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1일은 농업인들의 긍지와 자부심을 고취시키고, 농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위하여 정부가 정한 제24회 ‘농업인의 날’이었다.

하지만 주인공인 농업인들은 현재 그다지 행복하지만은 않는 듯 보인다. 올해 마늘·양파 가격 폭락과 아프리카 돼지열병(ASF) 발병은 물론 사상 유례 없는 세 차례 태풍으로 쌀을 비롯한 많은 농산물의 생산량이 평년치를 훨씬 밑돌고 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지난달 정부에서는 세계무역기구(WTO)에서의 개발 도상국 지위를 사실상 포기했다. 아울러 관세 장벽 철폐를 목표로 하는 일종의 자유무역협정(FTA)인 역내 포괄적 경제 동반자 협정(RCEP)에 서명을 추진하기로 하였다.

지난해 농가 소득이 최초로 4207만 원에 이르러 모처럼 희망적이었지만, 작금의 상황은 농업·농촌에 대한 우울한 분위기를 지울 수가 없는 듯 보인다.

세계적인 추세이기는 하나 90년대 초부터 시작된 우루과이라운드(UR) 이후, 세계무역기구(WTO) 출범과 이어지는 다자간협상(DDA), 최근 농업이 비교 우위에 있는 세계 여러 나라들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은 우리의 농업과 농촌을 뿌리째 흔들고 있는 게 현실이다.

특히 한미·한중 FTA는 농업과 농업인들이 수많은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중 FTA 체결 당시 농어촌 상생 기금을 매년 1000억 원씩 10년간 1조 원을 조성하여 농업·농촌에 지원하고자 계획하였으나, 사실 강제 규정이 없는 탓에 이제 겨우 549억 원이 조성되어, 목표 대비 18%에 그치고 있다.

이번 WTO 개도국 지위 포기에 대해 많은 농업 단체들이 철회를 요구하며 연일 대규모 시위를 벌이고 있다. 정부는 개도국 지위를 포기함으로써 당장 농업 분야에 영향이 없다고 하지만 대다수 전문가들은 향후 타결될 협상을 통해서 엄청난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즉, 우리 농업이 선진국으로 분류될 경우 쌀 관세율은 현행 513%에서 154%(일반 품목)로 낮아지고, 양념 채소류의 타격도 클 수밖에 없으며, 현재 대부분 쌀 변동 직불금으로 쓰이고 있는 감축 대상 보조금인 농업 보조금 총액(AMS)의 한도 역시 연간 1조 4900억 원에서 절반 이하로 줄게 된다는 것이다.

협상 역시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정부가 농업인과 농업 관련 단체의 의견 수렴을 통해 종합 대책을 수립하여 피해가 없도록 하겠다고 발표했으나 그 전에 피해가 예상되는 부분에 대한 대책 마련이 우선되었어야 했다.

농협 조합장들로 구성된 ‘농정통상위원회’에서도 정부와 국회에 농업 분야 예산을 국가 전체 예산의 4% 이상으로 확대하고, WTO 차기 농업 협상에서 농업 보조금의 대폭적인 감축이 불가피한 만큼 공익형 직불제 등 WTO가 허용하는 보조 정책을 확대하도록 건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또한 현재 우리나라 농업 예산 가운데 18% 수준인 직불제 예산을 단기적으로는 3조 원 이상, 점진적으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5조 원 수준으로 확충하고, 스위스와 같은 선진국에서 농업의 공익적 기능과 국가의 책무를 헌법에 명시한 것처럼 우리도 헌법에 명시할 것 등을 건의하였다.

농산물 시장의 빗장을 열어젖힐 때마다 정부는 농업 피해 보전과 최소화를 약속했지만, 농업인이 만족할 만한 대책과 보상이 없었던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농업·농촌이 더 이상 희생양이 되는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농업 분야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종합 대책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