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롱나무 꽃그늘에서의 독서 - 김대중 전 대통령 부부를 기억하며
2019년 09월 23일(월) 04:50 가가
[정범종 소설가]
나는 예전에 이사를 자주 했는데 이런 광경을 원했다.
이사를 한다. 트럭은 두 대이다. 뒤의 트럭에는 잡다한 이삿짐이 실려 있다. 앞의 트럭에는 딱 한 가지만 싣는다. 그것은 책이다. 책을 실은 트럭이 이사 갈 때 선두에 간다. 우리 가족은 이사한 집에다 맨 처음 책을 옮겨 놓을 것이다.
젊은 시절에 나는 광주에서 살면서 아내와 함께 집을 마련하기까지 여러 번 이사했다. 그때마다 트럭 한 대에는 책만 싣고 가고 싶었다. 작은 트럭이 아니라 8톤 정도 되는 대형 트럭이다. 그런데 내 책은 대형 트럭 한 대 분이 되지 않았다. 책이 수천 권에 이르렀지만 이 정도로는 1톤 트럭에다 실어도 됐다.
중년에 이르러서도 광주에 살았는데, 많은 이들이 김대중 대통령을 자주 들먹였다. 실제 만났다는 이들도 드물지 않았다. 나는 그분을 만나기보다는 그분의 책을 보고 싶었다.
김대중 도서관이 서울 신촌에 서게 됐다. 나는 서울로 가서 김대중 도서관을 찾았다. 사람들은 그 도서관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옥중에서 필기구가 없어서 못으로 종이에다 점을 찍어서 쓴 편지가 감동적이라고 한다. 나도 물론 그 편지를 오래 보았지만 내가 그보다 더 오래 본 건 그 많은 책들이었다.
나는 중얼거렸다. ‘이 양반은 이사할 때 책을 실은 트럭이 맨 앞에서 달려갔겠구나. 한 대도 아니고 서너 대가!’
부러웠다. 그리고 존경스러웠다.
그 존경스러운 분과 굳이 만나려고 하지는 않았다. 나는 그분의 책을 읽었고 그래서 그분을 만난 것으로 여겼다. 그런 만남을 이어가는 동안 그분은 멀리 떠났다. 나는 그분이 생각나면 책을 꺼냈다.
작년에 서울에 갔다가 시간을 내서 장충공원의 김구 선생 묘역에 들렀다. 김구 선생은 내 고향인 보성군 득량면에서 젊은 시절에 머물렀던 적이 있어서 나는 김구 선생을 동향인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김구 선생 묘역에서 소나무 너머로 남산을 보면 그 풍광이 좋다.
김대중 대통령 묘에도 가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분의 분향소를 찾은 적은 있었지만 묘에는 가본 적이 없었다.
당장 동작동 국립현충원으로 갔다. 정치가들이 무슨 일이 있으면 화환을 들고 찾는, 그래서 텔레비전에 가끔 나오는 맨 앞의 현충탑은 한산했다. 이렇게 한산해도 되나, 하는 맘이 들 정도로.
나는 현충탑 앞에서 분향을 하고 묵념도 했다. 그러고 나서 김대중 대통령 묘소로 향했다.
서울의 국립현충원에는 대통령의 묘가 넷 있다. 그런데 김대중 대통령의 묘와 다른 세 대통령의 묘는 다르다. 다른 세 명은 묘 앞에 직선으로 길이 나 있고 그 끝에 층계가 있다. 그러니까 참배객은 직선으로 된 길을 가다가 계단을 타고 오르는 것이다. 한마디로 세 묘는 권위적이다. 김대중 대통령 묘는 언덕 비슷한 데에 자리하고 있는데 옆-좌측에서 그 묘로 가는 길이 나 있다. 묘를 정면으로 보고 다가가는 게 아니라 옆길을 따라가다 보면 묘에 이른다. 권위적이지 않다.
나는 그 묘역에서 김대중 대통령만이 아니라 이희호 여사를 떠올렸다. 민주화투쟁을 할 때 이희호 여사는 펌 머리로 지냈다. 당시에는 ‘파마머리’라고 했는데 한국 여느 아줌마의 흔해 빠진 머리 스타일이었다. 그런 스타일로 이희호 여사가 머리를 한 이유는 그게 별로 손질하지 않아도 되기에 그랬다고 들었다. 역시나 권위적이지 않다.
김대중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를 생각하며 묘역을 둘러보니 배롱나무가 있었다. 꽃을 피우고 있었다. 반가웠다.
나만이 아니라 전라도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배롱나무를 반가워하리라. 여름에 전라도 곳곳에서 꽃을 피우는 게 이 나무이니까.
한여름의 뙤약볕을 견디어내며 가을 결실까지 계속 피는 이 꽃을 보면 불굴의 의지로 살아간 전라도 사람들을 떠올리게 된다.
나는 배롱나무를 어루만졌다. 나무는 내 키보다 조금 더 커서 권위적이지 않았다. 꽃은 붉어서 불굴의 의지를 내가 떠올리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올해 이희호 여사는 김대중 대통령 옆으로 갔다. 그 묘역에 지금 배롱나무꽃이 피어 있으리라.
