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현의 ‘맛있는 이야기’] 대만 음식의 정체성
2019년 12월 19일(목) 04:50 가가
국내 외식업계에 대만 음식 열풍이 뜨겁다. 버블티로 시작된 대만 음식의 인기는 카스텔라, 망고 빙수, 지파이 등을 거쳐 현재는 흑설탕 버블티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대체 한국인은 왜 이토록 대만 음식에 열광하는 걸까?
그것은 대만 음식이 가진 독특한 정체성 때문이다. 그 정체성을 이해하려면 두 개의 상수와 두 개의 변수를 알아야 된다. 아열대기후와 섬이라는 자연조건은 예나 지금이나 변치 않는 상수다. 아열대기후의 섬, 오늘날 대만 음식과 식재료의 절반은 이 조건 때문에 탄생한 것이나 다름없다.
두 개의 변수는 지배 세력과 인구 구성이다. 원주민의 섬이었던 대만은 17세기 초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다섯 번에 걸쳐 지배 세력이 바뀐다. 처음으로 대만을 차지한 세력은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였다. 이어 명나라 출신의 정성공이라는 인물이 동인도회사를 몰아낸다. 하지만 정성공과 그의 후손은 불과 23년 만에 대만을 청나라에 빼앗긴다. 이후 청나라는 212년 동안 대만을 통치한다.
1895년 청일전쟁에서 청나라가 패하자 대만은 일본의 식민지가 된다. 일본이 획득한 첫 번째 식민지였다. 1945년 일본의 패전과 함께 대만은 독립을 맞이한다. 하지만 1949년 국공내전에서 패한 장개석의 국민당 정부가 다시 대만을 접수한다. 이 숨 가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원주민, 네덜란드, 중국, 일본의 다양한 문화가 섞이면서 대체 무엇이 대만의 고유한 식문화인지 구분이 모호해진다.
두 번째 변수는 인구 구성이다. 2015년을 기준으로 대만의 인구는 2350만 명. 그 대부분인 97.3%는 중국 대륙에서 넘어온 한족이다. 원주민의 숫자는 점점 줄어들어 지금은 2.3%에 불과하다. 나머지 0.4%는 결혼이나 취업을 위해 동남아 등지에서 온 이주민이다. 대만 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한족은 ‘본성인’과 ‘외성인’ 둘로 나뉜다.
본성인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시절부터 일제 강점기 이전까지 대륙에서 이주한 이들이다. 중국 남부 지방 출신의 농민과 어민이 대부분인 이들은 해안과 평야지대에 고루 분포하며 자신들만의 고유한 언어(타이완어)를 사용했다. 외성인은 1949년 집단으로 이주한 국민당 정부와 그 지지 세력이다. 관료 출신이 대부분인 이들은 수도인 타이베이를 중심으로 정착했다. 언젠가는 대륙으로 귀환할 것이라는 목표 아래 언어도 베이징어를 사용했다.
문제는 지배 세력인 외성인(15%)보다 본성인(85%)이 절대적으로 많았다는 점. 이를 극복하기 위해 국민당 정부는 1949년부터 1987년까지 무려 40년 가까이 계엄령을 선포한다. 계엄령 기간 동안 국민당 정부는 베이징어를 표준어로 제정하고 대만의 지리와 역사 대신 중국의 역사와 지리를 가르치며 대만인이라는 자의식을 말살하고 스스로 중국인으로 인식하도록 강요했다. 본성인과 외성인은 타이완 독립과 중국 통일이라는 정치적 지향의 차이로 현재까지 갈등을 겪고 있다. 이처럼 국가의 정체성조차 혼란스러운 마당에 음식의 정체성이 확립될 턱이 없었다.
초기에는 정착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푸젠 지역의 음식이 주를 이루었다. 하지만 이내 중국 대륙 곳곳의 특징이 가세했다. 다양한 구성원과 지배 세력의 잦은 교체로 반드시 지켜야 할 전통 따위는 애초부터 없었다. 외래 음식을 받아들여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선택이었다. 50년 동안의 일본의 식민 지배는 오히려 대만 음식에는 새로운 기회였다. 가츠오부시, 간장, 맛술 등 일본식 조미료가 가세하면서 감칠맛이 더욱 풍부해졌다.
