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에 사흘째 눈이 내렸다. 세상이 온통 하얗게 변했다. 카자흐스탄에서 시집 온 최스베틀라나씨는 펑펑 쏟아지는 눈이 반갑다. 나고 자랐던 카자흐스탄의 고향 생각이 절로 났다. 하지만 함박눈에 대한 감상도 잠시, 눈길에 갇힐 아이들 걱정이 밀려든다. “오늘 아이들과 첫 만남인데…”
12일 오후 광주시 광산구 삼도동 새날학교에서 최스베틀라나씨를 만났다. 새날학교 교사인 최씨는 카자흐스탄 출신으로 7년 전인 2002년 남편 전상중(40)씨와 결혼해 서구 유촌동 버들주공아파트에 살고 있는 이주여성이다. 그는 다문화 가정 자녀들을 위한 대안학교인 새날학교에서 수학과 과학, 러시아어를 가르친다.
“오늘이 방과 후 학습을 첫 시작하는 날인데, 눈 때문에 아이들이 학교에 오질 못했어요. 아쉬워요. 교단에 서 있는 제 멋진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최씨는 카자흐스탄에서 나고 자란 고려인 3세다. 일제의 폭압을 피해 할아버지가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주했고, 1938년 최씨의 부모는 구소련의 강제 이주 정책에 따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다시 카자흐스탄으로 옮겨갔다. 교사와 엔지니어였던 부모님 덕분에 그는 카자흐스탄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뒤 모스크바에서 유학했다. 모스크바대학교 토목과 4학년 재학 중 가정 사정으로 카자흐스탄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카자흐스탄대학교 토목과를 졸업했다. 이름인 스베틀라나는 ‘햇빛처럼 빨갛다’는 뜻으로 ‘명석·빛남’을 의미한다.
최씨가 남편 전씨를 처음 만난 건 2001년. 카자흐스탄에 비즈니스차 온 남편을 회사 동료가 소개해 만났다. 그 인연으로 그는 2002년 5월 제주도를 방문하게 됐다. 말로만 듣던 ‘할아버지의 나라’를 처음 밟은 것이다.
그리고 그해 10월 결혼했고 11월 광주로 건너와 정착하게 됐다.
대졸 학력에 고려인 3세로 같은 한민족이지만 생활 환경이 다른 지난 7년간의 한국 생활은 무척 힘겨웠다고 한다.
“연애 시절엔 곧잘 남편과 언어소통이 안될 땐 그림까지 그려가며 즐겁게 대화를 나눴는데, 막상 한국 생활은 그렇지가 않았어요. 한국말을 잘 못하는데다 문화·음식 차이도 심해 처음엔 남편과 많이 싸웠죠. 그때마다 남편이 다독이고 감싸줬어요. 이젠 카자흐스탄보다 여기가 더 익숙하고 편해요.”
그는 남편 외에 또 다른 든든한 ‘백’이 있다고 자랑했다. 다름 아닌 시부모님이다. 시어머니는 그를 “아가”라고 부른다. 시집 와서 7년이 지난 지금껏 “아가”단다. 최씨는 “저도 시어머니를 엄마처럼 의지하고 모시고 살아요”라며 딸 세연(5)이와 함께 시댁에 자주 찾아가 수다도 떨고 논다고 행복해 했다.
그는 한국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다. 전남대 어학교육원에서 한국어강좌를 들었고, 광주여성발전센터와 이주가족복지회에서 3년 동안 한국어, 한국문화, 부모교육 등의 프로그램에도 적극 참여했다. 그 덕분에 지난해 한국어능력시험 3급을 통과했다. 올해부터는 몽골 친구의 소개로 새날학교에서 수학과 과학, 러시아어를 가르치게 됐다.
“다문화 가정 아이들은 한국어 능력 부족, 정체성 혼란 문제로 많은 어려움을 겪죠. 반면 일반 가정 아이들은 다문화 자녀에게 문화적 편견을 가지고 있죠. 저는 카자흐스탄에서 시집 온 고려인이예요. 고려인이면서 이주여성인 거죠. 앞으로 새날학교에서 많이 배우고 그동안 한국 생활의 경험을 살려 다문화 교육 전문가로 거듭나고 싶어요.”
/박정욱기자 jw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