나는 요즘 여행을 가끔 하는데 이런 광경을 원한다. 여행을 떠난다. 가족이 가는 여행이다. 우리의 배낭에는 책이 들어 있다. 우리가 가는 길에는 딱 한 가지 꽃이 피어 있다. 그것은 배롱나무꽃이다. 남도의 이 꽃이 여행하는 우리의 앞길을 밝힌다. 우리 가족은 배롱나무 꽃그늘에서 책을 읽을 것이다.
이사를 한다. 트럭은 두 대이다. 뒤의 트럭에는 잡다한 이삿짐이 실려 있다. 앞의 트럭에는 딱 한 가지만 싣는다. 그것은 책이다. 책을 실은 트럭이 이사 갈 때 선두에 간다. 우리 가족은 이사한 집에다 맨 처음 책을 옮겨 놓을 것이다.
젊은 시절에 나는 광주에서 살면서 아내와 함께 집을 마련하기까지 여러 번 이사했다. 그때마다 트럭 한 대에는 책만 싣고 가고 싶었다. 작은 트럭이 아니라 8톤 정도 되는 대형 트럭이다. 그런데 내 책은 대형 트럭 한 대 분이 되지 않았다. 책이 수천 권에 이르렀지만 이 정도로는 1톤 트럭에다 실어도 됐다.
김대중 도서관이 서울 신촌에 서게 됐다. 나는 서울로 가서 김대중 도서관을 찾았다. 사람들은 그 도서관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옥중에서 필기구가 없어서 못으로 종이에다 점을 찍어서 쓴 편지가 감동적이라고 한다. 나도 물론 그 편지를 오래 보았지만 내가 그보다 더 오래 본 건 그 많은 책들이었다.
부러웠다. 그리고 존경스러웠다.
그 존경스러운 분과 굳이 만나려고 하지는 않았다. 나는 그분의 책을 읽었고 그래서 그분을 만난 것으로 여겼다. 그런 만남을 이어가는 동안 그분은 멀리 떠났다. 나는 그분이 생각나면 책을 꺼냈다.
김구 선생 묘역에서 소나무 너머로 남산을 보면 그 풍광이 좋다.
김대중 대통령 묘에도 가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분의 분향소를 찾은 적은 있었지만 묘에는 가본 적이 없었다.
당장 동작동 국립현충원으로 갔다. 정치가들이 무슨 일이 있으면 화환을 들고 찾는, 그래서 텔레비전에 가끔 나오는 맨 앞의 현충탑은 한산했다. 이렇게 한산해도 되나, 하는 맘이 들 정도로.
나는 현충탑 앞에서 분향을 하고 묵념도 했다. 그러고 나서 김대중 대통령 묘소로 향했다.
서울의 국립현충원에는 대통령의 묘가 넷 있다. 그런데 김대중 대통령의 묘와 다른 세 대통령의 묘는 다르다. 다른 세 명은 묘 앞에 직선으로 길이 나 있고 그 끝에 층계가 있다. 그러니까 참배객은 직선으로 된 길을 가다가 계단을 타고 오르는 것이다. 한마디로 세 묘는 권위적이다. 김대중 대통령 묘는 언덕 비슷한 데에 자리하고 있는데 옆-좌측에서 그 묘로 가는 길이 나 있다. 묘를 정면으로 보고 다가가는 게 아니라 옆길을 따라가다 보면 묘에 이른다. 권위적이지 않다.
나는 그 묘역에서 김대중 대통령만이 아니라 이희호 여사를 떠올렸다. 민주화투쟁을 할 때 이희호 여사는 펌 머리로 지냈다. 당시에는 ‘파마머리’라고 했는데 한국 여느 아줌마의 흔해 빠진 머리 스타일이었다. 그런 스타일로 이희호 여사가 머리를 한 이유는 그게 별로 손질하지 않아도 되기에 그랬다고 들었다. 역시나 권위적이지 않다.
김대중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를 생각하며 묘역을 둘러보니 배롱나무가 있었다. 꽃을 피우고 있었다. 반가웠다.
나만이 아니라 전라도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배롱나무를 반가워하리라. 여름에 전라도 곳곳에서 꽃을 피우는 게 이 나무이니까.
한여름의 뙤약볕을 견디어내며 가을 결실까지 계속 피는 이 꽃을 보면 불굴의 의지로 살아간 전라도 사람들을 떠올리게 된다.
나는 배롱나무를 어루만졌다. 나무는 내 키보다 조금 더 커서 권위적이지 않았다. 꽃은 붉어서 불굴의 의지를 내가 떠올리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올해 이희호 여사는 김대중 대통령 옆으로 갔다. 그 묘역에 지금 배롱나무꽃이 피어 있으리라.
나는 요즘 여행을 가끔 하는데 이런 광경을 원한다. 여행을 떠난다. 가족이 가는 여행이다. 우리의 배낭에는 책이 들어 있다. 우리가 가는 길에는 딱 한 가지 꽃이 피어 있다. 그것은 배롱나무꽃이다. 남도의 이 꽃이 여행하는 우리의 앞길을 밝힌다. 우리 가족은 배롱나무 꽃그늘에서 책을 읽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