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구기사상 첫 메달을 따낸 자랑스런 여자배구. 한 때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여자배구는 남자배구와 프로야구, 프로축구등 프로스포츠에 인기정상의 자리를 내줬지만 생활체육에서는 여전히 인기종목으로 각광받고 있다. 지난 달 28일 밤 7시 광주시 서구 염주초등학교 체육관. ‘광주광역시 대표’ 라고 쓰여진 유니폼을 입은 ‘광주여자OB’ 선수들이 남자 배구 동호인팀과 친선게임을 하고 있었다. “가운데 받고! 빠른 것. 미진아 좀 더 붕붕 날아봐!” 이미선(38·서구 쌍촌동)감독 겸 선수의 주문이 잇따른다. 배구종목은 여타 다른 종목과 달리 남·여 스파이크 강도가 달라 남-여 게임을 하지 않는데도 남자 동호인 팀과 대등한 경기를 벌인다. 구르고, 넘어지고 안간힘을 써보지만 마음과 몸이 따로 놀아 안타깝다. 막내 조미진(32·서구 화정동)이 분위기를 전환하는 회심의 스파이크를 날려보지만 블로킹에 걸려 다시 실점. ‘삐익 2세트 경기가 끝나고 선수들은 동호인 팀 선수들과 악수를 나누며 환하게 웃는다. 땀방울에 젖은 선수들의 얼굴엔 피곤함 보다는 패배라는 사실이 더 무겁게 다가온다. “그래도 엘리트 체육 전공자들인데” 하는 자긍심과 ‘오기’가 발동한 탓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현역에서 은퇴했고, 엄마, 아내, 주부 1인3역을 해야 하는 현실의 무게앞에 그냥 웃을 수 밖에. ‘배사모’ 꾸준한 배구사랑 ‘광주여자OB’ 팀은 ‘광주시 어머니 배구팀’ ‘배사모’로 불리운다. 지난 1993년 태광산업에서 활동했던 이미선씨와 한금옥(38·북구 문흥동)씨가 주축이 돼 어머니 배구단을 만들어 꾸준한 배구사랑을 이어왔다. 올해 제 86회 전국체전 전시종목으로 9인제 여자배구가 채택되면서 이들은 ‘광주여자배구OB’팀을 결성, 전시종목이지만 당당히 동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뤘다. 이미선감독을 비롯해 백지운(35·광산구 신가동), 노희경(32·북구 일곡동)3인방은 각각 태광산업, 대농, 현대에서 뛰다 은퇴한 A급 선수출신이다. 조미진, 김영미(36·광산구 신창동), 정민형(35·북구 용봉동), 한금옥씨는 고교때까지 선수생활을 했었고, 양영미(37·광산구 월계동), 양인심(44·동구 금남로), 김추원(42·북구 운암동)씨는 생활체육에서 활동했던 배구 마니아들이다. 세터를 맡고 있는 이미선 감독은 몸이 10개라도 모자랄 형국이다. 감독에 선수, 광천동성지어린이집 운영, 내년엔 서구 구의원 출마까지 계획하고 있는 ‘만능엔터테이너’다. 중위 센타로 팀의 중추 역할을 하고 있는 한금옥씨는 수비수로는 전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정도. 이번 울산체전에서 실업팀 지도자들이 현역복귀를 권했을 정도로 쟁쟁한 실력을 자랑한다. 엄마·아내·주부 1인 3역 거뜬 백지예씨와 백지운씨는 자매간이다. 후위 라이트 수비수인 백지예씨는 헬스지도자 과정을 이수하고 있으며 항상 미소가 띤 얼굴과 때론 수위조절이 안되는 농담으로 좌중을 들썩이게 한다. 20대 못지않은 탄력있는 몸매(?)를 유지하는 비결은 건강식과 꾸준한 운동. 언니 백지운씨는 생활체육 강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서구클럽 코치로 활동하며 배구보급에 앞장서고 있다. 팀의 에이스 노희경씨는 실업팀에서 뛸 때보다 9인제 배구에서 더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백지운과 함께 엮어내는 속공은 상대 수비를 휘저어 놓는다. 현모양처 스타일로 평소에는 조용하기만 한 김영미씨는 코트에 서면 승부사로 변하는 두 얼굴의 여인(?)이다. 풍향초등학교 어머니배구팀을 지도해 전국대회에서 우승까지 시킨 명장이기도 하다. 늦깍이 대학생인 정민형씨는 통신대학교 졸업반. 고교때부터 운동과 학업을 병행했던 학구파인 정민형씨는 이번 전국체전때도 시험공부에 매달릴 정도다. 파워있는 오픈공격을 뿜어대는 조미진씨는 만능스포츠맨이다. 화정초등학교 다니는 아들도 어머니를 닮아서 야구선수로 활동하고 있다. 양영미씨와 양인심, 김추원씨는 동호인 출신이지만 배구에 대한 열정과 노력은 기존 선수들이 배울 정도. 쉬는 시간에도 반드시 이 감독이나 선수들에게 수비연습을 요청할 정도다. 9인의 여인들, 코트 이야기 계속 양인심씨는 이번 체전때 남편이 2박3일 휴가를 내고 따라와 팀의 매니저 역할까지 해 줄 정도로 든든한 후원자를 두고 있다. 최근에는 쌍촌동에서 현대어린이집을 운영하는 이은숙(42·서구 쌍촌동)씨를 단장으로 영입했다. 평소 운동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이은숙씨의 가세로 팀의 모양새가 점점 갖춰지는 등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게 돼 팀의 사기가 높아지고 있다. 이렇게 9인9색의 여인들이 모여 코트위에서 내뿜는 열기는 이 가을의 붉은 단풍보다 더 뜨겁게 타오른다. 영원한 연인 ‘배구’에 대한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9인의 여인들, 코트위에 설 수 있을 때까지 배구와 함께 하겠다는 이들이 엮어내는 코트위의 이야기는 현재도 진행중이다. /최재호기자 lion@kwangju.co.kr