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 휴업’(Temporary Close). 영화관 셔터가 내려가고 절름발이 매표원은 붉은 우산을 쓰고 쏟아지는 빗속을 걷는다. 멀리 어렴풋이 보이는 영화 간판 ‘용문객잔’. 영화 ‘안녕, 용문객잔’은 그렇게 막을 내린다.

‘애정만세’로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대만의 차이밍량(57) 감독이 25일 광주극장을 찾았다. 30일까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아시아예술극장이 진행하는 윈터스쿨 참여차 광주를 방문한 차이밍량은 이날 대표작 ‘안녕, 용문객잔’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를 가졌다.

‘안녕, 용문객잔’은 내일이면 문을 닫는 낡고 오래된 극장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영화관에 대한 헌사’로 불리는 작품이다. 영화팬들 사이에서는 영화 속 ‘복화극장’과 비슷한 광주극장에서 관람하는 걸 고대했던 영화이기도 하다.

시네필들이 사랑하는 작가답게 이날 극장에는 차이밍량 감독을 보기 위해 서울에서 일부러 내려온 이들도 눈에 띄었다. “차이밍량과 함께 ‘안녕, 용문객잔’을 본 오늘은 죽기전까지 잊지 못할 순간이다.” “10년 전 당신의 대표작 ‘애정만세’를 보고 펑펑 울었던 나의 오래된 영화 친구를 내가 사는 광주에서 만나 영광이다.”

그에 대한 헌사가 넘쳐났다. 지난해 ‘안녕, 용문객잔’을 보고 광주극장을 앵글에 담는 작업을 진행중인 전주의 사진작가 김지연씨는 차이밍량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느라 바빴다.

차이밍량 감독은 간판실 등 영화관 곳곳을 둘러보며 공간에 깊은 애정을 표현했다. 차이밍량은 9월 아시아예술극장 개관 작품에 참여한다. 광주극장에 깊은 인상을 받은 그는 예술극장 측에 이 극장에서 개관작과 연계된 프로젝트를 진행하겠다고 적극적으로 밝혔다.

“광주극장을 방문한 오늘은 너무 특별한 하루였다. 극장 분위기가 익숙한 느낌이었다. 신기했다. 지금보다 관객들이 줄어들면 이 극장도 언젠가 없어지지 않을까. 여러분들도 더 자주 방문해 달라. 지지하는 차원에서 이곳에 들러달라. 오늘을 살아가면서 내일을 예기치 못하는 게 인생이다. 내일이면 이 영화관이 사라질지도 모르는 불길한 시대에 살고 있다. 이처럼 멋진 영화관이 사라지지 않고 오래 지속됐으면 좋겠다.”

이날 관객과의 대화는 30분 정도 예정됐지만 질문이 이어져 1시간 30분간 계속됐다. 영화를 바라보는 시선 등 다양한 질문이 오고갔다.

“요즘에는 영화가 하나의 소비나 오락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관에서 티켓을 살 때 사람들은 내가 원하는 것을 얻고 싶어한다. 좋아하는 스타를 만나거나, 스토리를 접하거나, 감동을 얻는 것 등이다. 영화 자체에 대해 생각하는 이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영화는 오락 산업이 되고, 자유로운 창작물을 만드는 것은 점점 어려워진다.”

그는 50대 프랑스 여기자와 18세 대만 청년의 이야기를 통해 영화를 관람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인터뷰 중 여기자가 요즘 영화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움직이는 것같다는 말을 했다. 내가 책장을 넘기지 않는데 누군가 책장을 넘겨주는 기분이라고 하더라. 수많은 영화를 봤지만, ‘안녕, 용문객잔’을 보고 영화 자체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고도 했다. 지속적인 롱테이크가 주변의 작은 소리에 귀 기울이고, 생각을 하게 해준다는 말이었다. 몇년후 할리우드 영화만 봤고, 대만영화는 처음이라는 청년에게도 비슷한 말을 들었다. 이번에 처음으로 색깔 있는 영화를 봤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밥솥에서 김나는 소리, 비오는 소리 등 아주 작은 소리까지 속속들이 느낄 수 있었다는 말이었다. 영화를 관람한 경험도 너무 다르고 멀리 떨어져 있는 두 사람이 느끼는 것이 같다는 게 신기했다.”

차이밍량은 아시아예술극장에 올릴 작품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이번에 공연하는 작품은 무대극이자, 전시극이기도 하다. 지속적으로 작업하고 있는 ‘행자 시리즈’로 한 사람이 천천히 걷는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광주극장과 연계해서도 프로그램을 진행할 계획이다.”

그는 ‘안녕, 용문객잔’을 찍게 된 스토리도 들려줬다.

“낡고 오래된, 시간을 견뎌온 공간은 소중하지만 점점 사라지는 추세다. 스무살 때 고향 말레이시아를 떠난 후 3년 정도 지나 돌아갔을 때 극장이 거의 사라지고 없었다. 다른 매체들이 많이 생겼으니 폐쇄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한데 마흔살 때 고향의 그 극장같은 영화관을 꿈에서 봤다. 이 영화관이 끊임없이 나를 찍으라고 곧 없어질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하는 것같았다. 그제서야 기억하지 못했던 많은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래서 찍게 된 게 ‘안녕, 용문객잔’이었다. 영화 속 극장은 영화를 찍은 얼마 후 폐관됐다. 당시 문을 닫은 영화관 의자 100개를 지금 내가 가지고 있다.”

차이밍량은 광주극장에 덕담도 건넸다.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났다. 극장에서 또 다른 극장의 영화를 바라보는 것, 참 흥미있는 일이다. 영화 속 극장과 비슷한 이 영화관이 ‘안녕 용문객잔’을 정기적으로 상영하는 특별한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 광주 지역을 여행하는 이들의 패키지에도 넣으면 어떨까. 전 세계 오래된 영화관이 동시에 ‘안녕 용문객잔’을 상영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그의 말이 끝나자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다.

/김미은기자 mekim@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