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광주에 사는 게 대체로 만족스럽다. 특히 요즘같이 금남로 일대가 노란 단풍잎으로 물들 때면 도시가 참 낭만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시사철 무등산에서 뿜어져 나오는 신선한 공기도 좋고 문화전당의 잘 가꿔진 도시 정원에서 풍기는 꽃향기도 좋다.

그만큼 도시 경관은 시민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뿐만 아니라 잘 가꿔진 도시 경관은 훌륭한 관광 상품이기도 하다. 해외의 유명한 관광지를 둘러보면 대부분 도시 경관이 한 폭의 그림처럼 잘 계획되어 있다. 해방 후 광주시장으로 부임한 미군정청의 디론 소령은 사직공원에서 광주시내를 내려다보면서 광주를 “숲에 덮인 아름다운 도시”라고 감탄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그 모습이 다 사라지고 무채색의 삭막한 도시 경관뿐이다. 필자가 광주시장이라면 꼭 하고 싶은 일이 하나 있다. 100년 프로젝트로 경양방죽을 다시 복원하는 것이다. 경양방죽은 농업 용수를 확보하려는 실용적인 목적도 있었지만 광주의 화(火)기를 다스리는 비보 풍수로도 역할을 했다.

유명한 풍수학자는 “광주에 경양방죽이 있었다면 광주는 대한민국 최고의 호반 도시가 됐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스토리는 관광 측면에서도 효용 가치가 있다. 풍수라는 동양 사상을 접하지 못한 서양인에게는 흥미로운 소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변에 이 복원 이야기를 하면 열이면 열 그 어마어마한 복원 비용을 어떻게 마련할 것이냐며 헛된 망상으로 치부한다. 하지만 유럽의 도시들은 성당 하나를 짓는데 100년에 걸쳐서 짓고 있다.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러한 빈약한 도시 경관은 관광객을 유치하는데도 애를 먹이고 있다. 보통 관광은 경관과 스토리로 이루어지는데 광주는 경관이 너무나 빈약하다.

광주를 상징할 만한 랜드마크도 없고 특이한 자연 경관도 없다. 그래서인지 다들 광주 관광에 대해서는 “광주에 뭐 볼게 있다고?” “광주는 뭘 해도 관광은 힘들어!”라는 무기력증에 빠져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기죽을 필요가 없다. 광주의 경관은 빈약하지만 스토리가 아주 풍부한 고장이다. 스토리는 보통 어떤 사람의 숭고한 행위나 특이한 행적, 관습 등으로 만들어지는데 광주는 그 어떤 도시보다도 사람들이 위대한 도시다.

조선 시대로 올라가면 퇴계 이황과 학문적 논쟁을 벌인 대유학자 고봉 기대승 선생이 있고, 용맹함이 신출귀몰하여 여러 설화를 낳은 임진왜란 의병장 김덕령 장군도 있다. 그뿐인가. 중국에서 혁명 음악의 대부로 추앙받는 정율성 선생 역시 광주 출신이며, 양림동 태생 정추 선생은 검은 머리 차이콥스키로 불리며 카자흐스탄 음악 교과서에 그의 작품이 60곡이나 실릴 정도로 천재 음악가로 명성이 높다.

이밖에도 국어 교과서에 여러 편의 시가 실린 김현승 시인이 광주에서 활동했으며, 미인도로 유명한 천경자 화백도 전남여고에서 교편을 잡았다. 무엇보다도 광주는 민주 열사들의 도시 아닌가?

이제부터라도 광주는 광주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관광지 조성에 힘써야 한다. 주어진 관광 자원을 활용한 투어 프로그램 기획에만 그치지 말고 과감한 재원 투자와 발상 전환으로 스토리가 남아 있는 곳에 관광지를 조성하는 방향으로 관광 정책을 바꿔야 한다. 광주의 이야기를 건축물과 조형물로 시각화하는 작업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광주시의 관광진흥과의 위상을 높일 필요가 있다. 관광 도시로 앞서가는 지역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관광 부서를 기관의 제1부서로 우대하고 있다.

관광도 사람이 하는 일, 광주 사람의 위대함을 이제는 관광 정책에서 볼 수 있기를 간절히 희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