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호남지-제3부 토종과 자연이 빚은 향토사] ③ ‘자연·역사·문화’의 재발견과 亞문화수도
2017년 04월 04일(화) 00:00
보트 타고 노닐던 경양방죽 … 문화수도 콘텐츠로 복원 어떨까

광주시 동구 계림동 옛 광주시청 일대에 자리잡았던 인공 호수 경양방죽은 도시인들이 보트를 타고 노를 저으며 잠시나마 일상의 찌든 때를 씻어낼 수 있는 휴식처였다. 1440년 세종이 김방을 시켜 3년 만에 완공했다고 전해지지만 확실하지 않다. 1930년대 중반에 1차 매립 공사를 진행했고, 1960년대 말에 방죽 옆에 있던 신안동의 태봉산을 모조리 헐어서 조달한 흙으로 2차 매립했다. 이 바람에 방죽과 태봉산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요즘 아시아문화중심도시의 조성 콘텐츠에 대해서 많은 얘기가 나오고 있다. ‘최순실 예산’ 때문에 콘텐츠 예산이 없어서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예산이 있더라도 콘텐츠 구축에 대해서 ‘전통유산에 대한 재발견, 재구성, 재창조’ 인식, 사유, 접근 자체가 아예 없다는 것까지 다양한 언급과 지적이 뒤따르고 있다.

우리의 전통유산 속에서 아시아적이면서도 한국적인 콘텐츠를 어떻게 재발견하고 재구성하며 재창조하느냐가 관건이라 하겠다. 그렇다면, 우리의 전통유산 가운데 ‘경양방죽’도 아시아적이면서도 한국적인 콘텐츠를 갖고 있는 훌륭한 전통유산이다.

경양방죽은 삼국시대에 견훤의 후백제 건국과 관련 축조돼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개축과 보수를 거듭했다. 특히 조선시대 세종시기에 대대적으로 개축된 역사적으로 유구한 세월을 거쳐온 유구한 전통유산이었다. 세종과 김방이 개축한 경양방죽은 관개용, 홍수대비용 등의 저수지로서 기능했고 조선시대 내내 자연·역사·문화가 어우러진 대표적인 전통자산이었다.

경양방죽은 과거 지도에는 엄연하게 표기돼있던 실제의 전통유산이었지만 현재는 글, 지도와 사진 등과 같은 기록자료로만 전해지는 역사유적이다. 오늘날 광주 시민들이 눈으로 볼 수 있는 경양방죽의 실체는 사라지고 없다. 일제가 식민지에 대한 지배 차원에서 역사와 지도상에서 경양방죽의 3분의 2를 없애버리고 그 나머지 3분의 1은 박정희 정권이 개발독재라는 미명 하에 지워버렸기 때문이다.

경양방죽에 대한 기록자료는 여러 가지 형태로 전해져왔다. 전설, 마을설화, 고문헌, 고지도, 고시가 등과 같은 사료 형태였다. 이런 사료들은 경양방죽을 재발견하고 재구성하며 재창조하는 원천자료다.

전설, 마을 설화, 고문헌, 고지도, 고시가 등과 같은 이런 사료들은 경양방죽의 자연유산, 역사유산, 문화유산을 어떤 경우에는 드러내지 않고 숨겨두기도 하였고 어떤 다른 경우에는 숨기지 않고 드러내기도 해왔다. 그러나 이들 사료는 직접 드러내기도 하지만 드러내더라도 왜곡하거나 편파적이거나 신뢰하기 곤란할 수도 있다. 나아가 사료는 아예 직접 드러내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런 사료들을 온전한 사료로 바꾸는 것이 사료비판이다.

경양방죽에 대한 사료는 일찍부터 있었지만 사료비판을 제대로 거치지 않은 경우가 있었다. 경양방죽의 축조시대와 축조자와 같은 매우 중요한 것에 대해서 사료비판을 거치지 않음으로써 개축시대가 축조시대로 왜곡되었고 개축자가 축조자로 변신해버렸다.

