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바람개비 모양의 거대한 풍력발전기 수십여대가 석양 빛을 받으며 마치 군대 사열을 하듯 일정한 간격으로 나란히 세워져 있다. 초속 7∼8m의 거센 바람을 맞으며 힘차게 돌고 있는 풍력발전기에서 생산되는 전력량은 5GW. 인근 400만 가구가 이 곳에서는 나오는 전기를 쓴다’.

독일이나 덴마크, 미국 등이 아닌, 2023년 전남 서남해안 해상 풍경이다.

전남이 천혜의 자원인 ‘녹색 바람’으로 세계를 휘감겠다는 야심찬 구상을 세우고 기업들을 유치하고 관련 산업 육성에 힘을 쏟고 있다.

◇ 왜 풍력인가=전남도와 에너지관리공단 등에 따르면 전남 서남해안은 7m∼8m/s의 빠른 해상풍속을 갖추고 발전잠재량도 1만3893㎽에 달하는 등 전국 최고 수준이다. 충청남도(6094㎽)·전라북도(3456㎽)·경상남도(3419㎽)·제주(67㎽)의 해상풍력 발전 잠재량을 압도, 최적의 풍력발전 조건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전남도가 ‘5GW 풍력산업 프로젝트’를 선보인 것도 이같이 풍부한 바람을 에너지화해 지역의 새로운 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복안에서 출발하고 있다. 지구 온난화 방지라는 명분과 새로운 성장 돌파구 마련이라는 실리를 둘러싼 전 세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이대로 있어서는 영원히 ‘버려진 땅’으로 방치될 수 있다는 위기 의식도 한몫했다.

전남도 관계자는 “연 700만t의 이산화탄소 배출 감소효과를 가져와 기후변화협약의 세계적 추세에 부응하고 정부의 녹색성장 정책에 궤를 같이하게 된다”고 말했다.

◇급성장하는 세계 풍력시장을 선점해야=세계 풍력시장은 급성장 추세다. 금융 위기가 강타한 지난해에도 42.1%의 성장률을 기록했고 10년 후에는 지금의 12배인 190만MW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유럽의 경우 세계 해상풍력의 99%가 몰려있고 독일은 올해 최초로 해상풍력단지를 가동한 이후 90개 프로젝트를 추가로 추진할 예정이며 이미 사업승인을 받은 단지만 해도 31개에 달하는 등 풍력설비의 25%를 공급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세계 풍력시장의 규모가 2년 후 조선시장을 능가하고 5년 후에는 조선시장의 2배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정부가 풍력산업을 제 2의 조선산업으로 내걸고 적극 육성하겠다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 2만5500명 일자리 창출, 연간 지방세수 641억원 거둬=전남도의 ‘5GW 풍력산업 프로젝트’는 풍력자원이 우수한 영광·신안 등 서남권 연안 및 해안·해상에 5GW급 발전단지(육상풍력단지 1GW, 해상풍력 4GW)와 풍력설비 전용산단(231만㎡), R&D센터 구축사업 등을 조성, 지역 핵심 성장동력으로 육성한다는 전략이다.

현재까지는 순조롭다. 국내외 47개 기업이 터빈 등 풍력설비와 발전사업, 부품·기자재 분야에서 참여하겠다는 의향을 밝힌 상태다. 총 투자규모만 16조 3070억원에 이른다.

참여기업도 발전분야로는 한국수력원자력·동서발전·남부발전·남동발전·현대중공업·현대건설㈜ 등 18개 기업이, 터빈 설비분야에서는 현대중공업·Simens 등 6개사가, 부품·기자재 분야는 STX메탈㈜·한진해운, (사)KR(한국선급) 등 14개 기업이 투자키로 했다.

육상풍력단지의 경우 2016년까지, 해상풍력단지는 오는 2023년까지 조성한다는 게 전남도 구상이다.

이 프로젝트가 완료되면 2만5500명의 일자리가 생겨나고 연간 641억원의 지방세 소득을 올릴 뿐만 아니라 기업들도 연간 21조 이상의 매출을 올리면서 지역과 국가 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전남도는 기대하고 있다.

최근 전남도와 목포대 해상풍력중심 신재생에너지 인재양성센터가 공동으로 개최한 ‘아·태 해상풍력 심포지엄’에서 주제발표자로 나선 덴마크 Riso 연구소의 피터 매드센(Peter H Madsen) 박사도 덴마크의 해상풍력현황과 세계적인 풍력발전 현황을 소개하면서 “한국의 해상풍력 로드맵이 매우 시기적절하며 앞으로 한국정부와 전남도가 세계 해상풍력의 메카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더욱 적극적인 마케팅을 가질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 정책도 전남도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다.

정부는 최근 오는 2019년까지 민·관 합동으로 모두 9조2000억원을 투입해 2,500㎿ 규모의 해상풍력단지를 조성하는 것을 골자로 한 ‘해상풍력 추진 로드맵’을 내놓았다.

로드맵은 조속히 해상풍력 운영 경험을 확보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세계 풍력시장에서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실천 계획으로, 정부가 세계 3대 해상풍력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특히 영광과 부안 경계 해상에 1단계로 2013년까지 100㎽(5㎿×20기)규모의 해상풍력 실증단지(기술 개발 뒤 운전경험을 쌓기 위해서 시범적으로 운영하는 단지) 조성, 2016년까지 2단계로 900㎿(5㎽×180기) 규모의 시범단지, 2019년까지 1500㎿(5㎽×300기) 규모의 발전기 추가 건립 등의 계획은 전남도가 선점해 추진중인 ‘풍력산업 프로젝트’추진속도를 한층 가속화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 장밋빛 청사진에 그쳐서는 안돼=전남도 풍력산업이 세계 풍력시장에서의 경쟁력 확보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중국 등이 앞다퉈 투자를 하며 신재생에너지 육성에 적극 나서고 있다는 점에서 출발이 늦은 만큼 세계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박준영 전남도지사가 최근 간부회의에서 “도대체 이 정부는 뭐하는 거냐”며 쓴소리를 내뱉은 것도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 중국 등에 한참 뒤지고 있는데도 정부가 신산업인 해상풍력단지 시범단지 조성 등에 적극 뛰어들지 않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최근 해상풍력 로드맵 발표 당시에도 전남도의 ‘풍력산업 프로젝트’를 로드맵에 포함시키고 정부 정책과 병행해 추진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적지 않다. 실증단지 조성에 이어 시범단지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전남도의 정책과 병행해 추진할 경우 풍력산업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끌어 나가 세계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선점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5GW 프로젝트의 경우 전남도가 유치한 투자협약 액수는 16조원에 이르지만 협약 단계 수준이어서 실제 기업들의 투자가 제대로 이뤄질 지는 불투명하다. 따라서 관련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투자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 의지를 보여주는 게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해상풍력단지에서 발생한 전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전력망 설치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절실하다.

전남도 관계자는 “해상 풍력 관련 기업들이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게 전남을 중심으로 우리나라가 해상풍력 강국으로 도약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을기자 dok2000@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