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로·가격 걱정없이 생산에만 전념하게 해 주오”
2010년 09월 08일(수) 00:00 가가
전남편 <제1부> 농업.산업
② 억대 부농인들이 말하는 농촌 현실과 농업발전 대책
② 억대 부농인들이 말하는 농촌 현실과 농업발전 대책
진도군 임회면 들녘에서 한 농민이 수확을 앞둔 벼를 살펴보고 있다. 전남 농민들 사이에서는 올해도 힘들게 수확한 농작물이 제값을 받지 못할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김진수기자 jeans@kwangju.co.kr
‘농가인구비율 22%(42만5000명)로 전국 1위. 노령인구비율 17.9%로 전국 1위. 경지 면적 31만ha로 전국 16개 시·도 중 3위. 농가소득은 2521만6000원으로 최하위권…’.
전남 농촌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들이다. 쌀값은 매년 곤두박질치고, 젊은 일꾼들은 없다. 그만큼 농가 경영의 어려움은 나아질 조짐을 보이지 않고 고령화로 인한 농촌사회의 활력 저하도 가파르다.
전남도가 친환경농업을 내세워 농업을 발전시키고 농민 복지를 증진하기 위해 다양한 육성 정책을 내놓고 있는 것과 달리, 들녘 농민들은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고 볼멘 소리다. “피폐하기 그지업고 점차 개선될 낌새도 찾기 힘들다”며 아우성이다.
1억 이상 고소득을 올리는 부농(富農)은 다를까. 설마설마하면서도 재배한 농작물의 판로를 매년 걱정하고 제값받지 못해 속앓이만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전남지역에서 지난해 1억원 이상 고소득을 올린 농가는 1483곳. 이들 중 쌀·채소·특용작물 재배로 고소득을 올리는 농민들의 얘기를 들어봤다.
이들도 ‘10년 뒤 농촌생활이 현재보다 나아질 것으로 보느냐’는 물음에 희망적인 전망을 내놓는데 머뭇거린다.
◇ 판로 없고, 제값도 못 받아=김연배(50·영광군 영광읍)씨는 수확을 앞둔 들녘을 바라보면 한숨만 나온다. 정부가 이른바 ‘8·31’쌀대책을 내놓았지만 김씨가 보기엔 지난해보다 쌀값이 나아질 것 같지 않아서다. 그는 32ha의 논에서 무농약으로 26.5ha를, 나머지 논에서 저농약 쌀을 생산하고 있다. 지난해(7.7ha)보다 무농약 재배단지를 크게 늘렸다. 친환경 쌀이 가격 경쟁력이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그러나 “확신이 서지 않는다”고 불안해하고 있다. 지난해 김씨가 수매한 가격은 40㎏ 한 가마에 4만5000원. 관행농업으로 수확한 쌀 판매가격(4만∼4만2000원) 견줘 차이가 크지 않다. 들어간 노동력과 생산비를 감안하면 5만원은 받아야 하지만 판로가 확보되지 않아 ‘떨이’식으로 팔아치운 것이다. 전남 지역 친환경 농산물 재배면적이 전체 경지면적(30만9803ha)의 33.5%(10만3669ha)로, 전국의 52%를 차지하고 있지만, 농가 경영에 도움을 줄 정도로 경쟁력을 갖추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광주신세계의 경우 이마트 친환경 농산물코너에서 판매되는 70여 가지 농산물 중 광주·전남에서 생산되는 것은 20∼30% 수준에 불과하고 백화점 전체 60여 친환경 농산물 품목 중 광주·전남 생산품 비율은 30∼40%가 고작이다. 올해 이마트와 롯데백화점에 새로 고정 납품이 이뤄지는 것도 7개가 전부다.
김씨는 “억대 부농이라고 하지만 내 논에 내 농기구를 사용해 재배하는데도 지난해 1억이상 손실을 봤다”면서 “영세 농업인들은 훨씬 더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농업인이 힘들게 수확한 작물을 팔지 못해 가슴졸이는 일이 없도록 해주는 게 농민이 가장 원하는 농업 정책”이라고 말했다. 영세 농업인에게 농자재 비용을 지원해 부담을 덜어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무안에서 양파 재배로 고소득을 올리는 홍갑표(55)씨도 친환경 농업에 대한 부담이 적지 않다. 다른 농업인들과 달리 학교 급식재료로 납품되면서 사정은 나은편이다. 하지만 유기농으로 재배한 양파인데도, 시장에서는 일반 양파에 비해 20㎏당 2000∼3000원씩 낮게 책정되는 현실을 지적했다.
