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우리 서연(가명)이가 학교에 안 간답니다.”

4월 아이들을 만나 한 달이 될 무렵 아침에 내게 걸려온 서연이 아버님 전화였다. 치마를 사주기 전에는 학교를 가지 않겠다는 막무가내 떼씀이라고 한다. 평소 조용하고 소심해 보이긴 해도 곧잘 공부도 잘 하고 말도 잘 통하던 서연이가 그런 말을 하며 고집을 부리고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아버지 옆에서 아이의 큰 목소리가 울음까지 섞여 나온다.

“그게 아니라고! 그게 아니잖아!”

서연이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에 실직 상태였다. 베트남 어머니는 서연이를 낳고 아버님과 헤어졌다. 아이는 엄마의 얼굴도 모르고 아빠 손에 자랐다. 그런 상황에서 서연이 아버님이 최근 실직까지 당해 집안에 빈 소주병이 늘어난 것이다. 급기야 아이와 약속하기를 술을 계속 마시면 옷을 많이 사주기로 했다. 서연이가 학교를 가지 않겠다고 버틴 이유가 어린 마음에 옷을 갖고 싶어서가 아니었던 것이다.

“아버님 혹시 약주 하셨나요?”

“네…”

“서연이 전화 바꿔 주세요.”

전화 받기 싫다는 전화기 너머 아이 목소리에 그냥 스피커 폰으로 들려 달라고 했다.

“서연아! 선생님 네 마음 알아! 지금 너무 속상해서 그런 거지? 선생님이 네 이야기 들어줄게 지금 빨리 학교로 오렴! 그럼 선생님이 네 마음 들어줄 수 있어.”

등교한 아이는 울음 자국을 이리저리 지우고 이내 밝은 표정을 지어 보이려고 애쓴다. 교실 옆 상담실로 가서 조용히 아이를 안아주었다.

“많이 힘들었지? 괜찮아!”

진정이 된 후 아이 말을 들어보았다. 아빠가 술 드시면 어떤 것이 제일 힘드냐는 질문에 서연이는 말했다.

“아빠가 죽을까 봐 걱정돼요. 저 혼자 남을까 봐 무서워요.”

“선생님은 무조건 네 편이야. 아빠가 뭐라고 하셔도 선생님은 무조건 네 편이니 혹시 힘든 일 있으면 꼭 선생님한테 이야기해야 된다? 아빠도 선생님 말은 잘 들어 주실 거야. 그러니 걱정 하지마!”

서연이는 유난히 책을 좋아했다. 그런데 유독 혼자 책 읽는 모습을 자주 발견할 수 있었다. 서연이는 책을 읽는 행위 속에 자기만의 고민을 투영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광주 희망교실’ 활동을 통해 그런 서연이에게도 변화가 찾아왔다. 친구들과 함께 가방도 만들고, 영화도 보고, 맛있는 것도 먹으면서 표정도 밝아지고 활발해지는 모습이었다. 책도 친구들과 함께 읽으며 환하게 웃었다. 특히 지역 아동센터 선생님과 상담을 통해서도 많은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학교에서 보여지는 모습과 또 다른 아이의 모습을 통해 학습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정서적인 도움, 상담 활동까지 공유하고 알아가는 시간을 통해 서연이의 엄마 없는 자리가 조금은 채워지기를 내심 바랐다. 아이에게 마음의 상처가 생기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 해도 치유의 방법은 주변에서 함께 고민해 찾을 수 있다.

찬바람이 일찍 불어와도 서연이는 얇은 옷을 입고 등교를 한다. 멋 부리며 재잘거리고 엄마와 옷을 고르러 갈 나이이지만 서연이에게는 낯선 일이다. 그래서 올해 추석을 앞두고 서연이에게 어울릴 만한 예쁜 가을 원피스와 조끼를 골랐다. 아무 말 없이 수줍게 받아 들더니 어느 아침 고운 가을빛의 조끼를 입고 등교한 아이의 모습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아버님에게 반가운 소식을 받았다.

“선생님! 예쁜 옷도 사주시고 여러 가지로 관심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이제 일 시작합니다. 감사합니다.”

늘 속으로 바란다. 서연이는 아직 엄마가 그립고, 아빠와 단 둘이 지내는 것이 쉽지 않은 나이다. 그래도 서연이가 아빠를 염려하고 생각하는 그 따뜻한 마음 잘 간직하고 예쁘게 자랐으면 좋겠다.

‘서연아, 기억하렴. 선생님은 항상 네 편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