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살배기 의붓아들의 손발을 묶고 각목으로 때려 사망케 한 사건, 성학대 사실을 신고한 의붓딸을 죽인 사건 등 2019년에는 잔인하고 충격적인 아동학대 사건이 많았다. 주 양육자에게 보호가 아닌 끔찍한 체벌을 받으며 고통스럽게 생을 마감한 우리 아이들을 보며,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근무하는 상담원으로서 미안함과 함께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발행한 ‘2018 아동학대 주요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2만4604건(73.4%)이 아동학대 사례로 판단됐다. 그중 성학대를 제외한 모든 학대 유형에서 부모에 의한 학대가 78.4%로 가장 높았다. 또한 ‘2017 전국아동학대현황보고서’에 의하면, 아동학대 사례 유형별 학대 행위자 특성 중 모든 학대 유형에서 ‘양육 태도 및 방법 부족’이 가장 높은 분포를 보였다. 이를 통해, 재학대 예방을 위해서는 지속적인 사례 관리와 함께 부모 교육이 필수적으로 수반되어야 함이 드러났다.

그러나 아동학대 현장에서 만나는 부모의 대부분은 “네가 아이를 키워봤냐” “네가 데려가서 키울 것 아니면 우리 가정사에 끼어들지 마라” 등 아동학대의 원인을 본인의 그릇된 양육관이 아닌 아동의 기질과 문제 행동으로 돌리며 합리화한다. 이런 부모를 만날 때면, 필자는 아동학대 인식 개선을 위한 과업이 아직도 많다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거부적인 학대 행위자 외에도 넘어야 할 벽은 많다. 아동복지법 제 45조에 따르면,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시군구에 1개소 이상 설치되어야 하나 현재 전국에 67개소(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제외)만 설치되어 있다. 이는 1개의 기관이 평균 3~4개의 지자체를 관할해야 함을 뜻한다. 전라남도의 경우 더욱 열악하다. 필자가 근무하는 전남서부권아동보호전문기관은 사례관리팀 소속 상담원 13명이 전라남도 내 서부권 일대 8개 관할 지역을 모두 담당한다. 평균적으로 상담원 1명당 약 60개의 사례를 담당하며, 이는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약 세 배 많은 수치다.

‘공공성 부재’도 현장에서는 큰 어려움이다. “너희가 경찰도 아닌데 왜 가정에 와서 조사를 하느냐”와 같은 학대 행위자의 비협조적인 대응에도 법적 절차와 같은 지원이 부재한데, 이는 아동보호전문기관이 국가가 아닌 민간에 위탁하는 체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공공성 강화를 위한 고무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지난 5월, 정부가 민간기관에서 수행해 오던 아동학대 조사 업무를 시군구로 이관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이번 정책은 앞으로 민간이 전문적 사례 관리에 집중할 수 있는 촉매제 역할을 톡톡히 수행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아동학대 체계의 변화를 위해서는 모두의 협조가 필요하다. 시민들은 아동학대에 꾸준히 관심을 갖고, 지자체는 유관기관과의 체계적 협력을 통해 아동 보호를 위한 사회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정부도 상담원 확충 및 아동보호전문기관 추가 설치 등을 통해 전문적 사례 관리가 가능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또한 추후 사례 관리 전담기관으로서 민간이 심리 상담 및 가족 기능 강화를 위한 전문서비스를 적극 적용하기 위해 아동보호전문기관의 보조금을 일반 회계로 전환하여 인프라를 확대해야 한다. 아동학대 예방 사업의 질적인 향상에 예산은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끊임없는 아동학대 발생으로 인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는 요즘, 아이들의 행복한 삶을 위해 어른들이 더욱 운동화 끈을 조여 매고 뛰어야 할 때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열심히 뛴 만큼 다가오는 2020년은 아이들이 살기에 더욱 안전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