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상 가을에 접어 든지 오래지만 늦더위가 계속되고 있다. 쌍시옷자 모양을 한 진도대교를 거쳐 지산면으로 향하는 내내 눈에 띄는 배추밭에서는 스프링클러가 빙빙 돌아가며 시원스럽게 연신 물을 쏘아 댔다.

여름내내 흐리고, 비 오는 날이 계속돼 일조량이 부족해 작물 작황이 나빴는데 이제는 상황이 뒤집혔다. 9월 땡볕은 고맙지만 대신 너무 가물다. 인간에게도 좋고, 작물에도 좋은 중용의 날씨는 기대하기 어려울까?

◇전국에서 손꼽는 낙조 명소= 이번 걷기여행은 진도군 지산면 급치산 전망대에서 세방낙조 전망대 구간으로 잡았다. 두 곳은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해넘이 명소이다. 도상 거리상으로는 약 4.5㎞, 두 시간이 채 안 걸릴 거리다.

급치산은 진도 서남쪽 바닷가에 위치한 높이 221m의 낮은 산이다. 하지만 급치산 정상 못 미쳐 자리한 전망대에 오르면 일망무제(一望無際)… 가릴 것 한점 없는, 다도해 풍경이 눈앞에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전망대까지는 도로가 잘 닦여져 있어 접근하기 쉽다.

급치산 전망대에서 첫발을 내디딘 후 1.3㎞가량의 산길을 따라 내려와 다시 찻길로 700여m를 가면 세포리 버스정류장에 닿는다. 일몰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어 이색적인 이름의 마을로 내려섰다.

세포마을은 한자로 식물 細胞나 옷감 細布가 아닌 細浦로 표기한다. 가는 포구? 마을 명칭 유래는 급치산 전망대에서 이곳에 눈길을 돌리면 금세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손가락 사이처럼 포구 폭은 130∼140m지만 바다에서 600여m를 깊숙이 들어왔다. 오후에 찾은 세포항은 배 7척 가량이 떠있을 뿐 한가했다. 부두에는 하얀 밧줄들이 군데군데 놓여져 있었는데 톳 양식을 위한 것이라 한다. 11∼12월에 톳 포자를 밧줄에 끼워 양식해 이듬해 6∼7월 수확한다.

특히 이곳은 조류(潮流)가 빠른 곳에 낭장망(囊長網)을 설치해 멸치를 잡는다. 낭장망은 긴 자루 그물의 날개와 자루 끝을 닻 등으로 고정시키고 조류에 의해 들어간 멸치 등을 잡는 정치성(定置性) 어구이다.

주민 배사현(41) 씨는 “예전에는 꽃게잡이로 유명했으나 현재는 멸치잡이와 톳 양식을 주로 한다”며 “올해의 경우 7월초 태풍이 지나간후 멸치 어황이 지난해에 비해 10% 정도에 불과할 정도로 좋지 않다”고 말했다.

마을주민들은 인근 바다에 설치한 낭장망에서 멸치를 털어, 삶고, 건조시킨 신선한 마른멸치와 가사리, 톳, 돌미역, 겨울대파 등 농·특산물을 인터넷(cafe.daum.net/jnjdsepo)을 통해 판매하고 있다.

◇올망졸망한 섬 사이로 지는 해= 세포리에서 가학리까지는 2㎞ 거리이다. 이곳에서 세방낙조 전망대까지는 ‘한국의 아름다운 길’(건설교통부), ‘한반도 최서남단 최고의 낙조 전망지’(기상청)로 선정된 바 있다.

이 구간은 별도로 도보길이 조성돼 있지 않기 때문에 지방도로 801호선 갓길을 따라 걸어야 한다. 따가운 가을 햇살을 받으며 걷노라면 비지땀이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내리지만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바다풍경은 상쾌하기만 하다.

“몹시 슬플 때에는 해지는 모습이 보고 싶어…”

프랑스 작가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 왕자’에서 어린 왕자는 하루에 해지는 모습을 43번이나 봤다. 바오밥 나무가 자라는 소행성 B612가 겨우 집 한 채보다도 클까말까 해서 어린 왕자는 의자를 몇 발짝 뒤로 물려 놓기만 하면 석양을 볼 수 있었다.

세포마을 배사현씨 부부가 마을앞바다에서 잡은 참멸치를 삶아 건조한후 크기별로 선별하고 있다.

세방낙조 전망대는 도로변에 목재 데크로 잘 꾸며져 있다. 도로변 낙조 전망대에서 5분여 산으로 오르면 제2 전망대가 있다.

이윽고 올망졸망한 섬 위로 해가 기울기 시작한다. 너무나 눈이 부셔 제대로 볼 수 없던 해가 서서히 빛을 잃으며 붉은 원형의 도형을 내보인다. 섬 색깔 역시 짙은 실루엣 모양으로 변해가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일출·일몰 때의 하늘빛은 너무나 아름답고 인상적여서 일명 ‘매직 아워’(magic hour)라고도 부른다.

수평선에 짙은 구름이 어느새 끼어 있어 오메가 모양의 일몰은 보기 어려웠다. 오후 6시 50분, 수면의 짙은 구름이 마지막 절정의 모습을 가려버렸다. 해넘이는 장엄(莊嚴)을 뛰어넘어 가슴 벅찬 뭔가를 남긴다.

세방낙조가 여는 장소보다 아름다운 것은 올망졸망하게 떠있는 다도해 섬들과 어우러지기 때문이다.

‘푸른 행성’ 지구에서는 해넘이를 43번이 아니라 1번밖에 볼 수 없지만 내일 더 나은 해넘이와 삶을 바란다. 연말이 가까워지면 이곳을 찾아 소망을 비는 이들의 발길이 북적거릴 것이다.

시나브로 해가 진 자리에 노을빛이 가시며 국자모양 북두칠성과 목자자리 알파별 아크투루스(Arcturus)가 떠올랐다.

/글·사진=송기동기자 song@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