, 정치적 갈등을 수반한다는 점이다. 특히 독재 정권 시절에 정치 세력화된 군부의 영향력을 차단하는 인적 청산 과정이 요구되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이 과정을 효과적으로 극복하지 못하면 민주주의는 취약한 기반을 견디지 못하고 권위주의로 퇴행하거나 극심한 혼란을 겪게 된다. 80년대 이후 페루, 아르헨티나, 브라질 같은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과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의 아시아 국가들이 이 과정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여 정치적 퇴행을 겪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논란은 있으나 우리나라는 80년대 이후 제3의 물결 민주화의 대열에 진입한 국가 중에서 민주주의의 공고화 과제를 가장 성공적으로 달성한 국가로 평가되고 있다. 예를 들어, 김영삼 정부가 단행한 정치 군인 사조직인 하나회 해체와 1995∼97년 기간 중 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 주요 인사들에 대한 사법적 처리는 군부를 문민 세력의 통제 하에 두는 역사적 전기가 되었다.
두말할 나위 없이,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의 공고화가 가능했던 이유는 광주 항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광주 항쟁은 우리나라의 민주화에 이중으로 기여하였다. 첫째는 절차로서 민주주의를 이룩한 6월 항쟁의 정치적, 사회적 동력이 되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두 번째로는 국가 폭력에 저항한 광주시민의 피의 대가로 군부를 사법적으로 처벌할 수는 근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광주 항쟁은 군부의 정치 불개입에 대한 사회적, 정치적, 도덕적 합의를 바탕으로 민주주의를 공고화한 비극적 자양분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사태들은 보면 광주에서 흘린 피의 대가로 우리가 성취한 민주주의 가치들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어서 분노를 자아내게 한다. 촛불 항쟁으로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음에도 불구하고, 태극기 부대로 대표되는 극우 세력들이 우수죽순으로 부활하고 있으며, 군부의 정치 개입을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시대착오적 폭력 집단들이 광화문에서 당당하게 시위를 개최하는 수준으로 발전하였다.
나아가 촛불 항쟁 당시에 기무사령부를 중심으로 계엄령 발동을 계획했다는 소식은 군부에 대한 문민 통제가 허구이거나 아니면 ‘민·군 동맹’에 의한 새로운 유형의 권위주의 체제의 부활을 보는 것 같아서 너무나 충격적이다. 사회 일각의 이러한 우경화와 정치적 퇴행에 힘입어서 전두환은 재판에 출석하지 않고 보란 듯이 골프장을 드나들고, 12·12 군사 쿠데타의 주역을 모아놓고 호화 파티까지 열면서 민주주의 공고화에 노골적으로 저항하는 정치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는 중이다.
왜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되었을까? 단적으로 이야기하면, 군부 독재의 유산을 철저하게 청산하지 못한 탓이다. 정치적 이행기를 거치면서 새롭게 등장한 통치 엘리트들이 시민사회의 요구를 무시하고 권력 쟁취에 눈이 멀어서 군부 세력과 쉽게 야합한 결과인 것이다.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 세력은 제대로 된 사죄도 없는 상태에서 곧바로 사면되었으며, 지난 40년간 미루어진 광주 비극의 진상 규명 작업은 당시에 마음껏 인권 유린을 자행했던 가해자들이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당당하게 활보하도록 방치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제 곧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 조사위원회가 출범한다는 소식이다. 한국 전쟁 이후 최악의 국가 폭력 사태인 5·18의 진상을 규명한다는 것은 곧 그 국가 폭력을 기획하고 실행한 가해자의 새로운 혐의를 확인한다는 뜻이다. 가해자의 혐의를 확인했으면, 그에 합당한 사법적 처리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하며, 이 과정을 통해서 민주주의의 퇴행을 가져온 인적 고리를 차단해야 한다. 이게 진상규명위원회가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다시’ 공고화하는데 기여하는 방식이자, 궁극의 사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사태들은 보면 광주에서 흘린 피의 대가로 우리가 성취한 민주주의 가치들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어서 분노를 자아내게 한다. 촛불 항쟁으로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음에도 불구하고, 태극기 부대로 대표되는 극우 세력들이 우수죽순으로 부활하고 있으며, 군부의 정치 개입을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시대착오적 폭력 집단들이 광화문에서 당당하게 시위를 개최하는 수준으로 발전하였다.
나아가 촛불 항쟁 당시에 기무사령부를 중심으로 계엄령 발동을 계획했다는 소식은 군부에 대한 문민 통제가 허구이거나 아니면 ‘민·군 동맹’에 의한 새로운 유형의 권위주의 체제의 부활을 보는 것 같아서 너무나 충격적이다. 사회 일각의 이러한 우경화와 정치적 퇴행에 힘입어서 전두환은 재판에 출석하지 않고 보란 듯이 골프장을 드나들고, 12·12 군사 쿠데타의 주역을 모아놓고 호화 파티까지 열면서 민주주의 공고화에 노골적으로 저항하는 정치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는 중이다.
왜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되었을까? 단적으로 이야기하면, 군부 독재의 유산을 철저하게 청산하지 못한 탓이다. 정치적 이행기를 거치면서 새롭게 등장한 통치 엘리트들이 시민사회의 요구를 무시하고 권력 쟁취에 눈이 멀어서 군부 세력과 쉽게 야합한 결과인 것이다.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 세력은 제대로 된 사죄도 없는 상태에서 곧바로 사면되었으며, 지난 40년간 미루어진 광주 비극의 진상 규명 작업은 당시에 마음껏 인권 유린을 자행했던 가해자들이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당당하게 활보하도록 방치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제 곧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 조사위원회가 출범한다는 소식이다. 한국 전쟁 이후 최악의 국가 폭력 사태인 5·18의 진상을 규명한다는 것은 곧 그 국가 폭력을 기획하고 실행한 가해자의 새로운 혐의를 확인한다는 뜻이다. 가해자의 혐의를 확인했으면, 그에 합당한 사법적 처리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하며, 이 과정을 통해서 민주주의의 퇴행을 가져온 인적 고리를 차단해야 한다. 이게 진상규명위원회가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다시’ 공고화하는데 기여하는 방식이자, 궁극의 사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