아열대기후는 다른 건 몰라도 식재료 하나만큼은 넉넉하게 제공했다. 특히 과일과 사탕수수는 지천으로 널렸다. 다른 나라에서는 비싸고 귀한 ‘단맛’이 대만에서는 너무 쉽고 흔한 맛이었다. 이렇게 해서 단맛, 짠맛, 감칠맛의 변주가 만들어 내는 자유분방한 대만 음식의 특징이 만들어졌다. 이걸 대체 누가 싫어할 수 있겠는가.
아열대기후와 섬이라는 상수, 그리고 지배 세력과 인구 구성이라는 변수 사이에서, 대만 음식은 다양성이 곧 정체성인 매우 독특한 특징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대만 음식에는 중국 대륙 전체를 품은 것 같은 스케일과 일본 음식이 가진 디테일이 녹아 있다. 일본보다 다양하고 중국보다 맛있는 음식. 이 불가능할 것 같은 조합을 이뤄 낸 게 바로 대만 음식이다. 그러니 중국 대륙과 일본 열도 사이에 있는 한국이 대만 음식에 열광하는 건 어쩌면 예정된 운명 같은 것 아닐까.
<맛 칼럼니스트>
그것은 대만 음식이 가진 독특한 정체성 때문이다. 그 정체성을 이해하려면 두 개의 상수와 두 개의 변수를 알아야 된다. 아열대기후와 섬이라는 자연조건은 예나 지금이나 변치 않는 상수다. 아열대기후의 섬, 오늘날 대만 음식과 식재료의 절반은 이 조건 때문에 탄생한 것이나 다름없다.
1895년 청일전쟁에서 청나라가 패하자 대만은 일본의 식민지가 된다. 일본이 획득한 첫 번째 식민지였다. 1945년 일본의 패전과 함께 대만은 독립을 맞이한다. 하지만 1949년 국공내전에서 패한 장개석의 국민당 정부가 다시 대만을 접수한다. 이 숨 가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원주민, 네덜란드, 중국, 일본의 다양한 문화가 섞이면서 대체 무엇이 대만의 고유한 식문화인지 구분이 모호해진다.
문제는 지배 세력인 외성인(15%)보다 본성인(85%)이 절대적으로 많았다는 점. 이를 극복하기 위해 국민당 정부는 1949년부터 1987년까지 무려 40년 가까이 계엄령을 선포한다. 계엄령 기간 동안 국민당 정부는 베이징어를 표준어로 제정하고 대만의 지리와 역사 대신 중국의 역사와 지리를 가르치며 대만인이라는 자의식을 말살하고 스스로 중국인으로 인식하도록 강요했다. 본성인과 외성인은 타이완 독립과 중국 통일이라는 정치적 지향의 차이로 현재까지 갈등을 겪고 있다. 이처럼 국가의 정체성조차 혼란스러운 마당에 음식의 정체성이 확립될 턱이 없었다.
초기에는 정착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푸젠 지역의 음식이 주를 이루었다. 하지만 이내 중국 대륙 곳곳의 특징이 가세했다. 다양한 구성원과 지배 세력의 잦은 교체로 반드시 지켜야 할 전통 따위는 애초부터 없었다. 외래 음식을 받아들여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선택이었다. 50년 동안의 일본의 식민 지배는 오히려 대만 음식에는 새로운 기회였다. 가츠오부시, 간장, 맛술 등 일본식 조미료가 가세하면서 감칠맛이 더욱 풍부해졌다.
아열대기후는 다른 건 몰라도 식재료 하나만큼은 넉넉하게 제공했다. 특히 과일과 사탕수수는 지천으로 널렸다. 다른 나라에서는 비싸고 귀한 ‘단맛’이 대만에서는 너무 쉽고 흔한 맛이었다. 이렇게 해서 단맛, 짠맛, 감칠맛의 변주가 만들어 내는 자유분방한 대만 음식의 특징이 만들어졌다. 이걸 대체 누가 싫어할 수 있겠는가.
아열대기후와 섬이라는 상수, 그리고 지배 세력과 인구 구성이라는 변수 사이에서, 대만 음식은 다양성이 곧 정체성인 매우 독특한 특징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대만 음식에는 중국 대륙 전체를 품은 것 같은 스케일과 일본 음식이 가진 디테일이 녹아 있다. 일본보다 다양하고 중국보다 맛있는 음식. 이 불가능할 것 같은 조합을 이뤄 낸 게 바로 대만 음식이다. 그러니 중국 대륙과 일본 열도 사이에 있는 한국이 대만 음식에 열광하는 건 어쩌면 예정된 운명 같은 것 아닐까.
<맛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