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길목, 문득 누군가가 기다려진다. 바람조차 싱그럽다. 나들이 하는 발걸음이 한층 가볍다. 여인의 옷 차람새도 화사하게 달라진다. 노래가 생각난다. “봄이 왔네 봄이 와, 그 처녀의 가슴에도....” 이렇듯 봄은 가슴 설레이는 찬란한 희망의 상징을 담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바람의 숨결이 부드러워 지고 새 봄이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남쪽 끝에서 동백의 붉은 기운이 서서히 번져가고 있다. 봄이 오는 곳에는 언제나 동백이 먼저 핀다. 전남 여수시로 가면 따스한 봄 바람과 빨갛게 단장한 동백꽃,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들판에서 갓을 수확하는 정겨운 고향풍경을 함께 만날 수 있다. 이제 갈 때도 됐건만 아직 집게손가락 끝에 겨울이 대롱대롱 곡예를 하고 있다. 여수 오동도 초입에 이르자 엄지손가락으로 ‘톡’ 하고 겨울을 튕겨 내버린다. 여수 바다는 봄이다. 오동도 동백꽃 가는 길이 따사롭다. 토끼모양을 한 약 12ha의 아담한 섬 오동도는 길이 768m의 긴 방파제로 육지와 이어져 있는 한려해상 국립공원의 기점이자 종점이다. 국내 최대 동백군락지인 오동도는 3천여그루의 자생 동백이 자라고 있다. 아직 봄을 시샘하는 겨울바람이 봄볕에 먼저 핀 동백꽃을 얼려버렸다. 꽃이 피지 않은 숲은 어둡다. 나뭇가지 사이를 유심히 살펴보면 동백이 수줍게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따사로운 봄볕이 스며드는 곳에는 어김없이 빨간 동백꽃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오동도 동백은 3월 10일께부터 절정을 이룬다. 오동도 동백 수령은 50살∼300살까지 다양하다. 어린 나무나 고목이나 꽃은 똑같이 붉다. 수줍게 벌린 꽃망울은 이제 막 분단장을 하기 시작한 소녀의 입술처럼 붉다. 화사한 봄 햇살을 받아 터뜨린 꽃망울은 조금 이르게 찾아온 상춘객들에게 화사하게 웃음을 머금고 있다. 동백꽃의 꽃말은 ‘자랑·겸손한 아름다움’이라고 한다. 동백은 벚꽃처럼 지지 않는다. 시들지도 않는다. 마치 절개와 지조를 지키려는 것처럼 동백은 꽃잎이 시들기 전 통째로 떨어진다. 동백꽃은 지고 난 후에도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다. 그래서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꽃이라고 노래했나 보다. 동백꽃 떨어지는 것을 여인의 눈물과 비유한다. 떠나는 사람에게 꽃 길을 만들어 줄 수 있을까. 그래서 동백꽃을 ‘여심화’라 불리는지 모르겠다. 동백꽃은 오동도 식물원 뒤쪽 산책로에 가장 많이 피어 있다. 호젓한 산책로를 걸어가면 갈대처럼 생긴 대나무인 시누대숲 위로 붉은 동백꽃이 얼굴을 내민다. 탁 트인 남쪽바다가 바라다 보이는 운치있는 길을 따라 내려가면 오백년 묵은 지네가 살았다고 전해오는 암석동굴인 용굴이 자리하고 있다. 동백꽃 속에서 봄처녀와의 데이트가 끝난 후에는 오동도 주변 남해 바다의 봄 바람을 온몸으로 즐겨보자. 유람선과 모타보트 선착장이 설치돼 있어 오동도 일주 및 다도해 해상 투어도 즐길 수 있다. 오는 10∼19일까지 오동도 일원에서 ‘제8회 여수오동도 동백꽃축제’가 열린다. 이번 축제는 2012여수세계박람회 유치를 기원하기 위해 ‘여수 오동도 동백꽃 축제를 통한 지역모두 하나 되어 어울림’이라는 주제로 다채로운 프로그램들이 선보인다. 오동도 입장료. 어른 1천600원, 청소년 600원, 어린이 300원.(문의) 061-690-7301. 이외에 우리나라에서 두번째로 큰 섬으로 60여개의 크고 작은 섬을 거느리고 있는 ▲거제도의 동백꽃 군락지도 가볼 만 한 곳이다. 해금강은 거제의 으뜸가는 명승지로 섬의 남쪽 갈곶해안과 그 앞의 작은 돌섬인 갈도 일대에 펼쳐진 기암괴석 무리를 일컫는다. 해금강 입구 신선대 주변 동백꽃과, 해금강에서 20리 떨어진 학동몽돌해수욕장 가는 국도변 해안을 낀 절벽 위 동백숲은 일품이다. 학동 해안을 따라 효자산 아래까지 우거진 동백숲은 최대규모를 자랑하는 야생동백군락지다. ▲해남 보길도는 한반도 최남단 땅끝마을로 꽃잎을 반쯤 연 동백꽃을 볼 수 있는 곳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고산 윤선도 유적지와 두륜산도 동백림이 우거져 있다. 달마산 미황사에서도 예쁜 동백꽃을 볼 수 있다. 보길도에서는 함초롬한 동백을 볼 수 있다. ▲강진 백련사와 ▲고창 선운사 뒤편, ▲해남 두륜산 대흥사 뒤편, ▲해남 달마산, ▲장흥 천관산 천관사 주변과 ▲영암 월출산 도갑사 계곡, ▲광양 백계산에서도 동백꽃의 빨간 봄소식을 접할 수 있다. /최재호기자 lion@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