사료비판을 하더라도 사실을 밝히는데 필요한 사료가 누락돼서는 안 되는데 지금까지 경양방죽에 관한 연구와 서술에서는 자세한 사료들을 포괄하지 않았다. 경양방죽이 전국의 다른 중요한 저수지와 마찬가지로 고대에 축조되었다는 사료, 견훤의 정치세력 확장과 연관된 축조자 전설과 같은 사료들이 도외시되었다.

전설은 외피상으로는 사실과 무관한 허구일 수도 있지만 양파 껍질 벗기듯이 하면 사실관계에 이를 수 있다. 지역의 전설들은 광주, 전남, 전북, 충남, 충북과 같이 서로 다른 지역에 분포해 있기 때문에 상호 무관한 것으로 간주할 수도 있지만 왕조의 쇠퇴기에 새로운 정치세력의 등장과 발전이나 사회경제적 모순의 해소과정에 연관되어 지역적으로 떨어져 있는 전설들이 유기적으로 묶일 수 있다.

경양방죽은 규모상으로 원래 면적 6만5418평(216,259㎡))이었는데 이는 현재 광주 풍암지구에 있는 풍암지의 규모였다. 경양방죽은 광주가 대도시로 성장하기 이전에 우리나라 지방도시 호수로서는 유례가 없을 정도로 컸다는 점이다.

경양방죽은 이 자체만으로도 전통유산의 가치가 충분히 있었는데, 게다가 경양숲, 무등산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선사하는 장대한 자연경관이었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호남의 대표적인 자연경관이었다고 할 수 있다.

광주가 남도의 근대화, 도시화 중심축으로 성장할수록 경양방죽의 전통유산 가치는 커질 수밖에 없다. 광주는 다른 지역 거점도시와 마찬가지로 인구증대, 거대화, 속도전과 경쟁, 슬럼화, 아스팔트와 아파트 등과 같은 근대화, 도시화의 과정에서 인문학적 위기와 전통단절의 폐단에 직면하고 있다.

광주 시민들이 이러한 위기와 폐단 앞에서 무방비한 상태로 노출되어 있으면 그들은 인문학적 사유도 잃어버리고 전통유산도 알지 못하는 국적 불명의 왜소한 시민이 될 뿐이다.

그러나 시민들이 경양방죽, 경양숲, 무등산이 어우러진 장대한 자연경관의 품에서 자연을 외경하고 자연과 인간의 공존화법을 배우고 자연 속의 예도문화, 풍류문화를 접하고 향유하고 체험하면 삶은 더 풍부해질 것다.

또 자연이 연출하는 장대한 자연경관 앞에서 시민들은 스스로 인문학적 사유를 할 수 있고 전통의식을 체화해 갈 수 있다. 경양방죽의 맑은 물, 맑은 바닥에 울창한 경양숲, 게다가 장엄한 무등산이 어우러진 장대한 자연경관 앞에서, 그러한 자연경관 속에서 광주 시민들은 생태힐링, 슬로우 체험, 예도문화 향유, 의향계승, 공동체의식 공유 등 인문학적 사유를 풍부하게 할 수 있고 전통의식을 다양하게 체화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경양방죽의 자연경관적, 인문학적, 전통계승적 가치는 오히려 그것을 없애버린 이후에 더욱 소중한 것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오늘날 광주시가 대도시로 발전한 과정에서 광주천이나 영산강이 과거의 위상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에 산과 인위적인 공간이 지나치게 많고 이에 비해 물과 자연적인 공간이 지나치게 부족한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특히 아시아문화전당을 중심으로 한 광주 도심권은 물과 숲이 없는 대표적인 인공도시 민낯을 보여주고 있다. 경양방죽의 모습은 1967년에 완전히 사라졌지만 고문헌, 고지도, 시가에는 아직 그 정취가 스며들어 있다. 이처럼 시민드의 정서와 마음속에 남아 있는 경양방죽을 복원한다면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을 앞당기고, 윤택하게 할 수 있는 뛰어는 소프트웨에다.

경양방죽은 단순한 호수가 아니라 우리들과 500여년 간 생사고락을 함께 해온 호남의 역사적인 유산이다.



*조성식 한국학진흥원설립추진위 기획협력처장

▲ 광주문화도시협 前 사무처장, 現 집행위원

▲ ‘사드철회, 성지수호’ 원불교대책위 광주전남교구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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