녘 끝에서 서서히 봄 기운이 기지개를 켜면서 봄 소식을 전해오고 있다. 봄 방학을 맞은 아이들 손을 잡고 남녘의 봄 소식을 맞이하러 가자. 온 몸을 간지르는 해풍과 햇살에 반짝이는 검 푸른 남해바다가 ‘어서 오라’고 손짓한다. 완도 청산도(靑山島)는 이름 그대로 푸른 섬이다. 한 겨울부터 뿌리를 낸 보릿잎이 자라 파도처럼 출렁대고, 섬을 두르고 있는 감청색 바다는 봄 햇살에 보석처럼 반짝여 눈이 시리다. 산과 들판과 바다 모두 파래서 옛 사람들은 ‘청산여수(靑山麗水)라고 했고, 신선이 산다고 해서 선산도(仙山島)라고도 불렀다. 사시사철 푸른 섬 청산도. 예전엔 대대손손 어부와 농부들이 고단한 삶을 기대어 산 척박한 돌섬이었지만 지금은 여행객들의 가슴에 보리의 싱싱한 푸르름과 봄기운을 선물하는 봄의 전령사다. 완도항에서 뱃길로 45분. 기름냄새 짙게 밴 철부선을 타고 50리쯤 파도를 가르면 청산도에 닿는다. 이 뱃길은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보석같이 박혀 있는 섬들에 흠뻑 빠지다 보면 어느덧 배는 청산도에 닿는다. 도정항에서 승용차를 이용해 구불구불한 도로를 오르면 당리 언덕길에 있는 영화 ‘서편제’ 촬영지를 만난다. 이곳에서 송화와 동호가 되어 보는 것도 좋은 추억거리다. 영화 ‘서편제’ 촬영지는 청산도의 으뜸 명소다. 돌담밭 안에 4월에 흐드러진 몸짓을 보여주기 위한 파란 유채가 어지럽게 바람에 흔들린다. 유채밭 너머 황톳길이 놓여있고, 황톳길 옆으로는 청보리가 ‘쑥쑥’ 몸길이를 늘리며 봄기운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황톳길 옆 청보리가 쑥쑥 웃자란 맥주보리도 돌각담 틈새로 푸릇푸릇 잎새를 내밀며 푸르름을 더해준다. ‘서산에 지는 해는 지고 싶어서 지느냐, 날 두고 가신 님은 가고 싶어 가느냐. 아리아리랑…’ 아들 동호(김규철)의 북장단에 맞춰 유봉(김명곤)과 딸 송화(오정해)가 어깨에 흥을 얹고 진도아리랑을 부르며 지나던 황톳길은 지금도 여전히 예스럽다. 카메라를 고정시키고 5분40초 동안 롱테이크 기법으로 영화의 명장면을 만들어 냈던 이곳은 청산도의 상징이 돼 버렸다. 흙길은 200m 남짓. 나머지는 시멘트 포장을 해버렸다. 200여m 남짓한 흙길도 지난 93년 한국영화 사상 최초로 관객 1백만명을 돌파했던 서편제 때문에 그나마 보존돼고 있다. 서편제의 ‘아리랑 길’을 찾아 청산도에 들른 관광객들이 시멘트로 포장된 황톳길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해 결국 시멘트를 뜯어냈다. 송화가 유봉에게 판소리를 배웠던 초가집도 읍리에 그대로 남아있다. 당집 아래에는 초분(草墳)이 있다. 초분은 진도, 완도등 남해안 일대에서 행해지던 가매장 방식의 풀무덤으로 2∼3년 후 다시 유골을 수습해 분묘를 만들었다. ‘구들장 논’엔 생명의 숨소리 출렁 읍리 고인돌과 하마비를 스쳐지나 고갯길을 넘으면 물결처럼 부드러운 논두렁이 한 없이 이어진다. 구들장처럼 돌을 쌓고 그 위에 흙을 부어 만들었기에 ‘구들장 논’이라고 부른다. 돌이 많아 물이 잘 빠지기 때문에 물을 모으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구들장논이 탄생했다. 석축을 쌓고 바닥에 Y자 모양으로 돌을 얹는다. 빗물이 ‘Y’ 자모양의 돌판을 따라 윗논에서 아랫논으로 계속 이어지게 만들었다. 그만큼 쌀이 귀했던 탓이다. 당리 윗마을인 읍리에는 고인돌이 있다. 청동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다는 증거다. 1960년대 중반에는 이곳에서 석검이 출토되기도 했다. 범바위 올라 제주도 만나볼까 청산도의 산 꼭대기에는 돌바위가 앉아 있다. 임도를 따라가다 만나는 ‘범 바위(범바구)’ 는 높이 155m의 보적산 8부능선 가파른 곳에 자리잡고 있다. 가장 높은 곳은 아니지만 맑은 날은 제주도까지 보인다. 산과 들 뿐만 아니라 바닷가에도 돌이 많다. 천연 자연돌인 진산갯돌밭의 주인은 주먹만한 갯돌들이다. 빽빽한 해송에 1.2㎞의 고운 모래밭이 일품인 지리해수욕장은 물이 깨끗하고 수심이 완만해 가족여행지로 적합하다. 근처 갯바위는 낚싯대를 드리우면 누구나 손맛을 느낄 수 있는 갯바위 낚시터도 있다. 완도항에서 청산도까지 1일 4차례 배편이 있다. (문의) 청산농협-061-552-9388. 대인 5천800원, 소인 2천900원. 승용차 승선료-2만3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