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두서 작 ‘나물캐는여인’(윤씨가보)

중요민속문화재 323호 윤두서고택-안채.

그의 작품 ‘자화상’을 보고 있으면 놀라게 된다. 마치 살아 있는 인물을 마주보고 있는 듯한 느낌 때문이다. 외경감이라고나 할까. 그림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는 여느 화가의 작품들과는 결이 다르다.

공재(恭齋) 윤두서(1668~1715). 국보 240호로 지정된 그의 자화상은 우리나라 회화사의 걸작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숨 막힐 정도로 세밀한 묘사와 예리한 눈빛은 생생하면서도 입체적이다. 화폭에 가득한 얼굴과 이에 대비되는 가느다란 수염이 만들어낸 효과다.

공재가 바라보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의 눈빛이 향하는 것은 비단 외부만이 아니다. 바깥만을 응시한다면 그의 눈빛에는 일말의 감성이 깃들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무심하면서도 깊이가 느껴지는 눈빛은 고스란히 내면으로 향해 있다는 사실을, 그림을 보는 이들은 어느 순간 알게 된다. 그만큼 자화상의 눈빛은 강렬하다. 꿰뚫어보는 눈빛이 이편의 내면에 닿아 묘한 자장을 일으키는데, 우리에게도 스스로를 성찰하라는 겸허와 강직의 가르침으로 다가온다.

공재 윤두서는 조선의 대표적인 문인화가다. 겸재(謙齋) 정선, 현재(玄齋) 심사정과 함께 조선 후기 삼재(三齋) 화가로 일컬어진다. 미술계에서는 극사실주의, 구도의 파격 등으로 그의 자화상을 당대 화풍과 변별되는 수작으로 평가한다. 그 뿐인가. 풍속화, 문인화, 산수화를 두루 섭렵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의 예술이 점하는 자리는 남다르다. 또 하나 공재의 아들(덕희)과 손자(용)도 화업의 길로 들어서, 3대에 걸쳐 화가 명문가를 이루었으니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을 새삼 일깨워준다.

혹자들은 윤두서의 자화상에서 삼국지의 장비를 떠올리기도 한다. 위로 치켜 올라간 눈꼬리와 눈썹에서 강직한 장군의 얼굴을 연상하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한일 자로 굳게 다문 입술과 뭉뚝해 보이는 코는 선비의 모습보다는 절의로 가득한 장군의 모습을 닮았다.

해남군 현산면 백포마을. 공재의 고택이 있는 마을이다. 그를 만나러 가는 길, 아니 그의 고택을 찾아 가는 길이다. 태풍 솔릭이 북상하고 있으니 안전에 유의하라는 문자가 시시각각 전해온다. 태풍의 영향권에 접어든 남도는 긴장감에 휩싸여 있다. 빗줄기가 오락가락 하는 중에도 가느다란 햇볕이 구름 사이로 살짝살짝 모습을 드러낸다.

지난 여름 사상 최악의 폭염으로 남도를 비롯한 우리나라 전역이 내내 가물었다. 비 한방울 떨어지지 않는 날이 지속되었고, 푸른 산하는 하얗게 타들어갔다. 비가 절실한 때라 큰 피해 없이 태풍이 지나가기만을 바라며 남으로, 남으로 달려간다. 습한 기온 탓에 가는 길은 여전히 숨이 턱턱 막힌다. 머잖은 장래엔 이런 폭염이 일상화될 것이라는데, 적잖은 걱정에 발길이 무겁다.

공재가 고산 윤선도의 증손자이며 다산 정약용의 외증조부라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왕대밭에서 왕대난다’는 말이 이런 경우를 이르는 말인 것도 같다. 공재를 둘러싼 가계는 명문가의 요건을 두루 갖췄으니 말이다. 학문, 인품, 영향력 그리고 노블리스 오블리제 등 어느 하나도 빠지지 않는다. 선대가 어떤 삶을 살았느냐는 후대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조선의 유교중심 가부장적 사회에서는 가히 절대적이었을 것이다.

공재의 가계는 벼슬과는 다소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오해하지 마시라. 학문이 깊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니. 출사를 한 이후의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는 뜻이다. 윤두서 또한 자신은 물론 선대와 후대 모두가 사색당쟁 탓에 온전히 뜻을 펼치지 못했다.

잠시 공재의 간략한 삶의 이력을 좇아보자. 본관은 해남이며 자는 효언(孝彦), 호는 공재(恭齋)다. 15세에 전주 이씨와 결혼한다. 윤두서는 1693년(숙종19) 과거에 급제했지만 벼슬할 기회가 없었다. 당시는 노론이 득세하던 시절이라 해남 윤씨 집안이 속한 남인 계열은 사실상 ‘은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당쟁의 격화로 유배 중인 공재의 셋째 형 윤종서가 사망하고 설상가상으로 장인과 큰 형 윤창서까지 역모혐의를 받는다.

공재는 권력의 허망함과 가혹함을 뼈저리게 느낀다. 자칫 가문이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할 수 있다는 위기를 감지한다. 벼슬을 포기하고 낙향하게 된 것은 그 때문이다. 그의 나이 46세 되던 해 종택인 해남 녹우당으로 귀향 후, 얼마 있어 이곳 백포리에 은거한다.

청우제. 그의 고택(중요민속문화재 323호) 당호다. 초록비가 내린다는 뜻이다. ‘초록’이라는 어감에서 시원함이 느껴진다. 윤선도 기념관의 녹우당과 같은 의미인데 보다 맑고 투명한 빗소리로 다가온다. 그의 고택 툇마루에 앉아 가만히 옛 시대를 가늠해본다. ㄷ자형 양반가옥이 발현하는 고풍과 위엄은 여전하다. 수백 년의 시간이 흘러 다정함으로 다가오지만, 집에 깃든 정신은 여일하여 예술혼이 곳곳에 스며 있을 것이다. 350년의 역사를 지닌 고택은 한때 48칸에 이르렀다고 하나 지금은 안채 13칸과 곳간채 3칸 등이 남아 있다.

이곳 고택은 고산 윤선도가 큰아들을 분가시키고 자신이 살기 위해 지었다. 그러나 바닷바람이 심해 거처를 옮겨 증손인 윤두서가 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능통(能通)이라는 현판도 보인다. 아마도 가장 적확한 말이 아닐까 싶다. 그림뿐 서화, 천문과 지리, 수학 등에 능했던 ‘팔방미인’ 공재를 상징하는 단어다. 아마도 공재는 오늘날로 치면 통섭학자에 해당할 것 같다. 다양한 분야를 엮어 자신의 것으로 체화해내는 능력이 남달랐으니 말이다.

해남 윤씨 가의 ‘당악문헌’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그는 모두 널리 꿰뚫고 그 극치를 추구하였고, 백가의 뭇 기술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 원리와 응용을 연구하였으며, 천문은 각 지방을 두루 답사하고 밤마다 돌아다니며 관찰하여 천체의 이동현상을 살피었고 천문을 측량하고 땅을 재는 법을 경험적으로 증명하였다. 세상에 전해오는 병서를 보지 않은 것이 없었으며 패관소설도 모두 읽어 지식을 넓히는 데 도움을 얻었고 또 중국의 지도와 우리나라 지리서의 내용을 모두 간파하고 있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