진도군 임회면 한 들녘에서 만난 이모(여·54)씨는 관행농업을 고수하고 있다. 올해 3600평 가운데 2000평은 추석 전 수확에 들어간다. 이씨는 “혼자 농사짓는 마당에 친환경 농업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친환경 농업을 실천하려면 관행농업에 비해 노동력과 생산비를 들여야 하는데 감당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꾸준한 기술 지도도 여의치 않다는 게 이씨 주장이다. 모내기·수확에 들어가는 인건비와 거름, 제초비용 등을 제하면 남는 게 없는 관행 농업을 고수하는 이유다.
이씨는 “일손이 없어 친환경 농업 배우러 다니기도 버겁고 쉽게 배우기도 힘들고 나이들어 잘 알아먹지 못한다”고 했다.
◇ 농민들이 믿음 주는 전문가, 정책 절실=5천평에 이르는 버섯 재배로 억대 소득을 올리고 있는 김재창(55·나주시 노안면)씨는 “농업인들이 믿고 따를 전문가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버섯 등 특용작물의 경우 농작물에 대한 시장조사를 비롯, 생산성 향상을 위한 기술 지도가 필요한데 도움을 받기 쉽지 않다는 게 김씨 주장이다. 일부 농민들은 오히려 시장을 따라가기는 커녕 뒤처지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농가 스스로 경영혁신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체계적 지원제도도 미흡한 실정이다. 이외 농업기술원 등 농민들에게 도움을 주는 기관의 경우 잦은 인사로 연계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하는 농민들도 적지 않다.
수도권 등 대량소비처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보니 운송비가 더들고 운송에 따른 상품 가치 하락으로 제값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데도, 지방자치단체가 대책을 마련하는데 서두르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전남도 등이 저온저장고와 RPC 등 산지유통시설을 지속적으로 확충하고 있음에도 효율적 운영이 미흡한데다, 많은 유통 과정을 거치면서 높은 유통 마진이 발생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 농민들이 원하는 정책 들어보니=전남 농민들은 중·장기 농촌 발전을 위해서는 ‘농가 소득 안정’을 위한 정책이 추진돼야 한다는데 입을 모은다. 농민들이 판로 걱정 없이 생산에만 열중할 수 있도록 비전과 대안을 제시하는 농업 정책을 펴달라는 것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지난해 말 조사한 ‘농업·농촌에 대한 국민의식조사결과’도 농업에 대한 불안감을 반영하고 있다.
농민들은 고품질농업 육성, 유통혁신 등 농업정책보다 경영안정지원, 부채경감대책 등의 소득정책에 역점을 둬야 한다고 답한 경우가 많았다.
전남 농민들은 또 고령화가 진행되는데다, 영세농업인이 많은 전남 지역 사정을 감안해 유통비용을 줄이는 방향으로 개선하면서 생산성 향상을 위한 기술개발(R&D)에 지방자치단체가 적극 나서줄 것도 주문하고 있다.
아울러 농촌마을 정비사업과 의료서비스 확대 등을 병행해야 떠나는 농촌이 아닌, 찾아오는 농촌으로 변화하게 된다는 의견을 내 놓고 있다.
/김지을기자 dok2000@kwangju.co.kr
전남 농촌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들이다. 쌀값은 매년 곤두박질치고, 젊은 일꾼들은 없다. 그만큼 농가 경영의 어려움은 나아질 조짐을 보이지 않고 고령화로 인한 농촌사회의 활력 저하도 가파르다.
1억 이상 고소득을 올리는 부농(富農)은 다를까. 설마설마하면서도 재배한 농작물의 판로를 매년 걱정하고 제값받지 못해 속앓이만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전남지역에서 지난해 1억원 이상 고소득을 올린 농가는 1483곳. 이들 중 쌀·채소·특용작물 재배로 고소득을 올리는 농민들의 얘기를 들어봤다.
이들도 ‘10년 뒤 농촌생활이 현재보다 나아질 것으로 보느냐’는 물음에 희망적인 전망을 내놓는데 머뭇거린다.
광주신세계의 경우 이마트 친환경 농산물코너에서 판매되는 70여 가지 농산물 중 광주·전남에서 생산되는 것은 20∼30% 수준에 불과하고 백화점 전체 60여 친환경 농산물 품목 중 광주·전남 생산품 비율은 30∼40%가 고작이다. 올해 이마트와 롯데백화점에 새로 고정 납품이 이뤄지는 것도 7개가 전부다.
김씨는 “억대 부농이라고 하지만 내 논에 내 농기구를 사용해 재배하는데도 지난해 1억이상 손실을 봤다”면서 “영세 농업인들은 훨씬 더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농업인이 힘들게 수확한 작물을 팔지 못해 가슴졸이는 일이 없도록 해주는 게 농민이 가장 원하는 농업 정책”이라고 말했다. 영세 농업인에게 농자재 비용을 지원해 부담을 덜어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무안에서 양파 재배로 고소득을 올리는 홍갑표(55)씨도 친환경 농업에 대한 부담이 적지 않다. 다른 농업인들과 달리 학교 급식재료로 납품되면서 사정은 나은편이다. 하지만 유기농으로 재배한 양파인데도, 시장에서는 일반 양파에 비해 20㎏당 2000∼3000원씩 낮게 책정되는 현실을 지적했다.
진도군 임회면 한 들녘에서 만난 이모(여·54)씨는 관행농업을 고수하고 있다. 올해 3600평 가운데 2000평은 추석 전 수확에 들어간다. 이씨는 “혼자 농사짓는 마당에 친환경 농업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친환경 농업을 실천하려면 관행농업에 비해 노동력과 생산비를 들여야 하는데 감당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꾸준한 기술 지도도 여의치 않다는 게 이씨 주장이다. 모내기·수확에 들어가는 인건비와 거름, 제초비용 등을 제하면 남는 게 없는 관행 농업을 고수하는 이유다.
이씨는 “일손이 없어 친환경 농업 배우러 다니기도 버겁고 쉽게 배우기도 힘들고 나이들어 잘 알아먹지 못한다”고 했다.
◇ 농민들이 믿음 주는 전문가, 정책 절실=5천평에 이르는 버섯 재배로 억대 소득을 올리고 있는 김재창(55·나주시 노안면)씨는 “농업인들이 믿고 따를 전문가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버섯 등 특용작물의 경우 농작물에 대한 시장조사를 비롯, 생산성 향상을 위한 기술 지도가 필요한데 도움을 받기 쉽지 않다는 게 김씨 주장이다. 일부 농민들은 오히려 시장을 따라가기는 커녕 뒤처지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농가 스스로 경영혁신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체계적 지원제도도 미흡한 실정이다. 이외 농업기술원 등 농민들에게 도움을 주는 기관의 경우 잦은 인사로 연계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하는 농민들도 적지 않다.
수도권 등 대량소비처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보니 운송비가 더들고 운송에 따른 상품 가치 하락으로 제값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데도, 지방자치단체가 대책을 마련하는데 서두르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전남도 등이 저온저장고와 RPC 등 산지유통시설을 지속적으로 확충하고 있음에도 효율적 운영이 미흡한데다, 많은 유통 과정을 거치면서 높은 유통 마진이 발생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 농민들이 원하는 정책 들어보니=전남 농민들은 중·장기 농촌 발전을 위해서는 ‘농가 소득 안정’을 위한 정책이 추진돼야 한다는데 입을 모은다. 농민들이 판로 걱정 없이 생산에만 열중할 수 있도록 비전과 대안을 제시하는 농업 정책을 펴달라는 것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지난해 말 조사한 ‘농업·농촌에 대한 국민의식조사결과’도 농업에 대한 불안감을 반영하고 있다.
농민들은 고품질농업 육성, 유통혁신 등 농업정책보다 경영안정지원, 부채경감대책 등의 소득정책에 역점을 둬야 한다고 답한 경우가 많았다.
전남 농민들은 또 고령화가 진행되는데다, 영세농업인이 많은 전남 지역 사정을 감안해 유통비용을 줄이는 방향으로 개선하면서 생산성 향상을 위한 기술개발(R&D)에 지방자치단체가 적극 나서줄 것도 주문하고 있다.
아울러 농촌마을 정비사업과 의료서비스 확대 등을 병행해야 떠나는 농촌이 아닌, 찾아오는 농촌으로 변화하게 된다는 의견을 내 놓고 있다.
/김지을기자 dok2000@kwangju.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